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①마사 워싱턴 ②애비게일 애덤스 ③메리 링컨 ④프랜시스 클리블랜드 ⑤엘리노어 루스벨트 | ||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의 부인으로 당시에는 ‘퍼스트 레이디’라는 명칭이 없었기 때문에 ‘미세스 워싱턴’으로 불렸다. 또한 백악관이 아직 완공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백악관에서 거주하지도 않았다. 1792년에 공사가 시작되었던 백악관은 1800년에나 완공되었으며, 당시 백악관은 흰색이 아니라 회색이었다. 따라서 처음에는 백악관이 아니라 ‘대통령 저택’으로 불렸다.
▲애비게일 애덤스 (1797~1801년)
2대 대통령인 존 애덤스의 부인으로 1800년 11월 1일 백악관에 입성한 첫 퍼스트 레이디였다. 하지만 그녀는 백악관을 몹시 싫어했다. 그 이유는 50개의 난로에도 불구하고 ‘너무 추웠다’는 데 있었다. 1814년 영국과의 전쟁으로 백악관 일부가 불타자 불에 그을린 자국을 가리기 위해서 건물 전체를 흰색으로 칠했으며, 이때부터 백악관으로 불리게 됐다.
그녀는 정치와 정책 입안에도 활발히 참여했던 첫 번째 퍼스트 레이디로 기록되어 있으며, 남녀평등사상을 강조하는 진취적인 여성이었다. 이에 반대파에서는 그녀를 가리켜 ‘미시즈 스 프레지던트’라고 비꼬기도 했다.
▲메리 링컨 (1861~1865년)
남편인 에이브러햄 링컨은 미국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대통령인 데 비해 그녀는 역대 퍼스트 레이디들 중 가장 인기가 없는 인물로 꼽힌다. 이유는 악명 높은 쇼핑중독증 때문이다. 얼마나 쇼핑을 좋아했는지 퍼스트 레이디 시절 옷을 사고 백악관을 치장하는 데 가산을 거의 탕진할 지경이었다. 기록에 의하면 재임 시절 뉴욕으로 원정 쇼핑을 하러 간 횟수만 11번이며, 충동구매의 여왕으로 물건을 반품하는 일이 잦아 상인들의 원망을 사기도 했다.
한 번은 그녀가 친구에게 “난 비싼 옷을 입어야 한다. 온 국민이 내가 뭘 입는지 두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다. 체면을 유지하려면 남편이 버는 것보다 더 많이 필요하다. 남편은 너무 고지식해서 월급 외에는 한 푼도 못 벌어온다. 그러니까 내가 빚을 내고 다닐 수밖에 없다.”
▲프랜시스 클리블랜드 (1885~1888년, 1892~1896년)
역사상 처음으로 임기를 건너뛰어 재선에 성공했던 22대 스티븐 클리블랜드 대통령의 부인이었던 그녀는 남편과의 27세의 나이 차이로 더욱 화제가 됐던 인물이다. 당시 그녀의 나이는 21세였으며, 이로써 최연소 퍼스트 레이디라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클리블랜드 대통령은 백악관 입성 당시 ‘총각’이었으며, 백악관에서 결혼한 첫 번째 대통령이었다.
아름다운 외모와 온화한 성품으로 인기가 높았던 그녀는 클리블랜드 대통령에게는 적대적이었던 언론도 그녀에게만은 호의를 베풀게 했다. 심지어 당시 언론은 대통령을 가리켜 ‘프랜시스의 남편’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엘리노어 루스벨트 (1933~1945년)
“여성은 티백과 같아서 뜨거운 물에 넣어봐야 얼마나 강한지 알 수 있다”라는 명언으로 유명한 그녀는 진보적인 성향의 페미니스트였다. 남편의 정책에 깊이 관여했던 그녀는 정치적 야망도 뛰어났으며, 당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여성인권과 소수민족에 관한 정책은 대부분 엘리노어의 생각에서 나온 것이었다.
너무 나선다는 이유로 처음에는 비난을 받았지만 점차 존경을 받기 시작했으며, 현재는 미국에서 가장 존경 받는 여성 가운데 한 명으로 거론되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 이상의 영부인’이었다고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
▲ ⑥재클린 케네디 ⑦클라우디아 존슨 ⑧낸시 레이건 ⑨힐러리 클린턴 ⑩로라 부시 | ||
취임 당시 31세의 젊은 나이였으며 뛰어난 패션감각으로 시대의 스타일 아이콘으로 추앙받았다. 퍼스트 레이디의 패션이 세인의 관심을 받기 시작한 첫 번째 여성이었다.
반면 쇼핑중독증으로 남편이었던 존 F 케네디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는 일화도 있다. 취임하자마자 옷을 사느라 돈을 흥청망청 써버렸던 재클린은 당시 시아버지가 저축해 놓은 5만 달러 가운에 3분의 2를 16개월 만에 다 써버리기도 했다.
▲클라우디아 존슨 (1963~1969년)
귀여운 외모 때문에 ‘레이디 버드’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한 그녀는 백악관 시절 특히 수도 워싱턴을 아름다운 도시로 가꾸는 데 전력했다. 그녀의 목표는 수백만 송이의 꽃으로 워싱턴을 장식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퍼스트 레이디 최초로 자신만의 공보 비서관을 고용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는 퍼스트 레이디 직속의 부하직원을 둔 첫 번째 사례였다.
▲낸시 레이건 (1981~1989년)
남편 로널드 레이건과 마찬가지로 전직 영화배우 출신이라는 점이 특이하다. 남편의 집무와 관련해서 일이 안 풀릴 때마다 점성술사를 찾아가 점을 본 것으로 유명하다.
극심한 경기 불황일 때 값비싼 도자기를 대량으로 구입해서 오점을 남기기도 했다. 당시 그녀는 총 4370개의 도자기 식기를 구입했으며, 비용은 모두 21만 399달러(약 2억 원)가 소요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힐리러 클린턴 (1993~2001년)
힐러리 클린튼은 퍼스트 레이디의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이슈 메이커’였다. 퍼스트 레이디의 신분에 만족하지 않고 직접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을 정도로 여장부 스타일이다.
지금까지 역대 영부인들 중 가장 정치 활동을 활발하게 했던 인물로 기록되어 있으며, ‘조신한 퍼스트 레이디’에서 ‘대놓고 나서는 퍼스트 레이디’로 존경과 미움을 동시에 받기도 했다.
1993년 의료보험 개혁위원장으로 활동하다가 결국 실패했으며, 특히 외교안보 정책에 깊이 관여해서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자문 역할을 톡톡히 수행했다. 클린턴 대통령 스스로 “최종 결정을 내리기 전에 마지막으로 아내에게 조언을 구한다”라고 말했을 정도였다.
남편의 임기 말에는 퍼스트 레이디로서 뉴욕주 상원의원에 당선되는 첫 번째 기록을 세웠다.
▲로라 부시 (2001~2009년)
따뜻하고 자상한 이미지로 미국인들에게 꽤나 인기 있는 퍼스트 레이디다. 전통적인 현모양처 스타일이 그녀의 강력한 무기. 때문에 처음에는 부시 대통령의 인기를 거드는 역할을 했지만 임기 말이 가까워오면서 부시 대통령의 인기가 떨어지자 덩달아 인기가 하락하고 있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