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워기필터를 애용한다는 송파구에 거주하는 30대 김 아무개 씨의 말이다.
최근 SNS를 통해 알려진 샤워기필터는 큰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샤워기필터는 집안에서 쓰는 샤워기에 필터를 달면, 물이 필터를 거쳐 나오면서 깨끗한 물을 쓸 수 있다고 광고하고 있다. 대체로 녹물 제거, 잔류염소 제거, 항균효과 등을 내걸고 각자 상품마다 조금씩 다른 강점을 광고하고 있다.
한 포털사이트에 ‘샤워기필터’를 검색하면 3만 7000개가 넘는 관련 상품을 볼 수 있다. 이처럼 샤워기필터는 포털사이트 한 곳뿐만 아니라 온라인 오픈마켓, 대형마트, 소셜커머스 등을 타고 날개 돋친 듯 팔리고 있다. 앞서의 김 씨도 집안에 샤워기필터를 예비용으로 20개 정도 사두고 색이 변하면 갈아 끼우고 있다.
샤워기필터가 큰 인기를 얻고 있지만 규정은 전무한 상황이다.
이렇게 불티나게 팔리는 샤워기필터지만 정작 이를 관리 감독하는 부처나 규제는 하나도 없어 논란이 예상된다. 샤워기필터를 판매하는 업체를 단속하는 기관도 제품을 인증해주는 부처도 전혀 없었다. 규제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탓에 누구나 만들어 판매하거나 심지어 불량 제품을 판매해도 불법이 아니다.
윤종필 자유한국당 의원실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안전성 기준 및 유해성 검사 실시 여부를 묻는 질의에 산업통상자원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 등 각 부처 모두 해당부처의 소관업무가 아니라는 답변을 해왔다. 대부분의 제품을 관리 감독하는 산업자원부에서는 “‘전기용품 및 생활용품 안전관리법’에 따라 안전 관리 대상 생활용품(80개 품목)을 지정하고 관리하지만 ‘샤워기 필터’는 안전관리대상 품목에 해당되지 않는다”며 “안전관리대상에 없기 때문에 산업부에서 관리하는 관련 안전 기준이나 법적 근거조항이 없다”고 답변했다.
식품이나 의약품을 관리 감독하는 식약처도 마찬가지였다. 같은 질의에 대해 식약처는 “샤워기필터는 관리되고 있지 않은 제품이다. 현재 관리되고 있지 않은 제품에 대해서는 국가기술표준원 주관으로 관계부처 협의회에서 소관부처를 논의하도록 돼있다”고 말했다. 산업부, 식약처 모두 자신들 소관이 아니라고 발뺌하는 사이 샤워기필터는 관리, 감독되지 않은 상태로 팔려나가고 있었던 셈이다.
‘규제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탓에 필터의 유해성 여부 시험 등은 제대로 된 규정 없이 진행됐고, 그 결과는 안전함을 광고하는 데 쓰이고 있다. 샤워기필터 업체인 A 회사 광고를 보면 각종 시험 검사 결과를 제시하며 샤워기에서 나오는 물이 안전하다고 광고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공개한 시험 내역은 물을 거르는 것과 관련이 없는 필터 자체의 중금속 함유 여부 시험이었다.
한 연구소 관계자는 “시험성적서를 보니 이 시험은 샤워기필터의 성능을 검사하는 시험이 아니라 필터에 중금속이 있는가를 검사한 시험이다. 성능은 시험 결과만으로는 알 수 없다”며 “아직 샤워기필터 관련 제대로 된 시험 규정이 없어 임의대로 시험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샤워기필터 업체는 “물을 얼마나 걸러주는지에 대한 시험성적서는 없다. 미세한 필터로 불순물을 걸러주는 데 도움을 준다”고만 설명했다.
샤워기필터를 애용한다는 30대 배 아무개 씨는 “오래된 집에 살고 있는데 마침 광고를 보고 샤워기필터를 구매했다. 시험성적서를 꼼꼼히 보지 않아 몰랐지만 당연히 샤워기필터 성능 관련 시험인 줄 알았다. 관련 규정도 없는 줄 몰랐다”며 “샤워기필터가 도움이 된다, 안 된다를 떠나서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돈을 지불할 정도로 필요한지 검증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포털사이트에 샤워기필터를 검색하면 4만 개에 가까운 결과를 볼 수 있다.
제대로 된 시험도 없이 샤워기필터 업체가 난립하면서 경쟁이 치열해지다보니 각 업체의 과장광고가 심해져갔고 소비자들의 공포감만 자극하게 됐다. 한 샤워기필터 업체의 예를 보면 SNS를 통해 ‘필터 없이 쓰는 수돗물에서는 잔류염소로 인해 각종 피부병, 노화 가속화 등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광고했다. 이 업체의 광고는 상수도사업본부에서 지정한 거짓, 과장행위 유형에 정확히 들어맞는다.
상수도사업본부는 “잔류염소는 세계보건기구(WHO)에서는 5mg/L이하로 권장하고 지침을 만들었으며 이 값은 매우 보수적이어서 독성이 없음을 의미한다. 서울시는 이보다 더욱 낮은 02.~1.0mg/L을 유지하고 있어 건강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수돗물 속에 남아 있는 잔류염소는 인체에 해가 없으나 마치 독극물처럼 설명하고, 염소가 인체에 치명적인 해를 미친다는 등의 표현으로 소비자의 불안감을 증폭하는 광고는 신고 대상이다”라고 명시했다.
새로운 제품이 나올 때마다 이 같은 촌극이 지속적으로 반복된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작년 윤종필 의원은 ‘비타민 스틱’에 대해서도 비슷한 지적을 한 바 있다. 지난해 흡연행위처럼 보이는 전자담배 모양의 ‘비타민 스틱’이라는 제품이 학생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얻었지만 역시 아무런 규제 없이 팔려나갔다. 심지어 WHO에서 이 제품을 유해하다고 했지만 어떤 정부 기관도 관심을 두지 않아 문제가 된 바 있다.
윤종필 의원은 “최근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샤워기필터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는 가운데 관리 부처 하나 없이 무방비 상태로 놓여 있는 상황이 안타깝다. 인체 위해성 여부에 대한 철저한 검사 및 관리를 통해 해당 제품으로 인해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정부가 관심을 가져야한다”며 ”새로운 제품이 나올 때마다 규제 없이 팔려나가다가 나중에 문제가 터지고 나서야 허둥지둥 규정을 만드는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