▲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지난해 10월 2일 평양에서 악수를 하고 있다. 시게무라 교수의 주장에 따르면 사진 속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그의 대역인 셈이다. | ||
시게무라 도시미쓰 교수는 와세다대학 졸업 후 <마이니치신문>의 서울 특파원 시절을 포함해 30년에 걸쳐 한반도를 취재해온 한반도 전문가다. 시게무라 교수는 자신의 30년 취재를 집대성한 저서 <김정일의 정체>에서 김정일 사망과 대역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다뤘다.
시게무라 교수가 북한 최대의 금기에 대해 여러 명의 확실한 정보통으로부터 들었다는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김정일이 지병인 당뇨병이 악화되어 2000년 초반부터 휠체어 신세를 지게 됐다. 그리고 2002년 말부터는 거의 병상에 누워서 지내게 됐고 결국 2003년 가을에 사망했다.”
얼핏 황당해 보이기도 하는 시게무라 교수의 주장을 실은 <주간 겐다이> 기사 내용은 이렇다.
2000년이라고 하면 김정일이 5월 중국을 방문하고 6월 김대중 전 대통령과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가진 해다. 이후 2003년 6자회담이 실현되기까지 약 4년간 김정일은 푸틴 전 러시아 대통령, 올브라이트 전 미국 국무장관, 고이즈미 전 일본 총리 등 각국 수뇌부와 잇따라 회담을 하는 등 북한의 부흥을 위해 필사적으로 외교노력을 전개했다.
그러나 2003년 이후로 김정일의 대외 활동은 갑자기 뜸해졌다. 2004년 일본의 고이즈미 전 총리가 두 번째로 방북했을 당시 회담 시간은 고작 90분에 지나지 않았다. 2007년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남북정상회담은 단순히 ‘만나서 얼굴을 본 것’에 지나지 않았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김정일이 사망한 것으로 추측되는 2003년 9월 9일부터 10월 20일까지 41일 동안 김정일의 동정이 사라졌다는 점이다. 10월 21일이 돼서야 “북한인민군 543부대의 농장을 현지지도했다”라는 날짜 불명의 보도가 나왔다. 그 후 2004년 1월 19일까지 약 3개월 동안 날짜 불명의 보도만 계속 이어졌다.
이 시기에 중국 우방궈 전인대 상무위원장의 방북이 북한 측 사정으로 갑자기 ‘무기 연기’됐으며, 김정일로부터 직접 평양 초대를 받은 러시아의 다리킨 연해주지사는 갑작스런 약속취소 통보를 받았다.
그밖에도 이 시기에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이 많이 일어났다. 김정일의 차남 정철과 삼남 정운을 낳은 고영희가 2004년 5월께 갑자기 사망했다. 유방암으로 죽었다는 설도 있었지만, 그녀가 김정철을 후계자로 앉히려고 필사적으로 공작을 펼쳤던 것이나 50대 초반으로 젊은 나이에 갑작스럽게 사망한 사실로 미루어 볼 때 방패 역할을 해주던 남편(김정일)을 잃고 암살당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또한 김정일이 매우 아끼던 여동생 김경희 당 경공업부장도 이 시기에 갑자기 파리로 이주했다. 그녀도 든든한 오빠를 잃고 암살당할 것을 두려워한 것으로 보인다. 그녀의 남편으로 북한 넘버2로 권세를 펼쳐온 장성택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도 이 시기에 갑자기 실각한다. 장성택은 김일성의 막내아들이란 소문이 돌던 김현을 후계자로 세우려고 했었다.
김정일이 건강하다면 스스로 후계자를 선택할 테니 후계자를 둘러싼 암투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것이다. 김정일 패밀리 3명이 모두 권력중심에서 사라진 것을 봐도 이 시기에 평양 깊은 곳에서 중대한 ‘이변’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한편 미국도 ‘이변’을 눈치 채고 있었다. 미국은 북한 상공에 매일 2기의 정찰위성을 띄워 김정일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는데, 2006년 봄에 촬영한 김정일의 사진을 분석한 결과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이전과 비교할 때 키가 2.5㎝나 커졌다는 것이다.
사실 독재자가 ‘가게무샤’ 즉 자신의 대역을 두는 것은 그리 드문 일이 아니다. 이라크의 후세인 전 대통령도 대역을 둬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시게무라 교수는 ‘동아시아 무역연구회(북한과 무역 교류를 하던 일본기업의 친목단체)’ 직원의 신분으로 북한에 가서 김정일 대역을 직접 본 적이 있다는 사람의 경험담을 소개했다. 그 직원이 북한을 방문했을 당시 숙소인 고려호텔 지하의 가라오케로 초대되어 내려가 보니 그 자리에 가짜 김정일이 앉아있었다는 것이다. 깜짝 놀란 직원에게 가짜 김정일은 “나는 대역이니 안심해도 된다. 난 본래 간부의 아들인데 나이대가 비슷하다는 이유로 선발되어 성형수술을 했다. 내가 (진짜 김정일보다) 약간 덩치가 큰 편이지만 암살이나 저격의 위험이 있는 곳에는 내가 나가서 손을 흔든다. 나 말고도 다른 대역이 있다”고 설명했다.
시게무라 교수는 취재 결과 적어도 8명의 일본인이 김정일 대역과 만났으며, 그중 3명은 대역과 실제로 대화를 나눴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중 한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김정일 측근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대역은 모두 4명이 있다고 한다. 4명 중 2명은 판박이처럼 닮았지만 나머지 2명은 그다지 닮지 않았다. 더구나 4명 중 한 명은 여성이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위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2002년 8월 러시아 극동을 방문해 푸틴 전 대통령을 만나고 같은해 9월 평양에서 고이즈미 전 총리를 만났다는 ‘김정일’은 대역일 가능성이 높다. 당시 김정일은 병상에 있었다.
그렇다면 현재 북한 체제는 어떻게 유지되고 있을까. 현재 북한은 김영남 위원장과 북한인민군대표 오극렬 작전부장, 오랫동안 김정일의 비서를 지낸 이제강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그리고 잠시 물러났다가 다시 복귀한 장성택 행정부장 ‘4인조’의 집단지도체제로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최근 들어 김정일과 군부의 사이가 틀어졌다거나 북한에서 쿠데타의 조짐이 있다는 소문을 자주 접하게 된 것도 김정일 사망설이 사실이라면 쉽게 설명되는 부분이다. 그러나 사망설의 진위가 밝혀지기까지는 더 오랜 시간이 걸릴 듯하다.
박영경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