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심에서 검찰은 핵심 증거로 유 씨 동생 유가려 씨의 증언을 내세웠다. 그러나 2013년 4월 유가려 씨는 기자회견을 통해 조사 과정에서 폭력과 회유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2013년 8월 열린 1심에서 재판부는 유 씨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내렸다. 유 씨는 2심과 대법원 최종 판결에서도 무죄를 받았다.
그런데, 재판 과정에서 검찰이 제출한 사진과 중국-북한 출입국 기록 등이 조작됐다는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줬다. 또 검찰이 보복성 수사와 기소를 밀어붙였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문재인 정부 들어 국정원은 이 사건에 대한 재조사 중이다. <일요신문>이 10월 23일 유우성 씨를 직접 만났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이다.
유우성 씨는 자신이 간첩 조작 사건 타깃이 된 것에 대해 “박원순 시장에게도 큰 타격이고, 국정원 댓글 조작 사건을 물타기할 수 있는 좋은 재료였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사건이 포함된 걸 뉴스를 통해 알았다. 다만, 몇 개월 전 변호사에게 TF에서 연락이 와서 피해자 조사도 할 것이고 자료 등 관련 요청이 올 예정이라고 들었다. 그 이후로 사실 진행된 부분은 없는 것 같다. 검사 한 명이 내 사건을 맡고 있다고 들었다. 변호사 통해서 들은 바론 TF에서 인력이 턱없이 부족해서 자료를 검토하고 있는 수준이라고 한다. 시간이 꽤 흐른 지금, 진행하는 건지 안 하는 건지 의문을 갖고 있다.”
― 정권이 바뀐 걸 체감할 법도 한데.
“솔직히 피부로 와 닿는 건 없다. 동생(유가려 씨) 손해배상 청구 소송도 지지부진하다. 검찰에서 재기소했던 외국환 거래법 위반 혐의와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혐의 건도 대법원에 올라가 있다. 이런 것들이 빨리 마무리되고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싶은데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건 없다.”
― 문재인 대통령도 사건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들었다.
“촛불집회가 한창일 때 문재인 대통령(당시 민주당 후보)께서 박주민 의원을 통해 국가 폭력 희생자들을 초대해 면담 시간을 가졌다. 문 대통령께서 ‘유우성 씨 같은 사건은 앞으로 꼭 바로 잡아야 한다. 정권이 바뀌면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사과할 수 있는 날이 올 거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정권이 바뀌고 굉장히 기대를 많이 했다.”
― 사건으로 돌아가 보자. 언제 탈북했나.
“2004년이다. 내가 한국에 들어올 때는 대한민국 탈북자가 200명도 안 됐었다. 실질적으로 북한에서 살다 나온 것이 중요했다. 재북 화교인지 아닌지를 심도 있게 조사하지 않았다. 2010년 이후 탈북자들이 워낙 많이 들어오니까 재북 화교는 안 된다고 문제가 된 것이다. 그동안 재북 화교가 문제라고 얘기한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었다. 2008년 남북교류협력법 위반 혐의로 국정원에서 조사를 받았다. 국정원에서 집안 족보까지 가져와 조사를 했는데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얼마 뒤 서울시 북한이탈주민 공무원 채용이 열렸다. 그때도 경찰 검찰 국정원에서 신원 조사를 거쳤다. 3번이나 검증을 거친 셈이다.”
― 공무원이 된 뒤론 어떤 생활을 했나.
“2011년 공무원 채용 후 3~4개월 지나서 국정원 대북 수사관이 ‘재북 화교이니 중국과 북한을 편하게 다닐 수 있겠다. 서울시 공무원도 좋지만 대한민국을 위해서 일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했었다. 스파이로 대한민국에 있는 정보원 일을 해보겠냐는 말이었다. 거절했다. 한국에서 잘 정착해서 살고 있는데 굳이 하던 일을 그만 두고 북한에서 정보를 가지고 오는 일은 매우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 강요는 없었나.
“강요하진 않았지만 다른 제안을 받았다. 나는 서울시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북한이탈주민 모임에서 리더를 맡고 있었다. 수사관이 ‘주변에 국정원에서 일할 수 있는 사람이나 탈북자 중에서도 이상하게 생각되는 사람을 제보해 달라’고 말했다. 대한민국 국민이면 간첩 신고를 누구나 다 하지 않나. 그런데 생각해보니 그 때부터 국정원 관리를 계속 받고 있던 것이다. 내가 활동하고 있는 단체에 있는 탈북자를 감시하고 동향을 국정원에 보고했다. 그러다 보니 수사관과 주기적으로 2년 가까이 계속 만나게 됐다.”
― 여동생도 그쯤 들어오지 않았나.
“수사관에게 여동생이 중국에 와 있는데 한국에 데리고 와서 살고 싶다고 얘기했다. 그랬더니 ‘한국에 데리고 들어와라. 국정원 합동신문센터에 얘기를 해주겠다’고 허락을 맡았다. 2012년 10월 동생을 데리고 와서 국정원에 내가 신고를 했고 수사관에게도 전했다. 수사관에게 ‘동생이 센터에 잘 들어갔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하나원(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사무소)에서 나올 것’이라고 들었다. 한 달 뒤 궁금해서 전화를 했더니 수사관이 받지 않았다. 동생이 들어와 있으니 불편해 안 받나보다 생각했다. 해가 바뀌고 새해에 안부 인사를 보냈으나 그때도 답장은 없었다. 부담스러워서 그런가 보다 싶었다. 그리고 2013년 1월 긴급 체포됐다.”
―국정원이 내사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체포를 사전에 아예 몰랐었나.
“내사 진행됐는지는 모르겠다. 체포된 뒤 2~3일 후에 한 수사관이 들어와 ‘유우성이란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말해보겠다’면서 내 사건 전체 스토리를 말해줬다. 그때 왜 잡혀 왔는지 처음으로 알게 됐다.”
― 수사 과정에서 부당하다고 느낀 점이나 불이익은 없었나.
“북한 간첩이 재북 화교라는 게 말이 안 되지 않나. 국정원에서 ‘네가 변명을 어떻게 할지 생각하라’고 했다. 동생은 기소를 하지 않겠다며 회유도 했다. 하지만 아닌 건 아닌 것이라고 생각했다. 너무 억울했고 공포스러웠다.”
― 재판 과정에서 증거 조작이 드러났고, 검찰의 보복 수사 의혹이 제기됐다.
“검찰이 외국환거래법 위반으로 이미 기소유예 판결까지 받은 건을 재기소했다. 항소심 재판부가 검찰의 외국환거래법 혐의에 대한 재기소를 ‘공소권 남용’이라며 기각시켰을 정도다. 다만 서울시 공무원으로 취직된 부분에 대해선 유죄가 인정됐다. 대법원에서 이미 북한이탈주민 보호 및 정착지원법에 대한 법률이 유죄가 나왔기 때문이다. 지금 이 건은 대법원에 올라가 있는데, 1년이 됐는데도 아직 해결이 되지 않았다.”
― 많이 힘들었을 것 같다.
“대한민국만큼 간첩 조작 사건이 많은 나라가 세계에 또 있나. 많은 사람들이 가족을 잃고 인생을 허무하게 살고 있다. 정부에선 매번 잘못을 할 때마다 그 이슈를 덮기 위한 하나의 재료로 써먹었다. 이런 일이 반복되는 근원은 조작한 사람들이 검찰에 있고 국회에 있고 떵떵거리며 잘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을 통해서 누군가 간첩 사건을 조작하게 되면 강력한 처벌을 받는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제 사건 하나만 중요한 게 아니다. 적폐청산TF에서 바로 잡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 왜 본인이 타깃이 됐다고 생각하나.
“2013년 국정원 댓글 조작 사건이 엄청난 이슈가 됐다. 나는 박원순 서울시장 밑에서 일하고 있었고 북한이탈주민 가운데 최초로 공무원에 임용됐다. ‘공무원이 알고 보니 간첩이었다’는 건 박 시장에게도 큰 타격이고 대형 이슈(국정원 댓글 조작 사건)를 물타기할 수 있는 좋은 재료였을 거라고 생각한다. 상당히 파격적이지 않나. 또 당시에 정착 잘하는 북한이탈주민으로 방송에 한두 차례 출연도 했었다. 이런 것들이 연관성이 있었다고 합리적인 의심을 할 수밖에 없다.”
― 사건 배후에 누가 있다고 생각하나.
“국정원만 있진 않을 것이다. 댓글 조작 사건을 덮기 위한 무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 내 사건은 어떻게 보면 빙산의 일각이다. 훨씬 더 많은 사건들이 조작됐고 징역을 살고 있는 사람도 있다. 사실을 얘기하려고 해도 도와줄 수 있는 여건이 안 된다.”
― 조작 사건의 핵심 문제는 무엇인가.
“첫째, 조작에 엄청난 국민 세금이 들어갔다. 둘째, ‘종북 플레이’를 하면서 민심을 혼란시켰다. 셋째, 한 개인의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어버렸다. 이런 문제들이 앞으로라고 해서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다. 과거에 비해 간첩 조작 사건이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있다는 말은 간첩이나 ‘종북 플레이’가 먹힌다는 것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어떻게 이런 조작 사건이 만들어졌으며 선거 때마다 어떻게 쓰였는지에 대해 낱낱이 밝혀야 한다.”
― 앞으로 간첩 조작 사건이 없으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국정원 수사권을 폐지해야 된다. 간첩에 대한 정보를 받으면 경찰이나 검찰에서 수사를 하는 게 좀 더 합당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국정원에서 간첩을 잡기도 하지만, 수사권을 남용해 조작된 건이 너무 많다. 이와 관련해 국정원에선 그 어떤 사과도 없었을 뿐더러 변화도 없었다. 국정원이 갖고 있는 수사권이 정말 간첩을 잡기 위해 있는 것인지, 수사권을 이용해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언론 플레이를 위해 있는 것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똑같은 일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김경민 기자 mercury@ilyo.co.kr
간첩 혐의 벗은 뒤 일상…탈북자들 압력에 이사만 수차례 유우성 씨는 “수사를 받은 지 20일 만에 17kg이 빠졌을 정도로 마음고생이 심했다”고 말했다. “전보다 보기 좋다”는 사진 기자의 말에 쑥스러워했다. 간첩 혐의를 벗은 뒤 그의 일상이 궁금해졌다. ― 재판이 끝난 뒤 2차 피해는 없었나. “재판이 끝났는데도 불구하고 탈북자들이 여론전을 펼쳤다. 탈북자들은 내가 다니던 대학교에 찾아가 ‘퇴학시켜라’ ‘학사 학위를 박탈하라’고 시위를 했다. 심지어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까지 와서 시위를 했다. 대법원 판결이 난 뒤 집에서 쫓겨나 지인 집에서 8개월 동안 살았다. 탈북자들이 지인에게 압력을 줘서 거처를 또 옮기게 됐다. 결혼하고 2년 만에 3번 이사했다.” ― 이 일로 공황장애도 생기고 고생 많이 했다고 들었다. “2016년 2월 연세대학교 사회복지학과에서 석사 과정을 끝냈다. 박근혜 정권에서 사회복지와 관련된 단체에 취업을 하려고 했다. 그런데 써주는 곳이 한 군데도 없었다. 사회복지 재단은 정부에 지원을 받는 곳이 많다 보니 정부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도 했는데, 사장이 결국 못 쓰겠다고 하더라. 2016년 3월부터는 가락시장에서 야채를 팔다가 그것도 사정이 여의치 않아 아파트 기초 공사하는 막노동을 했다. 올해 3월부터는 자그마한 여행사에서 일을 하고 있다.” ― 변호를 맡은 변호사와 결혼하셨다고 들었다. “제 사건을 맡았던 변호사다. 추가 모집했던 변호사 중 한 분으로, 계속 만나서 사건에 대해 얘기를 나누다 보니 정이 들었다. 항소심 끝난 지 꼭 1년 되던 날인 2015년 4월 25일 화촉을 밝혔다.” ― 동생 분 근황도 궁금하다. 손해배상청구 소송 진행 상황은. “동생은 중국에서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다. 손해배상청구 소송은 대한민국, 검찰, 국정원, 남재준 전 국정원장 다 들어가 있다. 소송이 굉장히 방대하다는 말이다. 재판부에서 소송을 무거워 한다. 국정원에선 대형 로펌에 의뢰해 싸우고 있다.” ― 영화로도 제작 돼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영화를 본 소감은. “영화 만들어질 것이라고 생각 못했다. 많은 분들이 봐주고 호응해줘서 고마웠다. 대한민국 정의가 살아 있어서 나 또한 무죄를 받을 수 있었다.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지고 응원해주셨기 때문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