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존 매케인 공화당 후보의 러닝메이트로 지명된 세라 페일린. 일약 스타 정치인으로 떠오른 만큼 혹독한 유명세를 치르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 ||
선거판 분위기가 순식간에 바뀐 것은 존 매케인 때문도, 버락 오바마 때문도 아니었다. 알래스카의 작은 마을 출신의 한 무명 여성 정치인 때문이었다. 존 매케인 공화당 후보의 러닝메이트로 지명된 세라 페일린 알래스카 주지사(44)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등장하자마자 오바마에 필적할 인기를 얻었던 그녀였지만 지난 한 달이 결코 무지개빛만이었던 것은 아니다. 유명세를 치르는 대가로 동시에 각종 스캔들로 홍역도 앓아야 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최근에는 외도설까지 불거지는 등 페일린을 둘러싼 악소문들은 좀처럼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떠도는 소문들은 과연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또 어디까지가 거짓일까. 그녀는 자신의 말처럼 정말 ‘준비된 부통령’일까.
현재 페일린을 둘러싼 소문들은 그 종류도 가지가지요, 그 대상도 광범위하고 다양하다.
가장 최근 페일린 측을 당혹하게 하고 있는 소문은 다름 아닌 ‘외도설’이다. 페일린이 과거에 남편의 친구와 바람을 피운 적이 있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처음 이런 주장을 하고 나선 것은 미 연예주간지 <내셔널인콰이어러>였다. 보도에 따르면 페일린은 10년 전 앵커리지 북부에 위치한 와실라 시장으로 재직하던 당시 남편 토드 페일린의 동업자와 잠시 외도를 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이 둘 사이의 관계를 눈치 채고는 즉시 절교를 선언했고, 곧 동업자 관계도 청산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셔널인콰이어러>가 익명으로 언급한 ‘동업자’는 누구일까. 이에 대해서 현재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가장 먼저 ‘용의선상’에 떠오른 인물은 페일린 부부의 절친한 친구였던 스콧 리히터(39)였다. 리히터는 지난 7월 말 부인과 이혼을 한 후 현재 홀로 지내고 있다. 항간에서는 그가 페일린이 남편과 결혼하기 전에 사귀었던 남친이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페일린과 관련해 그의 이름이 오르내릴 것을 염려했기 때문일까. 리히터는 최근 법원에 자신의 이혼서류 공개를 금지해줄 것을 긴급 요청했다. 그의 이런 행동이 즉시 사람들의 의심을 샀던 것은 물론이었다. 알리고 싶지 않은 꺼림칙한 내용이 서류에 있는 것 아닌가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리히터의 편을 들어주고 나선 사람은 다름 아닌 전 부인 데비였다. 그녀는 남편과 페일린의 외도설에 대해서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이면서 “1000% 단언컨대 전 남편과 페일린은 결코 바람을 피우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또한 리히터가 이혼서류 공개를 꺼려하는 것은 그가 지극히 사생활을 중시하는 사람이며, 행여 자신의 재정 상태나 전화번호, 집주소 등이 언론에 떠돌까 조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해명에도 불구하고 페일린과 리히터를 둘러싼 해괴한 소문들은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4월 출산한 페일린의 막내아들인 트리그의 친부가 사실은 리히터라는 소문도 그 중 하나다. 이런 의문을 제기한 사람들은 ‘왜 페일린은 임신 7개월이 다 되도록 주위 사람들에게 임신 사실을 숨겼는가’와 ‘만삭일 당시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양수가 터졌는데도 왜 굳이 8시간을 비행기를 타고 알래스카까지 날아가서 아이를 낳았는가’라는 점도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고향의 작은 마을에서라면 출생 기록부를 손쉽게 조작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이와 관련, 일부에서는 급기야 페일린이 아들을 출산한 ‘마추 병원’에 실제 출생기록부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소문까지 불거졌다.
스캔들의 주인공이 리히터가 아닌 또다른 인물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과거 알래스카 팔머고교 하키팀 코치를 지냈고, 현재는 팔머시의회 의원으로 재직하고 있는 브래드 핸슨이 페일린의 내연남이었다는 것이다. 한 측근에 의하면 둘은 1990년대 중반 페일린이 와실라시장으로 당선될 무렵 가까워졌으며, 당시 핸슨은 페일린의 남편과 함께 스노모빌 대리점을 운영하는 동업자였다. 하지만 페일린과 핸슨의 관계를 눈치 챈 남편이 즉시 대리점 문을 닫고 동업자 관계를 청산했다는 것이다.
물론 모두 소문에 불과하지만 공화당 측은 이런 소문을 처음 퍼뜨린 <내셔널인콰이어러>를 상대로 법적 소송을 제기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세라 페일린(가운데)의 가족들. 장남 트랙, 남편 토드, 임신 5개월인 큰딸 브리스톨, 셋째딸 파이퍼, 둘째딸 윌로(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 작은 사진은 막내 트리그. | ||
브리스톨의 임신 사실은 보수적인 공화당 후보로서 도대체 아이들 교육을 어떻게 시켰나 하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페일린에게는 분명 치명적이었다. 하지만 페일린은 딸의 임신 사실을 당당히 언론에 공개했고, 더불어 낙태를 하지 않고 엄마가 되기로 결심한 딸이 자랑스럽다는 말도 덧붙였다. 또한 딸이 출산 후 곧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라고 말하면서 할머니가 되는 것이 매우 설레고 기대된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비록 이 모든 것이 막내 아들 트리그의 생모가 사실은 페일린 자신이 아니라 딸 브리스톨이라는 황당한 소문을 무마하기 위해서이긴 했지만 페일린의 이런 용감한 행동은 많은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어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다른 데서 불거졌다. 알려진 바와 달리 사실은 페일린이 딸의 임신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고 있으며, 페일린을 임신시킨 존스턴에 대해서도 늘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자신의 경력에 누가 될 것을 염려해서 서둘러 딸을 결혼시킬 계획이었다는 소문도 불거졌다. 부통령 후보 지명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어떻게든 결혼을 성사시키기 위해 페일린이 직접 팔머시의 결혼식장을 알아보러 다녔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결국 브리스톨이 “거짓말은 싫다”면서 극구 반대한 끝에 모두 허사로 돌아가고 말았다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브리스톨의 문란한 사생활도 도마 위에 올랐다. 고등학교 친구는 “브리스톨은 학창 시절 지독한 술고래였다. 심지어 마약도 했다”고 폭로했다. 현재 인터넷에는 브리스톨이 친구들과 술병을 들고 있는 사진이 유포된 상태다. 또한 브리스톨이 셀 수 없이 많은 남학생들과 관계를 맺었다는 소문도 떠돌고 있다.
현재 이라크에서 군복무 중인 장남 트랙(19)이 고교 시절 유명한 마약 복용자였다는 소문도 제기됐다. 이와 관련 한 친구는 “나는 트랙이 코카인을 흡입하거나 옥시콘틴을 피우는 것을 여러 차례 보았다. 미성년 신분으로 술을 마시고 담배도 피웠다”고 말했다. 또한 군에 입대하기 직전까지 매일 밤 파티를 벌였으며, 전교생 중 가짜 신분증을 소지하고 있는 두 명 중 한 명이었기 때문에 대표로 주류가게에 들러 술을 사오곤 했다는 것이다.
또한 다른 친구는 “트랙은 2006년부터 2007년까지 1년 동안 완전히 옥시콘틴에 중독되어 있었다. 얼마나 빠져 있었던지 여러 가지 방법, 즉 피우고, 들이마시고, 심지어 먹기까지 했다”고 증언했다.
털어서 먼지 안 나오는 사람 없다고 남편 문제도 조용히 넘어갈 리 없었다. 유픽 에스키모 원주민 혈통인 남편 토드는 와실라고등학교 3학년 때 페일린을 만나 사랑에 빠졌으며, 한때 석유회사 BP에서 근무하던 근로노동자 겸 어부였다. 지난해 벌어들인 수입은 약 4만 6800달러(약 5000만 원)였다.
그의 과거를 둘러싼 소문은 22년 전 음주운전으로 한 차례 체포되었다는 것과 한때 알래스카독립당(AIP)의 당원이었다는 것 정도다. AIP는 알래스카의 영토를 미 연방정부로부터 독립시켜 알래스카로 반환할 것을 주장하는 정당이며, 토드는 1995년부터 2000년까지 당원이었으나 2002년 이후로는 무소속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페일린의 두 얼굴’도 논란거리다. 즉 말로는 보수를 외치지만 지금까지 실제 생활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 소문의 골자다. 가령 페일린은 25세 때 혼전 임신으로 첫 아들을 출산한 경험이 있다. 혼전 순결을 강조하면서 소위 ‘순결 교육’을 주장하고 있는 그녀가 정작 본인은 순결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게다가 현재 고교생 딸마저 덜컥 임신을 했으니 이런 논란이 벌어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밖에도 소위 ‘트루퍼 게이트’로 불리는 인사권 남용에 관한 공방도 아직 법정에서 명확히 가려지지 않아 찜찜한 상태로 남아있다. 현재 페일린은 여동생의 전 남편이자 주경찰관이었던 마이크 우튼을 해임하도록 당시 주경찰청장에게 압력을 넣었다가 거절당하자 경찰청장을 강제 해임시켰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또한 주지사라는 자리를 이용해서 고교 동창생 다섯 명을 주정부에 취직시켰는가 하면, 1996년 와실라시장 재임시에는 경찰서장 얼 스탬보를 임의로 해임시켰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당시 스탬보는 페일린과 달리 총기소지 확대를 반대하는 한편, 술집 영업시간을 기존 새벽 5시에서 2시로 단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페일린이 이에 반대한 이유는 자신이 총기협회의 지지를 받고 당선되었다는 점 그리고 술집업주들에게 적지 않은 선거자금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추측도 떠돌고 있다.
지난 한 달 동안 소나기처럼 퍼붓던 스캔들에도 꿋꿋이 버텼던 페일린이 과연 앞으로 남은 40여 일을 얼마나 잘 견뎌낼 수 있을까. 백악관 입성을 위한 험난한 가시밭 행보는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