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에 위치한 국민인권위원회 본사 건물. 인권위가 금융감독원을 상대로 제기된 진정서에 대해, 3개월 이내에 처리한다는 원칙을 지키지 않고 7개월째 결론을 내리지 않아 관심을 모으고 있다. 사진=최준필 기자
AIG손보 노조가 문제 삼고 있는 것은 금융위원회가 지난해 입법한 ‘명령휴가 제도’다. 명령휴가제는 금융사고 발생 우려가 높은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임직원을 대상으로 회사가 일정 기간 휴가를 명령하고, 이 기간 동안 휴가자의 금융거래 내역, 업무용 전산기기, 책상 등 사무실 수색을 실시해 업무수행 적정성을 들여다보는 제도다. 금융사에서 발생하는 직원들의 횡령·사기 사건을 사전에 막겠다는 취지다. 이 제도는 ‘금융회사 지배구조 감독규정’에 근거를 두고 있다.
하지만 노조 측은 진정서에서 “금융회사가 명령휴가제를 도입·운영하고 있는지 금융감독원이 수시로 확인하고, 이행하지 않을 경우 현장검사와 지도를 예고해 제도를 도입하도록 사실상 강요하고 있다”며 “이는 금융사고 등 범죄행위 유무와 상관없이 금융사에 재직하고 특정업무에 종사한다는 사유만으로 임직원을 잠정적 범죄자로 간주하는 것이다. 이러한 행위는 무죄추정 등 최소한의 형사법상 기본원칙을 위반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헌법 제10조가 보장하는 인간의 존엄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노조는 이어 “헌법 제12조는 법률에 근거하지 않고는 누구든 압수·수색 또는 심문받지 않을 신체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하지만 국가기관인 금융감독원은 스스로 수색이나 심문행위를 할 수 있는 법률상 근거가 없음에도 일반 회사인 금융사에 위법적인 압수수색 및 심문을 강요하고 있다. 이는 금융사 임직원에 신체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금융감독원이 금융사에 이러한 위법 행위를 강요하는 것은 양심에 반하여 행동을 강제당하지 않을 헌법 제19조 양심의 자유 또한 침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노조는 “금융감독원이 명령휴가 제도 이행을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앞으로 인권침해 행위가 확대될 것이 자명하기 때문에 국가인권위가 이를 바로 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진정서가 제출되고 7개월이 지났다. 하지만 인권위는 별다른 결론을 내놓지 않고 있다고 한다. AIG 노조 관계자는 “인권위로부터 연락을 받지 못했다”고 전했다.
인권위는 진정서가 제출되면 조사관이 배당돼 조사가 진행된다. 피진정인과 관계인 등으로부터 진술과 자료를 받은 조사관은 결과보고서를 작성, 해당 소위원회에 올린다. 그럼 소위원회는 조사결과보고서를 토대로 심의해 권고, 기각, 각하, 이송 등의 결정을 내린다. 이후 그 결과는 당사자에게 통보된다.
그런데 이번 AIG손보 노조 진정의 경우 아직 조사결과보고서가 소위원회에 상정도 안 된 상태다. 인권위 사건 담당 관계자는 “금감원으로부터 진정에 대한 답변을 받았다. 이 답변과 진정서를 바탕으로 보고서를 정리해 소위원회에 올리면 된다”고 설명했다.
금감원 측에서는 “국민들의 금융재산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명령휴가제를 반드시 시행해야 한다. 제도 도입은 정당하다”는 입장을 인권위에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명령휴가제가 인권침해라고 볼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소위원회 위원들이 판단할 문제다. 그런데 인권위 규칙에 따르면 진정이 들어오면 90일 안에 처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는데 이를 지키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인권위의 ‘인권침해 및 차별행위 조사구제규칙’ 제4조에는 “진정은 이를 접수한 날부터 3개월 이내에 처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고 적고 있다. 인권위에서도 “상황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평균 90일 이내에 사건 처리를 끝낸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규칙 제4조에서는 “다만 부득이한 사정으로 그 기한을 연장할 경우 문서로 진정인에게 그 사유를 설명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따라서 인권위가 AIG손보 노조의 진정에 대해 7개월째 결과를 내놓지 않았으면 그 이유를 진정인인 노조 측에 설명했어야 하는데, 그것조차 없었던 것이다.
인권위 측은 이런 문제점을 인지하고 있지만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앞서의 인권위 관계자는 “원래 일반적인 경우 90일 안에 결과를 내야 한다”면서도 “요즘 사건이 많이 밀렸다. 문재인 정부 들어와 사건이 더욱 급격히 늘어났다. 그러다보니 90일 안에 사건 처리를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올해 안에는 소위원회에 상정해 결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앞서 인권위 측은 지난 6월 말에도 기자에게 “순서대로 소위원회에 올려 8월에는 결과를 내놓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과연, 이번에는 진정 결과가 예정대로 나올지 귀추가 주목된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