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18일 일본 사이타마 현의 한적한 주택가의 가정집에서 칼에 찔려 숨져있는 부부의 시체가 발견됐다. 그날 밤 도쿄 나가노의 한 가정집에서도 주부가 택배배달원을 가장한 한 남자의 칼에 찔려 중상을 입는 사건이 발생했다. 두 사건 모두 남편이 전직 후생성 차관을 지냈다는 점과 집안에 없어진 물건이 없었다는 점, 범행 수법이 비슷하다는 점 등으로 경찰은 “연속 테러 사건일 가능성이 있다”는 전제 하에 수사를 시작했다.
다음날 추가 범죄가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후생성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간부들의 이름과 직위가 모두 삭제됐다. 또한 후생성의 전·현직 간부들에게는 택배 배달에 주의하라는 지시가 내려졌고, 일부 전직 간부들의 경우에는 자택 경호가 실시되기도 했다. 후생성 직원들 사이에서는 언제 자신의 차례가 올지 모른다는 공포감까지 확산됐다.
경찰의 대대적인 조사에도 불구하고 사건은 좀처럼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자칫 미궁으로 빠질 수도 있었던 이 사건은 뜻하지 않은 곳에서 전환점을 맞이했다.
사건이 일어난 지 나흘이 지난 22일 늦은 밤 “전직 차관을 찔렀다”고 주장하는 한 남성이 제 발로 경찰서를 찾아왔다. 이 남성의 이름은 고이즈미 다케시(46). 그는 피 묻은 칼을 들고 와서 두 사건 모두 자신이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후에 그의 신발이 범행 현장에 있던 발자국과 일치하며 칼에 묻은 피도 희생자들의 것으로 판명되면서 그가 범인임이 확인됐다. 목격자들도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피해자의 집 주위를 서성거리는 수상한 남성을 봤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범행을 저지른 목적이나 동기에 대해서는 아직 의문 투성이다.
범인인 고이즈미는 “키우던 개를 보건소에서 잡아가 죽였다. 그 원수를 갚은 것”이라고 동기를 설명하고 있다. 그의 아버지의 말에 따르면 1974년 당시 초등학생이던 범인이 떠돌이 개를 집으로 데리고 온 적이 있었다. 그러나 개가 사람을 공격할 것을 염려한 아버지의 연락으로 보건소에서 개를 데려갔다는 것이다. 이 일로 어린 아이였던 범인이 받았을 상처는 이해가 가지만 34년이 지난 후에 살인을 저지를 정도의 충격적인 과거라고 보기는 어렵다. 또한 미리 현장을 답사할 정도로 치밀하게 계획된 범행치고는 범죄 대상을 선택한 이유가 설득력이 떨어진다.
경찰의 조사가 진행되면서 더욱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다. 범인이 다른 후생성 간부들의 이름을 거론하며 “원래는 다른 차관들과 그 가족을 포함해 열 명 정도를 살해할 계획이었지만 경비가 삼엄해서 포기했다”고 진술한 것이다. 경찰이 그가 자수할 때 타고 온 렌터카를 수색한 결과 전직 사회보험청 장관의 이름이 적힌 택배 상자와 열 자루의 칼이 발견됐다. 범인의 자택에서는 다른 전직 차관들의 이름이 적힌 자료와 그들의 주소를 표시한 것으로 보이는 지도 등이 발견됐다. 후생성의 고위 간부들만을 노린 이유에 대해서는 “대학에서 관료들이 나라를 움직인다는 것을 배우면서 고위 관료들이 나쁘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결국 그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어렸을 적에 보건소 직원이 개를 데려가 매우 화가 났으며, 자라면서 고위 관료들이 나쁘다는 것을 알게 되어 전직 후생성 차관들을 살해하기로 결심했다는 것이다. 애초에 ‘개를 데려간 보건소 직원에 대한 복수’에서 시작된 감정이 어떤 과정을 거쳐 ‘나라를 말아먹는 나쁜 고위 관료’로 발전하고 최종적으로는 ‘전직 후생성 차관과 그 가족들 살해’에 이르게 됐는지는 범인의 머리에 들어가 보지 않는 한 알 수 없을 것이다.
가족과 지인들에 따르면 범인은 어렸을 적에는 착하고 공부도 잘하는 모범생이었지만 자라면서 점차 비사회적인 성격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특히 인간관계에 서툴러서 한 직장에 오래 머물지 못하고 문제를 일으키고는 또 다른 직장으로 옮기기를 반복했다고 한다. 주위에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고 범행을 저지르기 전까지는 자신의 아버지와도 10년 가까이 연락을 끊고 지내던 외톨이였다.
일본의 한 범죄 심리학자는 이번 사건을 ‘자신을 표현하기 위한 범죄’라고 설명하고 있다. 개인적인 원한이나 금품을 노린 것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고 주목받기 위해 저지른 범죄라는 것이다. 범인인 고이즈미 다케시가 범행에 사용한 칼을 가지고 제 발로 경찰서를 찾아가 스스로 범행을 고백한 것도 어쩌면 이런 맥락에서 저지른 것임을 반증하는 대목이다. 결국 범행 상대가 보건소 직원이건 후생성 차관이건 아무런 상관이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범행을 저지를 핑계거리를 찾던 중에 우연히 과거의 안 좋은 기억이 떠올랐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리고 ‘빈약한 소재’를 갖고 일부러 범행을 저지르려니 비약에 비약을 거듭하게 됐고, 어쩌다 보니 전직 후생성 차관이 ‘재수 없게’ 뽑힌 것일 수도 있다.
앞서 언급한 범죄 심리학자에 따르면 사회가 평온하고 잘 굴러가고 있을 때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은 ‘나쁜 사람’ 한 명으로 끝나지만, 사회가 불안정하고 불만이 팽배해있을 때 누군가가 사회 질서를 깨뜨리는 행동을 하면 그를 영웅시하며 동조하는 무리가 생기게 된다고 한다. 흉악 범죄로 생기는 사회적 불안감이 또 다른 흉악 범죄를 키우는 토양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번 사건이 또 다른 모방 범죄를 유발하지는 않을지 많은 일본인들이 걱정 어린 시선을 보내고 있다.
박영경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