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앞에서 ‘방미트럼프탄핵청년원정단(방탄청년단)’이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규탄 농성을 하고 있다. 박정훈 기자
미국이 15명의 한국인에 대해 사상 초유의 입국 불허 조치를 내린 배경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그런데 <일요신문>은 인터넷 커뮤니티 일간베스트 저장소(일베)회원들의 항의가 미 당국의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는 흔적들을 발견했다.
방탄청년단은 트럼프 대통령 탄핵, 대북제재 중단, 한반도 평화수호를 주장하는 단체다. 이들 단체는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탄핵을 수출해야 한다”는 취지로 지난달 18일 결성됐다. 이때부터 방탄청년단은 단원들을 모집하고 미국행 비행기 탑승을 위한 후원을 받았다.
방탄청년단원 15명은 10월 25일부터 일주일 동안 뉴욕, 워싱턴DC, LA 이 미국 동포들을 만나 트럼프 대통령의 탄핵 운동을 벌일 계획이었다. 이들은 10월 25일 오후 4시 55분 인천국제공항을 출발해 미국 뉴욕 뉴어크공항으로 향하는 유나이티드 항공기(UA 892)에 탑승할 예정이었다.
방탄청년단 입국 불허 사진
하지만 미 당국의 전자여행허가증 발급 거부 조치로 인천공항 출국장에서 입국이 좌절됐다. 방탄청년단은 미 대사관에서 인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미국 당국의 결정에 항의하기 위해 24시간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방탄청년단은 이튿날 공식 페이스북에서 “방탄청년단 단원 한 명이 비행기 티켓 시간이 달라 먼저 출발했다. 인천공항에서는 정상적으로 출국 했는데 JFK 공항에서 입국 심사를 받다가 2차 입국 심사로 넘겨져 입국 거부가 된 상태로 JFK 공항에 억류중이다”고 밝혔다. 방탄청년단이 인터넷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에 이름을 올린 계기다.
방탄청년단원 15명은 미국행 비행기를 탑승하기 전에 개별적으로 ESTA(미국여행허가제)의 승인을 받았다. 2008년 우리나라가 미국 비자 면제 프로그램(VWP)에 가입했다. 때문에 단기(90일 이내) 일정으로 미국을 방문하기 위해서는 비자 대신 전자여행허가를 받아야 한다. 미국 당국은 ESTA를 통해 범죄기록, 불법체류기록 등에 대한 자료를 파악해왔다.
그렇다면 미 당국이 방탄청년단에 대한 입국을 불허한 이유는 무엇일까. 10월 31일 기자와 만난 방탄청년단 관계자는 “미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상징이다. 어처구니없는 조치다. 도무지 불허 사유를 모르겠다. 출입국 관리 업무를 담당하는 국토안보부 산하 세관국경보호국(CBP)과 대사관에 문의해보니 ‘sensitive(민감한)’ 문제라고만 했다”고 주장했다.
외교부도 입국 불허 사유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외교부 관계자는 “외교부에 파견 나와 있는 미국 직원이 ‘입국 거부 사유는 본인들에게 고지가 됐을 것이다. 다른 곳에 고지할 의무는 없다’고 밝혔다. 입국 불허는 미국 주권 사항이다. 외교부가 아닌 국토안보부에 문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국내 여행업계에서는 미 당국이 한국인 15명에 대해 전자여행허가증 발급을 거부한 것은 ‘전무후무한 사례’라고 입을 모았다. ESTA 상담 업무에 종사하는 업계 관계자는 “전자여행허가증을 받은 한 두명이 미국 현지에서 거절된 경우는 종종 있다. 하지만 15명이 개별적으로 ESTA를 신청했는데 국내 공항에서 한꺼번에 거절된 경우는 여러 ‘경우의 수’를 따져도 좀 말이 안 된다. 이들의 성향에 대해 미국 당국에 보고가 들어간 것 같다”고 강조했다.
일베 사이트 게시물 캡처
그렇다면 미국 당국은 방탄청년단이 미국에서 벌일 활동 계획을 어떻게 알게 됐을까. <일요신문> 취재 결과, 인터넷 커뮤니티 일간베스트 저장소(일베) 회원들이 방탄청년단을 미국 당국에 신고한 것으로 드러났다. 일베 게시판에선 미국 당국에 방탄청년단을 신고했다는 내용의 ‘인증글’을 발견할 수 있다.
10월 19일 일베 회원 A 씨는 “남의 돈으로 천조국 시위하러 가려는 XX년 이민국에 신고했다. X되봐라, X년아 너같은 X은 천조국 입국 자격도 없다. 확실하게 입국 금지 맞게 미국 내 활동계획에 X년 짓도 할 것이라고 살짝 거짓말을 했다”며 e-mail 캡처 파일과 함께 ‘인증글’ 올렸다. e-mail은 미국 세관국경보호국(CBP)에 방탄청년단원 김 아무개 씨를 신고하는 내용이었다.
A 씨는 e-mail에서 “잠재적으로 미국에 해를 끼칠 수 있는 의심스러운 활동을 위해 미국에 입국할 예정인 한국 여성에 대해 미국 이민국에 경고하고 싶다”며 “그녀는 친북 캠페인과 반정부 시위에 관한 범죄 기록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튿날 CBP는 “정보를 제공해 주셔서 감사하다. 김 아무개 씨에 대한 추가적인 정보가 필요하다”며 답장을 보냈다.
A 씨는 이튿날 앞서 김 씨에 이어 방탄청년단 단체를 미국의 또다른 기관인 이민세관집행국(ICE)에 신고했다는 내용의 ‘인증글’을 다시 올렸다. A씨는 “방탄청년단원 이 아무개 씨(여)는 민중당 당원이다. ESTA에 따르면 이 아무개 씨와 동료들의 목적은 여행이다. 하지만 이들의 진짜 목적은 워싱턴, 뉴욕에서 반미활동하는 것이다”며 “한국에서 민중당원등과 같은 사회주의자들의 거리 시위는 폭력적인 결과를 낳는다”며 미국이민세관집행국(ICE)에 방탄청년단을 신고했다.
10월 25일 방탄청년단의 입국 불허 소식이 전해진 순간 A 씨는 또 다시 “해냈다”는 게시물을 올렸다. 일베 회원들은 “애국동지들 고생한 보람이 있다. 수고했다”며 “미국 입국시에 한번 찍히면, 다음부터 인터뷰가 엄청 힘들어진다. 반미하는 인간들은 잘못하면 평생입국금지를 해야 한다”는 댓글로 호응했다.
하지만 방탄청년단 측은 “일베 회원들이 미국 당국에 신고한 내용은 상당부분 사실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방탄청년단 관계자는 “김 씨는 범죄기록이 없다. 허위사실이다. 이 씨도 민중당 당원이 아니다. 일베뿐 아니라 곳곳곳에서 여론조작 등 음모가 있는 것 같다. 우리가 솔직히 트럼프 대통령을 어떻게 탄핵하나. 평화의 목소리를 내고 싶을 뿐이다. 방미가 거부됐다는 소식을 듣고 연락오신 분들이 지금 현지에서 시위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른 일베 회원 B 씨는 25일 미국 중앙정보국(CIA) 신고 ‘인증글’을 올렸다. B 씨는 “미국을 최근에 방문할 계획이 있었던 한국의 잠재적인 테러리스트 정 아무개 씨에 대해 알리고 싶다. 방탄청년단장인 정 씨는 테러를 위해 현재 모금 활동을 하고 있다”는 내용으로 CIA에 신고했다. 방탄청년단장 정 씨는 “허위 사실이다. 법적 대응을 검토 중이다”고 답했다.
일베 회원들은 10월 중순부터 방탄청년단을 향해 맹공을 퍼붓고 있다. 이들은 20일 단원 이 씨의 사진을 공유하면서 “몇 근이나 될 것 같냐”, “방탄 돼지단 아니냐”며 인신공격성 댓글을 달았다. 26일엔 “방탄청년단 얼굴마담”이라는 제목으로 이 씨의 사진을 공유했다. 방탄청년단 측이 일베에 대해 법적 대응을 검토하고 있는 까닭이다.
방탄청년단이 이용했던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도 지금은 일베 회원이 운영 중이다. 방탄청년단 관계자는 “페이스북 페이지에 계속 신고가 들어와서 결국 운영이 중단됐다. 지금은 일베 회원이 ‘방탄청년단’을 사칭한 가짜 페이지를 운영하고 있다. 다른 페이스북 페이지를 다시 만들어 운영 중이다”고 밝혔다. 일베 회원들의 미국 당국을 향한 반복적인 신고는 이같은 움직임의 일환으로 보인다.
물론 일베 회원들의 항의가 미 당국의 입국 불허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하지만 여행업계 관계자는 “미국은 당신의 자국의 이익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는 국가다. 15명 개별로 전자여행허가증을 신청했는데 거절된 것은 지금껏 유례를 찾아볼 수 없다. 일베 회원들이 항의가 미국 당국의 결정에 영향을 미쳤을 개연성은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최선재 기자 s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