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와 의원들이 지난 9월 29일 서울역에서 추석 귀성길에 오른 시민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불거진 후 별다른 정치적 발언이 없었던 두 의원은 이례적으로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두 의원은 지난 1월 당원권 정지 징계를 받았을 때는 공식 입장을 내지 않았었다. 서 의원은 10월 22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징계가 부당하다며 홍준표 대표 사퇴를 요구했다. 이 과정에서 성완종 리스트 사태 때 홍 대표가 자신에게 도움을 요청한 녹취록이 있다는 사실까지 폭로했다. 친박 진영과 친홍 진영의 대결이 진흙탕 싸움으로 번지는 양상이다.
서 의원을 야인 시절부터 보좌해온 최측근은 현직 당 대표를 물러나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느냐는 질문에 “아주 쉽다”면서 자신감을 보였다.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는 “국정감사가 끝나면 알게 될 것”이라고 말을 아꼈다. 정치권에선 서 의원이 자신감을 보이는 이유가 기자회견에서 언급한 녹취록 때문이 아니겠냐는 분석이 나온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 1억 원을 받아 홍 대표에게 전달한 것으로 알려진 윤 아무개 전 경남기업 부사장은 서 의원 측근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홍 대표 사건의 거의 유일한 증거는 윤 전 부사장의 진술뿐이다. 홍 대표가 서 의원에게 도움을 요청한 이유다. 하지만 윤 전 부사장은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홍 대표가 그런 부탁을 했다는데 저는 사건이 불거진 이후 서 의원이나 그 측근들로부터 어떤 연락도 받은 적이 없다”면서 “서 의원은 그런 일에 발 담그기 싫어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윤 전 부사장은 1심부터 항소심까지 홍 대표에게 돈을 전달했다는 일관된 진술을 하고 있다. 윤 전 부사장은 앞으로도 진술을 번복할 뜻이 없으며 재판과정에서 자신이 증언한 것은 모두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홍 대표 측 관계자는 “당시 청탁이나 회유를 한 것이 아니라 당신(서 의원) 사람이 왜 갑자기 그런 주장을 하느냐고 따졌다는 것 아닌가. 그게 왜 문제가 되는 것이냐”고 되물었다.
서 의원 측도 기자회견에서 언급한 녹취록을 향후 공개할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서 의원 측은 “서 의원이 8선인데 그렇게 막 나가면 되겠냐”면서 “녹취록은 공개하지 않을 예정이고 다른 방법이 있다”고 말했다. 녹취록은 서 의원 측의 핵심 카드가 아니라는 얘기다. 친박계 의원들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서는 “인위적으로 연대를 하기 위해 접촉을 한 적은 없다. 인위적으로 하지 않아도 위기감이 생기면 자연스럽게 모일 것”이라고 했다.
서 의원과 마찬가지로 최경환 의원도 홍 대표 사퇴를 요구하고 나섰다. 최 의원은 SNS를 통해 “부당한 징계결정에 대해서는 절대 승복할 수 없다”면서 “홍 대표의 즉각 사퇴를 요구하며 앞으로 이를 위해 끝까지 싸워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최 의원 측 관계자는 “서 의원과 논의해서 글을 올린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아직 결정된 것이 없지만 향후 연대 가능성은 있다”고 말했다.
홍 대표가 친박 청산을 강하게 밀어붙이면서 위기감을 느낀 친박 진영이 결집하는 모양새다. 친박 청산이 오히려 친박 부활의 빌미를 준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온다. 친박계 일부에서는 출당안이 부결되면 홍 대표가 정치적인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친박계 의원 관계자는 “아직까지 두 의원과 연대를 논의한 적은 없다”면서도 “다음 차례는 우리라는 이야기가 자꾸 나오니까 이번 기회에 연대해서 대응해야하는 것인지 고민이 있는 것은 맞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두 사람에 대해서는 이미 당원권 정지 징계를 내렸다가 복권 시켰던 것 아닌가. 그런데 또 다시 같은 사안으로 징계를 하는 것은 막 나가자는 것이다. 이번에 우리랑 상관없다고 그냥 넘어가면 나중에 우리에게 부당한 징계를 내려도 대응을 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친박계가 아직 건재한 가운데 두 사람을 제명하기 위한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이끌어 낼 수 있느냐는 회의적 시선도 있다. 정우택 원내대표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갑자기 내쫓듯이 하면 반발은 당연한 것”이라며 두 의원을 옹호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박 전 대통령은 현역 의원이 아니기 때문에 최고위 의결을 통해 제명이 가능하지만 이 또한 만만치 않은 일이다. 한국당에서 의결권을 가진 최고위원은 9명이다. 이 가운데 류여해, 이재만, 김태흠 최고위원은 이미 징계안에 반대표를 던지겠다는 뜻을 확실하게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외에도 박 전 대통령 지지층을 의식한 반대표가 나올 가능성이 있다.
홍 대표가 친박 청산을 끝까지 강행할 경우 당내 친박계 의원들이 탈당해 제2의 친박연대를 만들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한 친박계 의원 관계자는 “당을 버리고 떠났던 사람들은 개선장군처럼 환대받고, 당을 끝까지 지키려했던 사람들은 친박이라는 이유로 핍박을 받으니 불만이 왜 없겠느냐”고 말했다. 그러나 앞서의 서 의원 최측근은 “우리는 절대 탈당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홍 대표보다) 훨씬 유리하다. 홍 대표를 물러나게 할 것”이라고 했다.
반면 한국당 한 관계자는 “과거에는 친박 의원들이 30~40명에 달한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지금은 친박이라고 자처하는 의원들이 거의 없다. 몇몇 의원들이 뭉친다고 해도 큰 영향력은 없을 것”이라고 평가 절하했다. 또 다른 친박계 의원실 관계자도 “박 전 대통령 일에 우리 의원님이 적극적으로 활동했던 것은 맞지만 서 의원이나 최 의원 일에까지 나서야 하는 것인지는 의문”이라며 친박계가 연대하는 것에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얼마 남지 않은 친박계 의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리는 것이다.
한국당 한 전직 의원은 “홍 대표와 서 의원의 싸움에선 결국 홍 대표가 이길 것”이라며 “서로 신상털기로 가면 서 의원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결국 명분 싸움인데 명분은 홍 대표에게 있다”고 분석했다. 이 전직 의원은 “최고위나 의원총회에서 제명안이 부결될 가능성도 있지만 부결되어도 홍 대표에게 큰 타격은 없을 거다. 일단 친박을 청산하기 위한 진정성을 보여준 것이 된다. 바른정당 통합파들도 출당이 안됐으니까 (한국당) 못 간다 하기도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전직 의원은 “만약 친박계가 탈당을 안 한다고 하면 과거 이명박 정부에서처럼 당론에 대해 어깃장을 놓거나 하는 식으로 투쟁할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본다”면서 “그래봐야 본인들만 손해”라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 친박계는 같은 여당임에도 주요 결정 사안에 대해 캐스팅보트 역할을 했다. 이명박 정부는 주요 법안 통과를 위해 야당만큼 친박계 설득에도 공을 들여야만 했다.
홍 대표 측 관계자는 친박계가 사퇴를 요구하고 있는 것에 대해 “이번 사안과 관련해서는 홍 대표가 자신의 SNS에 올린 글이 전부다. 추가로 할 말은 없다”고 밝혔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