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열광적인 분위기와는 달리 한 켠에서는 어서 빨리 행사가 끝나기만을 간절히 바라는 사람들도 있었다. 시종일관 무뚝뚝한 얼굴로 오바마 곁을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던 ‘비밀경호원’들이 바로 그들이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가장 암살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진 만큼 이날 밤에는 평소보다 더 강도 높은 경호가 이루어졌으며, 이런 까닭에 오바마는 방탄유리에 둘러싸인 채 연설을 하는 독특한 광경을 연출했다. 하지만 이날 밤은 시작에 불과했다. 앞으로 4년 혹은 8년 동안 오바마 곁에서 1년 365일, 그리고 24시간을 밀착 경호할 비밀경호국 요원들은 “진짜는 이제부터다”라면서 긴장감을 늦추지 못하고 있다.
비밀경호원들이 이처럼 바짝 긴장하고 있는 이유는 잘 알다시피 오바마가 ‘흑인 대통령’이라는 데 있다. 역사상 유례 없는 경우이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측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이미 오바마는 경선 때부터 무려 500건의 암살 위협을 받아 왔으며, 가장 최근에는 지난 10월 말 두 명의 신나치주의자들이 오바마를 암살하려다 체포되는 사건이 있었다.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는 수많은 오바마의 기록들 가운데에는 경호와 관련된 것들도 많다. 당선이 확정된 직후부터 이미 당선인 신분으로는 이례적으로 대통령에 준하는 예우와 보호를 받고 있으며, 앞으로 비밀경호국 사상 최대 규모인 5000여 명의 전문요원들이 120개 도시에 배치될 예정이다. 또한 시카고 당선 연설이 있던 날에는 비밀경호원을 비롯해 경찰, 군인 등 동원된 인력들의 비용만 무려 200만 달러(약 27억 원)에 달했으며, 시카고 상공에는 24시간 내내 비행기가 날지 못하도록 통제되었다.
경호비용 면에서도 놀라운 기록이 쏟아졌다. 이는 비단 오바마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번 대선은 유례 없이 많은 후보가 난립했고, 어느 때보다도 일찍 선거 분위기가 조성되었던 탓에 필요한 인력도 그만큼 늘어났다. 한 비밀경호국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경호요원이 부족해 수사국이나 이민국에서 일부 요원을 차출해 경호임무를 맡겨야 할 때도 있었다.
이번 대선에 책정된 비밀경호국의 예산은 사상 최초로 1억 달러를 넘는 1억 665만 달러(약 1500억 원)였으며, 오바마의 경우에는 경호가 시작된 날부터 매일 약 4만 4000달러(약 6000만 원)가 지출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비해 2004년 대선 당시 비밀경호국이 지출한 비용은 7330만 달러(약 990억 원)에 불과했다.
지난 7월에는 추가로 950만 달러(약 130억 원)의 예산이 더 지출되기도 했는데 이유는 양당 후보 모두 이례적으로 해외 순방길에 오르는 일이 잦았기 때문이었다. 오바마의 경우에는 유세 기간 동안 6일 일정으로 요르단 이스라엘 독일 프랑스 영국 등을 방문했으며 매케인의 경우에는 캐나다 콜롬비아 멕시코 등을 순방했다.
그렇다면 오바마는 앞으로 어떤 경호를 받게 될까. 민주당 후보로 확정된 지난 8월부터 이미 시카고에 있는 그의 자택 주변은 삼엄한 경비가 이루어지고 있다. 집 주위에는 경호원들이 24시간 대기하고 있으며, 바리케이드로 둘러싸여 있거나 각종 첨단 보안장비가 설치되어 있다. 또한 집 주변에 차를 주차하는 것도 금지되어 있어 가뜩이나 주차공간이 부족한 데 귀찮게 됐다며 불만을 토로하는 몇몇 주민들도 있다.
오바마의 경호는 매일 3교대로 이루어지며 요원들은 3주마다 교체된다. 차량으로는 어떤 총알이나 폭탄테러에도 끄덕 없는 방탄 리무진이 제공된다. 리무진으로 이동할 때에는 앞뒤로 약 35대의 경호원 차량이 에워싸며, 오바마가 탑승한 리무진에는 적어도 한 명 이상의 경호원이 동승하고, 나머지 경호원들은 다른 차량에 나눠서 타고 이동한다. 비행기에서 내릴 때에는 바깥의 안전이 100% 확실하다고 판단한 후에야 내릴 수 있다. 비행기가 착륙하면 우선 여섯 명의 경호원이 먼저 내려서 주변을 살피고, 오케이 사인이 떨어지면 트랙을 내려오는 식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경호원들이 가장 긴장하는 순간은 대통령이 군중들 틈에 끼어서 직접 인사를 하거나 악수를 나눌 때다. 한 경호원은 “가장 긴장되는 순간은 연설 후 거리에서 사람들과 악수를 나눌 때다”라고 실토했다. 그렇다면 이때 검은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있어 알 수 없는 경호원의 시선은 어디를 향하고 있을까. 이들이 날카로운 시선으로 뚫어지게 살피는 것은 다름 아닌 악수를 하기 위해 내미는 사람들의 손이다. 혹시 손에 위험물질이나 무기를 들고 있지는 않나 면밀히 살피기 위해서다.
또한 오바마를 등 뒤에서 바짝 밀착하는 경호원들의 손의 위치를 보면 재미있는 비밀이 하나 숨겨져 있다. 이들이 한 손으로 꽉 붙잡고 있는 것은 다름아닌 오바마의 허리 벨트 뒷부분이다. 이는 긴급상황이 발생할 경우 잽싸게 잡아 당긴 후 도망치기 위해서다.
미셸 오바마와 두 딸 말리아와 샤샤 역시 대통령에 준하는 경호를 받기 시작했다. 가족 모두가 동시에 외출하는 것이 금지되며, 딸들의 경우에는 학교 등하굣길에 경호원들의 보호를 받게 된다. 또한 이들은 주머니 속에 항상 ‘비상 버튼’을 소지하고 다녀야 한다. 자동차 리모컨만한 이 버튼은 언제든지 무선으로 경호원에게 응급상황을 전달할 수 있는 알람 장치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