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Twilight over Burma’의 한 장면. 버마의 이방인 공주의 삶과 사랑을 그렸다.
오스트리아 영화 <Twilight over Burma, 버마의 황혼>. 사빈 데프링거 감독의 2015년 작품입니다. 씨뻐 왕국의 마지막 공주, 오스트리아인 잉게 서전트(Inge Sargent)의 삶과 사랑을 다루었습니다. 영화제목이 그녀의 회고록 제목이듯 회고록을 토대로 만들었습니다. 그녀의 영화 같은 삶을 생각하면 이보다 30년 전 작품 <아웃 오브 아프리카>가 떠오릅니다. 광활하고 아름다운 아프리카의 자연. 연인, 재산, 자유를 다 잃고 떠나는 덴마크 여류작가 카렌 블릭센(Karen Blixen)의 자전적 이야기입니다. 잉게 서전트 역시 남편, 백성, 자유를 다 잃고 버마를 황급히 떠나야만 했습니다. 남편의 생사도 모른 채 두 딸과 양곤항에서 배를 타야 했습니다.
옛 버마에는 나중 저명하게 된 외국인이 몇 명 살았습니다. 영국 소설가 조지 오웰은 젊은 시절 영국 경찰로 와서 5년을 근무했고 그 체험으로 처녀작을 썼습니다. 칠레의 정치가이자 노벨문학상을 받은 시인 네루다도 젊은 시절 버마 주재 영사로 근무했고 그의 초기 시는 인도차이나의 자연을 노래합니다. 지금도 미얀마에는 시골에서 조용히 사는 외국인 예술가들이 있습니다. 씨뻐의 이방인 공주 잉게 서전트는 미국 콜로라도 대학에서 남편을 만났습니다. 둘 다 유학생 신분으로 남편의 따뜻한 성품에 반해 사랑에 빠지고 외지에서 간략히 결혼식을 올립니다. 남편이 왕자라는 사실도 모른 채 남편의 나라 양곤항에 와서야 남편의 신분을 알게 됩니다. 항구에는 남편의 이름을 쓴 피켓이 물결을 이루었으니까요.
남편의 이름은 샤오짜셍입니다. 부부는 씨뻐를 통치하는 동안 백성들에게 땅을 나누어주고 농업기술, 자원개발, 교육을 통해 가장 평화롭고 번성한 왕국으로 만들어 주위의 부러움을 샀습니다. 샨 주는 샤오파라는 지역 왕이 왕국을 다스리는 특이한 정치형태를 띠고 있었습니다. 즉 34개의 나라가 독자적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방인 공주는 백성들을 위해 헌신했고 백성들도 이런 공주를 친절하게 대해주었습니다. 이런 행복과 번영도 잠시, 버마의 군사 쿠데타는 이 왕국에 큰 슬픔을 가져왔습니다. 남편과 가족들이 잡혀가고 소식이 끊겼습니다. 그녀는 다행히 오스트리아 시민권이 있어 화를 면했지만 떠나야 했습니다. 두 딸과 함께 먼 양곤항까지 왔습니다. 버마를 떠난 후 그녀는 미국에서 미얀마 난민을 돕는 일을 해왔습니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데니스와 카렌의 비행 장면. 모차르트 클라리넷 협주곡이 화면을 아름답게 채운다.
잉게 서전트의 삶을 다룬 영화는 지난해 태국의 한 국제영화제에서 상영하기로 했다 취소가 되어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양국 관계에 도움이 안 되는 내용이 있어 취소했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영화마저도 수난을 당한 잉게 서전트의 삶. 그녀가 살았던 씨뻐의 황폐한 시골길을 걷습니다. 삶의 고요와 평안이 스며있는 마을입니다. 사랑하는 이를 따라 이 낯선 곳에서 꿈꾸던 평화와 번영. 모든 유적지들이 무너져내리듯 그녀의 삶도 그랬습니다. 반면 당시 아카데미상을 휩쓴 <아웃 오브 아프리카>. 아프리카의 눈부신 풍광과 자유를 사랑했던 남자, 데니스. 그를 사랑한 카렌 앞에는 인간의 유한한 사랑의 슬픔만 남아 있습니다. 오래된 영화지만 아직도 아프리카의 숲과 산들, 그리고 음악이 생생합니다. 모차르트 클라리넷 협주곡 2악장의 선율. 모차르트가 죽기 두 달 전에 마지막으로 작곡한 곡이어서 더 아련합니다. 가장 고통스런 시기에 만든 유일무이한 클라리넷 협주곡이지만 아름답고 영롱하게 화면을 채웠습니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 아웃 오브 미얀마. 카렌과 잉게 서전트. 모두 사랑했던 땅을 떠나야만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슬프지만 아름답던 두 영화를 떠올리며, 고요한 씨뻐 마을을 떠납니다.
정선교 Mecc 상임고문
필자 프로필 중앙대 문예창작과 졸업, 일요신문, 경향신문 근무, 현 국제언론인클럽 미얀마지회장, 현 미얀마 난민과 빈민아동 지원단체 Mecc 상임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