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의 발단은 지난 9월 20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감사원은 금융감독원에 대한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날 감사원이 공개한 292쪽 분량 ‘금융감독원 기관운영 감사보고서’에는 21개 항목에 대한 처분요구 및 통보사항이 담겨 있었는데, 감사원은 이 가운데 위법 및 부당사건이 52건에 달한다며 처분조치를 내렸다. 특히 국민적 공분을 자아낸 금감원 직원의 차명계좌 불법 주식거래·신입직원 채용비리는 검찰에 수사 의뢰할 수준이었다.
감사원에 따르면 금감원은 2016년도 신입직원 채용에서 당초 필기전형에서 불합격한 지원자를 합격시키기 위해 최종합격자 수를 늘리는 등 채용비리를 저질렀다. 감사원은 서태종 전 금감원 수석부원장과 이병삼 전 금감원 부원장보 등이 직접 관여한 것으로 보고 이들에 대한 수사를 검찰에 요청했다. 또 기업 금융 정보를 알 수 있는 일부 직원들이 장모 등 차명계좌로 주식 거래를 한 사실들에 대해서도 수사를 의뢰했다.
여의도에 소재한 금감원의 수사 관할은 서울남부지검인 탓에 긴밀히 감사원과 협조하고 있던 서울남부지검은 수사 발표 이틀 만인 지난 9월 22일 채용비리 관련 서태종 수석부원장과 이병삼 부원장보 등 금감원 사무실 5곳을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사실상 미리 자료를 받고 압수수색을 준비한 것. 검찰의 전격 압수수색에 서태종 수석부원장과 이병삼 부원장보는 사표를 제출했지만 검찰은 5일 뒤인 같은달 27일에도 차명 주식거래 수사를 위해 금감원 등에 대한 추가 압수수색을 벌였다.
문제는 자료 확보가 그 무엇보다 중요한 수사 초반, 수사 대상과 수사 주체 관계인 금감원과 검찰 고위관계자가 서울 여의도 모처 식사자리에 동석한 정황이 <일요신문>에 포착됐다는 것이다. 금융권에 따르면 남부지검이 차명계좌 불법 주식 거래로 금감원을 압수수색한 것은 27일 오전. 하지만 이보다 14~15시간가량 앞선 26일 저녁 6시쯤, 서울 여의도 모처에서 금감원 고위 관계자들과 남부지검 고위 검사가 함께 식사자리를 가졌다.
검찰 측은 <일요신문>의 취재에 “금감원 수사와 연관된 부분이 없어 문제될 게 없다”는 해명을 내놨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서울남부지검 한 관계자는 “식사를 한 건 맞지만 통상 해마다 워크숍을 진행하면서 참석자들과 간단히 식사하는 자리일 뿐”이라며 “금조부 검사들이 참석했고 금융위, 거래소, 학계 등 다른 기관 사람들도 함께 간 것”이라고 해명했다. 당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금융위원회와 금감원, 거래소, 남부지검 등이 공동으로 개최한 ‘불공정거래 관계기관 합동 워크숍’를 마치고 식사를 했다는 것이다. 실제 이날 행사에는 금융위원회, 거래소, 남부지검, 학계 등 기관은 물론 금감원에선 이동엽 부회장 및 고위 관계자들이 참석한 것으로 확인됐다.
금감원의 해명도 검찰과 궤를 같이했다. 역시 이날 행사에 참석한 금감원 관계자는 “증권 관련 일이기 때문에 채용 비리 연루된 서태종 전 수석부원장은 참석하지 않았고 이동엽 부원장만 참석했다”며 “금감원도 불공정거래 등과 관련해선 검찰에 수사 요청을 할 때가 있으니까 그런 관계에 있는 사람들끼리 만난 것”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논란의 식사 자리에 대해서도 앞선 검찰 관계자는 “금감원 압수수색은 형사 6부에서 진행하는데 금조부 검사들은 부서가 달라 압수수색 하는지도 모른다”며 “형사부에서 비밀리에 압수수색하는데 금조부가 알 필요는 없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하지만 워크숍은 사전에 정해진 일정이라 하더라도 압수수색을 하루 앞두고 수사 기관과 수사 대상이 함께 식사자리를 가진 것에 비춰볼 때 검찰의 금감원 수사 의지에 의문이 제기된다. 검찰 관계자의 말대로 금감원 압수수색을 진행한 쪽은 남부지검 형사 6부, 합동 워크숍에 참석한 쪽은 남부지검 금융조세 파트 증권범죄합수단으로 부서가 다르다. 하지만 통상 압수수색을 나갈 때 대동하는 수사관들은 부서와 상관없이 인원수에 따라 압수수색에 동원돼 정보가 빠르게 돈다. 따라서 담당 검사들이 수사관을 통해 압수수색 여부를 알았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또 식사를 제대로 하지 않고 곧바로 자리를 떠난 점 등에서 수사 대상인 금감원 측에 ‘수상한 낌새’를 더 줬을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법조계 관계자는 “20~30년 전만 하더라도 영화처럼 사건의 피의자들이 연을 만들어 억지로 술을 먹고 한 적이 있다지만, 지금은 시대가 달라지지 않았냐”며 “몇 일 전 이미 압수수색을 나갔던 상황에서 또 압수수색이 예정돼 있다면, 식사자리에 나가지 않는 것이 더 좋았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변호사 역시 “수사를 받게 된 측은 검찰에 대해 레이더를 곤두세우기 마련인데, 간부급 검사를 식사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면 얼마나 더 정보를 캐내려고 하겠느냐”며 “우리도 압수수색이 예상되는 기업들에게 조심스럽게 증거를 최소화하라고 하는데, 압수수색 전날 증거를 없앨 수 있는 대상들과 만났다는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고 덧붙였다.
금감원과 서울남부지검의 밀접한 사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실제 금감원과 검찰이 금융권에서 일어나는 각종 비리에 대해 정보를 공유하는 특수 관계다. 금융범죄를 전담하기 위해 만들어진 남부지검 증권범죄합수단은 금감원 등으로부터 건네받은 자료를 토대로 각종 금융 범죄를 전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워크숍에 일원으로 초대됐을 정도로 긴밀하다면 역설적으로 금감원을 수사하게 된 서울남부지검이 행사 참여를 신중하게 고민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법조계 관계자는 “금감원은 금융시장 내에서 일어나는 각종 부당행위를 감시·감독하고 문제 시 검찰에 수사를 의뢰하고, 서로 더 정보를 많이 공유하기 위해 검찰에서 금감원에 검사를 파견하고 금감원도 검찰에 IO(Intelligence Officer·정보관)를 지정해 운영하지 않냐”며 “이런 불필요한 저녁식사는 남부지검이 금감원 수사를 하는 것이 오히려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우려했다.
김상훈 기자 ksanghoon@ilyo.co.kr
그럼에도 진행 중인 금감원 수사 전망은? “한 달 사이 깔끔하게 수사 그림을 다 그린 것 같다.” 서울남부지검이 서울 여의도 금감원 본원 내 서태종 수석 부원장실과 총무국, 감찰실 등 인사비리와 관련된 5곳을 압수수색한 지난 9월 22일 압수수색을 마친 관계자가 압수물을 차량에 옮기고 있다. 연합뉴스 압수수색 대상으로 보건대 사실상 큰 틀의 수사 그림이 다 그려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용환 회장이 수출입은행장 시절 알게 된 수출입은행 간부의 아들 금감원 채용 청탁을 요청받고, 이를 금감원 부원장급 인사에게 전달하는 로비를 했다는 게 검찰 측의 판단. 남부지검 상황에 정통한 한 변호사는 “김용환 농협금융지주 회장이 과거 박근혜 정권 당시 수출입은행장을 하면서 청와대의 지시를 그대로 처리하는 과정에서 대우조선해양, 성동조선해양 재무 회계 부실에 깊숙이 관여됐다는 얘기가 돌지 않았느냐”며 “그 뒤 농협금융지주 회장으로 자리를 옮겼지만 이번 정권에서는 눈엣가시 같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검찰 수사도 원활히 진행됐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법조계 관계자 역시 “이번 수사는 공적 성격이 강한 금융기관들에 대한 부정한 채용 청탁이 얼마나 만연했는지를 꼬집어 보여주는 면도 있지만, 지난 정권에서 중용됐던 인물들을 내몰아내는 성격도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실제 이번 사건에 연루된 서태종 금융감독원 전 수석부원장은 차기 SGI서울보증보험 유력 사장 후보로 이름이 거론됐으나, 이번 사건 탓에 사장 선임이 유야무야된 것으로 알려졌다. [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