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량용 블랙박스 이미지컷. 교통사고 발생시 원인규명 및 증거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설치하는 차량용 블랙박스가 충격에 약해 정작 사고 순간 고장이 나 녹화가 되지 않는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일요신문] 지난 10월 중순 조 아무개 씨는 자가용을 운전하다가 접촉사고가 났다. 사고 처리를 위해 보험회사에 연락을 취했고, 사고 장면을 보기 위해 차량에 설치한 블랙박스 영상을 확인했다.
그런데 블랙박스에는 사고 영상이 촬영돼있지 않았다. 영상은 사고 나기 직전까지만 기록이 남아있었다. 그런데 더 황당한 건 사고 충돌 이후 장면은 다시 녹화돼있었다는 점이다.
이에 블랙박스 제조사인 A 업체 서비스센터를 찾아갔다. 서비스센터에서도 영상을 읽을 수가 없었다. 결국 조 씨는 본사까지 가야 했다. 본사에서는 메모리카드가 손상됐다면 복구에 2~3일 정도가 소요된다고 했다.
며칠 후 본사에서는 “확인해보니 영상이 아예 안 찍혀있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어 본사 직원은 “블랙박스 전원 전선이 사고 충돌하며 꺼져서 안 찍힌 것 같다”며 “기계 오류라 회사에서도 어쩔 수 없다”는 원론적인 설명을 내놨다고 한다. 업체의 반응이 조 씨와 같은 문제가 처음이 아닌 듯해 보였다고 한다.
보험사에서 나온 손해사정사 역시 “블랙박스에 사고 장면이 녹화돼 있지 않은 경우가 종종 있다. 드문 일은 아니다”라고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다행히 조 씨는 간단한 접촉사고여서 블랙박스 영상과 상관없이 사고를 잘 처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조 씨는 “사고에 대비해 기록하기 위해 설치하는 게 차량용 블랙박스다. 근데 가벼운 접촉사고 충격에도 고장 나 영상 녹화가 안 된다면 돈 들여 설치할 이유가 없지 않느냐”고 토로했다.
차량용 블랙박스는 주행 영상을 기록하고, 교통사고 발생시 원인규명 및 증거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설치한다. 그런데 앞서 조 씨의 사례처럼 최근 블랙박스가 충격에 약해 정작 사고 순간에 고장이 나 녹화가 되지 않는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 4월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16년까지 최근 5년간 접수된 차량용 블랙박스 관련 피해구제 신청은 총 967건이다. 매년 평균 193건이 들어온 꼴이다. 이중 ‘제품불량’관련 분쟁이 573건(59%)으로 가장 많았다.
특히 ‘제품불량’ 관련 피해구제 신청 573건 중 구체적 피해유형이 확인된 381건을 분석한 결과, 블랙박스의 핵심기능인 녹화가 제대로 안 된 경우가 247건(65%)로 가장 많았다.
한국소비자원에서도 조 씨와 비슷한 일을 겪은 서울에 사는 50대 황 아무개 씨의 사연을 소개했다. 황 씨는 지난 2015년 12월 다른 차량과 충돌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 처리를 위해 차량에 설치된 블랙박스를 확인했으나, 사고 직전까지만 촬영되고 충돌 장면이 녹화가 돼있지 않았다.
블랙박스 영상이 없어 책임관계 규명이 어려웠던 황 씨는 결국 자동차 수리비 및 보험료 등으로 총 1000만 원 상당의 재산상 손해가 발생했다. 이에 황 씨는 블랙박스 업체에 구입비 환급 등을 요구했는데, 업체로부터 거절당했다고 한다.
다만 한국소비자원 관계자는 “사고 충격으로 인한 고장으로 사고 장면이 녹화되지 않은 피해구제 유형은 따로 집계를 하지 않아 정확한 수치를 확인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다른 기관에도 이와 같은 블랙박스 문제 통계는 따로 없었다. 하지만 일선에서 사고를 확인하고 손해액을 결정해 보험금을 산정하는 손해사정사들은 위와 같은 사례를 종종 본다고 말했다.
한 손해사정사는 “사고 차량 블랙박스를 확인해보면 10건 중 2~3건은 사고 장면이 안 찍혀있다”고 설명했다. 그의 말처럼 사고 충격에 의한 블랙박스 고장률이 20~30%가 된다면 단순한 기계 오류라고 보기엔 너무 높은 수치다.
반면 그 정도로 고장률이 높진 않다는 의견도 있었다. 또 다른 손해사정사는 “블랙박스는 제조사와 기종도 많고, 운전자의 관리 상태에 따라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유형이 많다. 따라서 꼭 사고 충격으로 블랙박스가 고장 났다고 단정 짓긴 어렵다”면서도 “조 씨의 사례처럼 사고 전후는 영상이 남아있는데, 사고 장면만 녹화가 돼있지 않다면 그건 충격에 의한 고장 오류일 가능성이 높다. 그래도 그 정도 기기 고장률이 20%까지는 안 되는 것 같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블랙박스가 쉽게 고장 나는 이유에 대해 “블랙박스 제조사들은 중소기업이 많다. 저렴한 가격에 수익을 내야 하다 보니 블랙박스들이 성능이 떨어지는 게 많다. 그러다보니 오류율도 높고, 고장도 잘 난다. 그럼 사고 순간에 충격에 안 찍히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고 귀띔했다.
사진=블랙박스 촬영장면 캡처.
하지만 블랙박스 제조업체에서는 블랙박스가 사고 충격으로 인해 고장이 나는 일은 거의 없다고 강조했다. A 업체 관계자는 “영상이 녹화되지 않은 경우는 크게 두 가지다. 큰 충격에 제품이 날아가 전원선이 분리되면서 누락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큰 사고”라며 “두 번째는 메모리카드 문제다. 메모리카드는 쓰고 지우고를 반복하는 일종의 소모품이기 때문에 언젠가 불량이 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운전자들은 사고가 나지 않는 이상 거의 확인하지 않는다. 불량을 모르고 사용하다 사고가 나서 영상을 확인하니 촬영돼있지 않은 거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기계 불량으로 오류가 나면 그 전부터 암시가 온다. 문제가 생겨서 메모리카드가 업체 서비스센터로 넘어와 확인을 해보면 전체 영상 중간중간에 증상이 보인다. 하지만 운전자가 모르고 사용하다 사고가 벌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업체에서는 어쩔 수 없다 고객에 말씀드리는 것”이라며 “모든 게 다 정상인데 사고 장면만 딱 안 찍힌, 그런 경우는 가장 드물다”고 항변했다.
이렇듯 블랙박스 작동 불량 및 오류에 대한 논란과 의혹은 소비자, 손해사정사, 제조사 등 입장이 엇갈리고 있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블랙박스는 단순 기계가 아닌, 사고 시 증거를 수집하는 중요한 기계이기 때문에 소비자보호원 등 관련 기관의 추가적인 현황 파악과 조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