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부터 1974년까지 퍼스트 레이디를 지냈던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부인 팻 닉슨의 말이다. 그녀의 말에서 퍼스트 레이디란 신분이 화려한 겉모습과는 달리 사실은 얼마나 고되고 어려운 자리인지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퍼스트 레이디는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실제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는 존재로 사실 어떤 직책보다도 중요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근래 들어 단순히 ‘대통령의 아내’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 ‘러닝메이트’ 혹은 ‘조언자’ 등의 이미지가 강해진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때문에 대통령 못지않게 언론에 노출되는 빈도도 더욱 잦아졌으며, 이런 풍토는 이번 미 대선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예비 퍼스트 레이디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있는 요즘, 공화당의 신디 매케인과 민주당의 미셸 오바마의 일거수일투족은 미국인들의 주된 관심거리다. 이에 대통령 후보 본인 외에도 부인의 자질까지 검증해야 된다는 분위기도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백악관의 안방마님이자 세계 최고 지위의 여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미국의 퍼스트 레이디에 대한 이모저모를 살펴 보았다.
최근 한 설문조사에서 미국인의 52%가 “퍼스트 레이디가 누구인지도 투표를 결정하는 데 영향을 미친다”고 응답했을 만큼 이번 대선에서 퍼스트 레이디의 역할은 상당히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다. 이에 예비 퍼스트 레이디에 관한 지지율 조사도 따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현재 신디(52%)와 미셸(56%)은 근소한 차이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고 있는 상태다.
퍼스트 레이디의 유형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앞으로 나서지 않고 내조에 전념하는 전통적인 보수 스타일과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하는 능동적인 진보 스타일이 그렇다. 전자의 경우에 해당하는 퍼스트 레이디로는 낸시 레이건, 바버라 부시, 로라 부시 그리고 신디 매케인이 있으며, 후자로는 애비게일 애덤스, 엘리노어 루즈벨트, 힐러리 클린턴, 미셸 오바마 등이 있다.
보수적인 퍼스트 레이디들은 주로 자선활동에 전념하면서 정치에는 거의 관여하지 않는 반면, 진보적인 퍼스트 레이디들의 경우에는 단지 대통령의 부인이라는 역할에만 만족하지 않고 ‘정치적 파트너’ 역할에 더 치중하는 경향이 있다. 때문에 대통령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충고를 하거나 때로는 직접 정치에 관여하기도 한다.
▲ 로잘린 카터(왼쪽), 힐러리 클린턴. | ||
아이러니하게도 퍼스트 레이디는 대통령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그 지위에 관해 헌법에 명시돼 있지 않을 뿐아니라 법적으로도 아무런 규정도 없다. 역할의 한계 또한 불분명하기 때문에 퍼스트 레이디 본인들조차 오랫동안 자신들의 역할을 규정하는 데 많은 고민을 해왔다.
퍼스트 레이디라는 명칭이 처음 사용된 역사만 봐도 그렇다. 퍼스트 레이디라는 명칭은 대통령이라는 직함이 생긴 후 훨씬 뒤에나 공식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처음 퍼스트 레이디라는 명칭이 사용된 것은 18대 대통령인 율리시스 그랜트(1869~1877년)의 부인이었던 줄리아 여사 때부터다. 그리고 19대 대통령인 R. 헤이스의 취임식에서 한 기자가 ‘퍼스트 레이디’라고 부르면서 완전히 공식적인 명칭으로 자리 잡았다.
그렇다면 그 전에는 대통령의 부인을 뭐라고 불렀을까. 특정한 직책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저 남편의 성을 따라서 부르는 것이 관례였다. 가령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의 부인이었던 마사 워싱턴의 경우 ‘미시즈 워싱턴’ ‘레이디 워싱턴’ 혹은 ‘리퍼블리칸 퀸’ 등으로 불렸다.
퍼스트 레이디의 경호는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비밀 경호원을 통해 이루어진다. 대통령이 임기를 마치고 퇴임한 후에도 경호원의 보호를 받긴 하지만 그 기간은 10년으로 제한되어 있다. 예전에는 평생 동안 경호를 받았으며, 최장 기록은 36대 대통령인 린든 존슨의 부인 클라우디아 존슨이 세웠다. 그녀는 퇴임 후에도 44년 동안 대통령 경호원의 보좌를 받았다.
백악관 내에서 퍼스트 레이디의 집무실은 대통령의 집무실이 서관에 위치한 데 반해 동관에 위치해 있다. 처음으로 백악관에 자신만의 집무실을 가졌던 퍼스트 레이디는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의 부인인 로잘린 카터였다. 힐러리 클린턴의 경우에는 전통을 깨고 자신의 집무실을 대통령의 집무실이 있는 서관으로 옮겨서 한때 논란이 되기도 했었다.
퍼스트 레이디 직속 부하 직원들로는 사무장, 대변인, 플로리스트, 개인비서 등이 있다. 퍼스트 레이디 밑에서 일할 경우 대통령 부하 직원들과 마찬가지로 고소득이 보장된다. 가령 현재 로라 부시의 한 여자 속기사의 연봉은 6만 3000달러(약 7500만 원)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퍼스트 레이디 본인은 연봉을 받지 않는다. 대통령이 공무원으로서 급여와 수당을 받는 것과 달리 퍼스트 레이디는 하나의 ‘신분’일 뿐 ‘직책’이 아니기 때문에 따로 급여를 받지 않는다. 현재 조지 부시 대통령의 연봉은 40만 달러(약 4억 6000만 원) 정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