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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개월 동안 ‘변화’를 부르짖던 버락 오바마(47)가 마침내 첫 흑인 대통령 탄생이라는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었다. 아니, 이제는 ‘오바마 드림’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 1996년 일리노이주 상원의원에 당선된 지 12년 만에 그는 무명의 정치인에서 세계를 이끌 지도자로 훌쩍 성장했다. 전세계가 ‘오바마 시대’가 열린 것에 대해 적지 않은 흥분에 휩싸여 있는 가운데 이제는 앞으로 오바마가 대통령으로서 가져올 ‘변화’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오바마 당선이 갖는 미국 내 ‘변화’의 의미를 흑인사회의 변화를 통해, 그리고 인종 갈등의 변화를 통해 살펴 보았다.
오바마 당선이 갖는 의미를 꼽자면 사실 한두 가지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큰 의미를 들자면 아마도 그가 미국 내 비주류이자 오랜 세월 핍박받았던 ‘흑인’이었다는 점일 것이다.
지난 수백 년 동안 미국 흑인(African American)들의 목소리는 작다 못해 무시되어 왔었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가령 미국 상원의원의 수만 봐도 그렇다. 상원의원 100명 가운데 현재 흑인은 단 한 명, 즉 오바마가 유일하다. 그것도 역사적으로 통틀어서 세 번째에 불과하다. 최초의 흑인 상원의원은 1870년 미시시피주 상원의원으로 선출됐던 히람 레벨스가 있으며, 두 번째로는 1992년 흑인 여성 최초로 일리노이주 상원의원에 선출됐던 캐롤 모슬리 브라운이 있다.
주지사 역시 사정은 비슷하다. 지금까지 흑인 주지사는 단 네 명에 불과했을 정도로 흑인들에게 주지사는 감히 올라설 수 없는 높은 자리였다. 최초의 흑인 주지사는 1871년 루이지애나 주지사를 지냈던 핑크니 핀치백이었다. 하지만 그는 선출된 것이 아니라 전임자가 탄핵되자 잠시 35일 동안 자리를 지켰던 임시직이었을 뿐이었다. 실질적인 최초의 선출직 흑인 주지사는 90년대 들어와서야 탄생했다. 버지니아주 부지사를 거쳐 지난 1990년 주지사에 당선된 더글러스 와일더가 바로 그 주인공으로 현재는 리치몬드 시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그리고 이밖에도 2006년 매사추세츠 주지사에 당선된 디발 패트릭과 지난 3월 성추문으로 물러난 엘리엇 스피처 전 뉴욕 주지사의 뒤를 이어 취임한 데이비드 패터슨 등이 있다.
지금까지 하원의원에 선출된 흑인들의 수는 123명이며, 민주당이 90명인 데 반해 공화당은 단 세 명뿐이다. 현재는 42명의 흑인 하원의원이 의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아직까지 단 한 번도 흑인 의원을 선출하지 않은 주(州)도 많다. 오바마의 고향인 하와이를 포함해서 콜로라도, 애리조나, 네바다, 뉴멕시코, 알래스카 등 50개 주 가운데 절반인 25개 주가 그렇다. 전체 미국 인구 중 흑인이 차지하는 비율이 13%라는 점을 생각하면 분명 불균등한 현실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대권에 도전했던 흑인 정치인들은 누가 있었을까. 1972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 출마했던 여성 정치인 셜리 치솜을 시작으로 1984년과 1988년 각각 한 차례 경선에 출마했던 제시 잭슨, 1988년과 1992년에 무소속으로 본선에 출마했던 레노라 풀라니, 1996년과 2000년 연속으로 공화당 대통령 후보 지명전에 나섰던 앨런 케이즈, 그리고 2004년 민주당 경선에 출마했던 알 샤프톤과 캐롤 모슬리 브라운 등 모두 여섯 명이었으며, 오바마는 일곱 번째였다. 미합중국이 건국된 지 232년 만에, 그리고 노예가 해방된 지 145년 만에 비로소 꿈을 이룬 것이다.
오바마라는 거물이 등장했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듯이 현재의 젊은 흑인 세대들은 분명 과거와는 많이 달라졌다. 이에 오바마의 성공은 흑인들에게 있어 종점이 아니라 새로운 곳을 향해 나아가는 출발점의 의미가 더 크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다. 새로운 흑인세대들이 대거 몰려오고 있으며, 앞으로 제2의, 제3의 오바마는 계속 등장할 것이라는 것이다. 젊고, 패기 넘치며, 자신감 넘치는 이 젊은 흑인들에게 인종 문제는 더 이상 이슈가 되지 못하고 있다. 이제 문제는 ‘능력’이지 ‘인종’이 아니라는 것이다.
▲ 지난 5월 빗속에서 선거 캠페인을 벌이던 버락 오바마의 모습. AP/연합 | ||
잡지에 따르면 이런 변화의 바람은 사실 오바마가 중앙정치에 등장하기 전부터 서서히 시작되고 있었다. 다시 말해 오바마의 성공은 당연한 결과였으며, 이미 예고된 것이나 다름 없었다는 것이다.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던 이유는 무엇보다도 흑인 본인들이 정치에 보다 폭넓은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동시에 다양한 정치적 욕구를 표출하기 시작했다는 데 있다. 과거 1950년대 이전에 태어난 흑인 기성세대들이 지레 포기하거나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했던 일들을 1960~70년대의 젊은 흑인세대들은 꿈이 아닌 현실로 이루어내고 있다.
그리고 백인들의 달라진 태도, 즉 오픈 마인드 또한 이런 변화에 한몫 했다. 민주당 경선에서 65세 이상의 백인 노년층 가운데 34%만이 힐러리 클린턴 대신 오바마를 지지했던 데 비해 18~29세의 젊은 백인들의 53%가 오바마를 지지했다는 점도 이런 변화를 여실히 나타내고 있다. 이는 피부색보다는 후보의 역량과 정책이 더 중요하다는 의미였다.
<프로스펙트>는 이처럼 흑인 파워가 거세지게 된 배경을 대략 네 가지로 꼽았다.
첫째, 흑인들의 교육 수준과 졸업 후 진로의 변화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2006년 한 통계에 따르면 25세 이상의 흑인들 중 고등학교를 졸업한 인구는 전체 흑인 인구 가운데 81%였다. 1976년에는 44%, 1966년에는 28%에 불과했던 것에 비해 급격히 늘어난 것이다. 또한 흑인 극빈층 가정의 비율도 1966년 41.8%에서 2005년에는 23%로 절반가량 줄어들었다.
또한 과거에는 대학을 졸업한 흑인 엘리트들의 가장 큰 꿈이 목사였다면, 요즘의 20~30대의 젊은 흑인 대졸자들은 법대를 나와서 정계에 뛰어드는 것이 가장 큰 꿈이다. 오바마처럼 하버드 로스쿨을 나온 흑인 정치인들로는 앤서니 브라운 메릴랜드 부지사, 아터 데이비스 앨라배마주 하원의원 등이 있다.
둘째 이 젊은 흑인들은 자신들이 굳이 ‘흑인’임을 유권자들에게 부각시키지 않는다. 흑인 유권자들에게 한 표를 호소하는 것과 똑같이 백인 유권자들에게도 표를 호소할 뿐이다. 가령 미국 근로자들의 소득 불균형에 대해서 이야기할 뿐 흑인 고용 불평등에 관해서 이야기하지 않으며, 부적절하게 주어지는 교육 기회를 비난하지 이로 인한 흑인들의 가난에 대해서 비난하지 않는다는 식이다.
셋째, 단순히 정계에 진출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이제는 더 큰 목표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더 이상 하원의원이나 시장에 만족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제 이들의 목표는 주지사, 상원의원, 그리고 대통령이다. 하지만 아직은 갈 길이 멀다. 현재 상원의원은 오바마 한 명이며, 역대 흑인 상원의원 세 명 가운데 연임된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리고 주지사는 뉴욕주 주지사인 패터슨과 패트릭 매사추세츠 주지사 등 현재 단 두 명뿐이다.
넷째, 지금까지는 흑인 정치인들 가운데 성공한 경우는 전통적으로 민주당 출신이 많았지만 이제는 공화당에서도 속속 흑인 유망주들이 등장하고 있다. 마이클 스틸 전 메릴랜드 부지사, J.C. 와츠 전 오클라호마 하원의원 등이 대표적인 공화당 출신 흑인 정치인들이다. 많은 사람들은 앞으로 당을 초월한 흑인 정치인들의 활약이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