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의 한 장면. | ||
지난달 25명의 승무원이 탑승하고 1억 달러(약 1490억 원)어치의 원유 200만 배럴을 실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초대형 유조선 ‘시리우스 스타’호가 소말리아 해적에 납치됐다. 해적들이 요구한 몸값은 2500만 달러(약 370억 원).
소말리아 해적은 지난 2006년 한국의 동원호를 비롯해, 일본 선적의 화물선 스톨트 밸러호, 세계식량계획의 구호품 선박까지 국적과 목적을 가리지 않고 아덴만을 지나는 선박들에 무분별한 공격을 가하고 있다.
올 한 해만 소말리아 해적에게 100여 척의 선박이 공격을 당해 이 중 39척이 납치됐고, 이들 중 300여 명의 선원을 포함한 15척이 아직도 억류 중이다. 해적들이 한해 몸값으로 벌어들이는 수입은 3000만 달러(약 45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해상 인질범들은 이렇게 벌어들인 수입으로 소말리아 국민들은 물론 전세계인들의 평균 생활수준을 훨씬 넘는 호화로운 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성공한 해적’의 경우 현금 세는 기계까지 두고 헬기나 보트로 실려 오는 달러 뭉치로 고가의 저택을 구입하고 값비싼 외제차를 몰고 다닌다. 또한 여러 명의 젊은 아내들을 거느리고 산다고 하니 여느 아랍의 부호도 부럽지 않을 지경이다.
이들은 또한 무법지대인 선상에서 술과 마약을 맘껏 즐기는 방탕한 생활에도 불구하고 위성송수신기, GPS 등 최신 장비와 무기로 무장한 덕에 나날이 강력해지고 있다.
최근 해적 출몰 해상과 가까운 소말리아 해안지역에서 한 언론사 기자가 목격한 바에 따르면 각각 해적단의 회계사와 항해사라고 밝힌 두 남자가 말끔한 수트 차림에 신식 노트북을 들고 있어서 마치 월스트리트의 증권맨을 연상시키는 모습이었다고 한다.
해적들은 고액의 몸값을 받을 귀한 몸인 인질들에게도 비교적 후한 대접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억류되었다가 풀려난 일본 스톨트 밸러호 선원들은 해적들로부터 총부리로 위협을 받았다며 ‘짐승’이라고 비난했지만 폭행 등 직접적인 물리적 학대를 당한 경우는 거의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일부 인질들은 가끔씩 선상에서 스파게티와 생선구이, 스테이크 등 다양한 유럽식 식사와 함께 담배와 술도 제공받았다고 한다.
▲ 납치된 사우디아라비아의 유조선. 아래는 납치됐던 프랑스 호화 여객선. | ||
이들의 배후에 대해서는 다양한 추측이 오가고 있다. 한때 두바이의 한 부호가 후원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으나 이제는 오히려 아랍의 부호가 이들에게 돈을 빌리고 있다는 소문이 흘러나올 정도니 이들의 영향력과 수입이 얼마나 높아졌는지 가늠할 수 있다.
최근에는 소말리아 해적이 이슬람 테러단체와 연계되어 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미국 CNN 인터넷판에 따르면 최근 알카에다와 연관된 것으로 알려진 이슬람 무장단체가 해적선에 접근하려는 모습이 목격되었다.
전세계가 소말리아의 해적을 주목하고 있는 사이 해적에 대한 인근지역 주민의 입장은 크게 둘로 갈리고 있다.
해적들에게 생활용품을 공급하는 기지 역할을 하고 있는 인접지역은 소위 ‘해적특수’를 누리면서 인터넷 카페, 고급 레스토랑 등이 성업하는 등 다른 지역과 비교할 수 없는 경제적 혜택을 받고 있다. 해적들의 거점지역인 하라드헤레에 거주하는 5세 자녀를 둔 한 30대 여성은 “불법이건 합법이건 우리 마을에 도움이 되는 건 사실”이라고 말하면서 “덕분에 아이들이 끼니 걱정 없이 학교를 다니고 축구도 할 수 있다”면서 공공연히 해적을 두둔했다.
반면 해적 때문에 피해를 본다고 주장하는 주민들도 적지 않다. 전직 군인 출신의 한 남성은 해적선과 해적들이 억류 중인 선박들에서 무단으로 투척되는 각종 유해물질 때문에 인근 해안이 심하게 오염되어 조업이 불가능할 뿐 아니라 주민들과 가축이 원인모를 병에 시달리고 있다고 토로하고 있다.
처음 소말리아의 해적이 등장한 것은 1990년대 초부터다. 소말리아가 무정부상태에 빠지고 경제가 피폐해지며 대규모 어선들이 소말리아 해역에서 조업하면서 전통적인 방법의 어업이 어려워지자 생계의 위협을 느낀 어민들이 배를 몰고 나와 해외선박들에 항의하기 시작한 것이 오늘날 해적의 단초가 된 것이다.
날로 잦아지는 해적들의 공격에 독일과 프랑스 등 유럽연합 8개국이 해적소탕에 나서겠다고 밝혔으며 나토(NATO)와 미국, 러시아의 함대가 감시활동을 펼치고 있다. 우리나라도 내년에 ‘강감찬호’를 소말리아 해상에 파견할 예정이다.
그러나 오랜 내전으로 인한 소말리아의 불안정한 정세와 피폐한 경제상황, 해적에 대한 인근 주민의 비호, 무기상들과의 결탁, 무장세력과의 연계 등 해적소탕을 위한 과제는 첩첩산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소말리아 청년들은 해적을 자신들의 우상으로 삼아 오늘도 바다로 향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예준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