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에 이어 나도 군인이 되어 휴전선에서 근무했다. 전선에 선 이유는 자유민주주의를 위해서였다. 휴전선에서 울려 퍼지는 북한 측 스피커에서는 악질지주나 자본가 친일파나 반동분자를 척결하자고 했다. 시대의 불행이 한 계급과 독재자에 있다고 반복했다. 별빛 얼어붙은 철책선을 걸으면서 자유민주주의를 생각했다. 이념이 다르다고 숙청되지 않고 개개인이 인간으로서 존중받는 사회였다. 일을 해서 가족을 먹여 살리고 법이 억울한 눈물을 흘리지 않게 하는 세상이었다. 더디지만 세상은 그렇게 되어 갔다.
이 나라의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룬 주체는 나 같은 서민의 아들들이었다. 열악한 환경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총을 들고 전선을 지켰다. 그 다음에는 상품샘플을 들고 해외에 나가 또 다른 경제 전쟁을 치렀다. 우리들은 기득권자나 악질반동이 아니다. 젊은 세대는 부유한 선진국과 비교해 불행을 말하지만 우리세대는 과거와 비교하면서 감사하고 있다.
젊은 소설가는 6·25전쟁을 대리전이라고 했다.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한 중국인이 쓴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모택동은 한국 전쟁 시 미군의 참전을 중국에 대한 공격이라고 해석하고 미국의 핵이 북경이나 상해 같은 해안도시에서 터질 것을 걱정했다. 그렇다면 전쟁터를 차라리 한반도로 하기로 하고 중공군을 파병했다는 내용이었다. 비밀등급이 해제된 미국의 군사문서들은 맥아더가 중공과의 전쟁을 시도했다고 알리고 있다. 중공군과 북한군이 평택까지 내려왔을 때 미국은 모택동에게 휴전을 제의했다. 소련의 스탈린은 미국과 중국의 우호적인 접근을 막기 위해 한국전쟁을 일으켜 이간공작을 했다는 기록도 있다. 그렇다면 북한군은 공산주의의 종주국들을 위해 대리전을 치른 셈이다. 강대국의 내면을 꿰뚫은 이승만 대통령은 핵을 염원했고 박정희 대통령도 장거리 미사일과 핵개발을 시도했다.
노인세대가 된 나는 지금 아파트 지하대피소에 건빵과 물 그리고 촛불을 준비시키고 배설물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걱정하고 있다. 미국시민권을 가진 일부가 화산 폭발직전 도망가는 쥐떼처럼 미국으로 도망가려는 모습을 본다. 나는 그들에게 “당신은 미국으로 가지만 저는 천국을 희망합니다”라고 말해 주었다. 살만큼 살았다. 걱정되는 건 손자 손녀가 살아야 할 한 인간으로서의 권리가 존중되는 자유로운 나라다. 나의 이런 것들이 소설가 한강 씨가 궁금해 하는 윗세대의 내면이 아닐까.
엄상익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