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신문’이 입수한 고려금속활자 ‘증도가자’의 문화재 지정 심의회 속기록 일부 발췌본.
회의가 열린 4월 13일은 증도가자의 문화재 지정 심의결과 발표 당일로 결과 발표 한두 시간 전에 긴급하게 심의회를 소집한 뒤 문화재위원회는 ‘부결’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증도가자 지정 심의회의 부결 결론은 여전히 학계 등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논란의 불을 지핀 것은 문화재청 쪽이다. 문화재위원회 동산분과 회의록에 적힌 문화재청 지정조사단의 의견은 ‘증도가자는 고려금속활자가 맞으나 분석방법이 발달할 때까지 유보하자’로 되어 있었다. 즉, 문화재청 지정조사단의 ‘유보’ 의견을 문화재위원회 심의회에서 ‘부결’로 뒤집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일부에선 문화재청이 증도가자의 문화재 지정을 가로막은 주범이라며, 세계 최고(最古) 금속활자의 자부심도 가로막았다고 비판하고 있다.
증도가자 기초학술조사 연구팀 남권희 경북대 교수는 “문화재위원회는 2017년 4월 13일 10시~ 12시까지, 다시 오후 13시~ 15시까지 증도가자 지정 심의회의를 하며 문화재청 지정조사단의 ‘유보’ 의견을 무시하고 증도가자의 문화재지정을 ‘부결’한다고 결론을 내렸다”면서 이 과정에서 “문화재청 직원이 지정조사단의 ‘유보’ 의견을 무시하고 문화재위원회 심의에 부당하게 개입하여 ‘부결’로 몰아가 문화재위원회를 허수아비로 만들었고, 문화재위원회는 문화재청의 농단에 놀아난 형국이 되어버렸다”고 지적했다.
문화재청 고위 직원은 문화재위원회 회의에 간사로 참석해 의사결정 권한은 없다. 또한 위원들의 심의에 끼어들거나 가부 결정에 영향을 주어선 안 된다. 더욱이 문화재위원회는 문화재청이 구성할 수 있는 데다 문화재위원 인사권도 사실상 문화재청 소관이기에 문화재청의 입장이 반영된다는 것은 위원회의 자율성을 크게 훼손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심의회의 속기록에 따르면, 한 위원이 “시간적으로 보아서 일단 부결인 것 같고 문구를 만들자”고 한 대목에 문화재청 직원은 “만약 부결시키면 밖으로 나가는 것을 어떤 논리로 막을까 생각했다. 위원님은 몇 가지 조건을 말씀하신다고 했는데 행정적인 판단은 부결인 것이다. 그 뒤에 아무런 어떤 조건을 붙인다고 해도 소송이 들어올 것이다”며 문화재청 직원이 사실상 부결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심의회가 문화재 지정 부결에 따른 문화재 외부 반출 우려까지 고민한 흔적도 보인다. 한 위원은 “(증도가자가) 진품일 가능성이 많다”고 증언하면서 “법적으로 가짜가 아닌 다음에는 문화재를 밖으로 반출할 수 없다. 우리 위원회가 그런 중요한 금속활자를 가짜로 했느냐 비난할지 모르지만 이제는 신청자(소장자)가 그것을 팔아먹는 날에는 어디에 팔아먹느냐. 그러면 형사처분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또 다른 위원은 “팔아먹는 상황이 발생되면 그 비난의 화살이 왜 부결시켰느냐 하고 들어온다”고 말했다. 이후 한 위원은 결정적으로 “부결을 써놓았는데 그게 흔들리면 어떻게 되더라도 사유부터 써보자. 첫 번째 뭘 쓸까? 증도가자 이야기를 쓸까?”라고 하면서 본격적인 부결 회의를 시작한다.
문화재청이 부결 사유로 내놓은 과학적 분석결과를 의심케 하는 대목도 나온다. “방사성탄소연대측정과 표면조사에 의하면, 고려금속활자 여부에 대해 고려시대 제작이 된 금속활자일 가능성이 상당히 높지만”이라고 하자, 한 위원은 “가능성이 있지만으로 이렇게 쓰자”고 말을 보탠다. 또 다른 위원은 가능성은 있지만 안타깝게도 소장경위 번복 등을 이유로 신청자의 책임으로 떠넘기는 언급을 하기도 한다. 이어 “소장 경위는 설명하면 할수록 점점 꼬여서 영원히 그것은 해줄 수가 없다”며 간사인 문화재청 고위 직원의 의견을 묻기까지 한다.
회의에서는 부결 발표 뒤 언론을 의식한 발언도 이어진다. 한 위원이 “제가 보기에 기자들이 타이틀을 두 가지로 쓸 것 같다. 하나는 증도가자 부결, 하나는 고려금속활자일 가능성 인정 이렇게 나갈 것 같다”고 하자, 문화재청 고위 직원은 “제가 기자들에게 받은 느낌은 저런 식으로 아무리 알린다고 하더라도 가짜로 판명된다고 이렇게 나올 것이다”고 규정짓는다.
끝으로 “그러면 부결을 하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라며 회의는 마무리된다.
이처럼 이날 회의는 문화재청 직원이 ‘부결’ 의견을 강력하게 개진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문화재위원회가 부결을 위한 심의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고려금속활자 ‘증도가자’ 국회 학술토론회의 한 장면.
문화재청은 이 같은 논란에 대해 “소유자 및 진품이라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으나, 현재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통해 결론을 내린 만큼 문화재위원회의 결정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며 “문화재위원회는 지정 신청된 증도가자에 대해 서체 비교, 주조 및 조판, 과학조사결과 및 쟁점사항 등을 충분히 검토, 논의하고 결정을 내린 것이지 결과를 예단하고 처리한 것이 아니다”라고 답변했다.
문화재청이 일부 학계와 유착된 것이 아니냐는 의혹에 대해선 “사실 무근이고, 심의 과정에서 객관적인 입장을 가지고 처리했다”고 일축했다. 재심의나 재평가 여부에 대해선 문화재위원회에서 검토되지 않은 새로운 사실이나 명확한 증거가 제출되어야만 가능하다며, 사실상 반영 의사가 없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한편, 유성엽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장은 지난달 16일 열린 문화재청 국정감사에서 “세계최고의 금속활자본인 직지심경보다 130여 년 앞선 것으로 알려진 고려금속활자인 증도가자의 보물지정 심의 과정을 보면 지정 부결 쪽으로 몰고 가려고 (문화재청이) 안달을 부린 흔적이 역력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관련 전문가들의 파벌과 알력에 의해 부결 쪽으로 몰고 갔다”고 덧붙였다.
급기야 고미술업계 등 문화재 관계자들 사이에선 증도가자의 문화재 지정을 놓고 청와대 등 정부 고위인사와 문화재청 등이 조직적으로 개입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어 논란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서동철 기자 ilyo1003@ilyo.co.kr
“검증방법 발전 기다려야” 권고 무시하고 결론…‘증도가자’가 뭐기에 증도가자는 보물(제758-1호)로 지정된 ‘남명천화상송증도가(南明泉和尙頌證道歌, 증도가)’를 인쇄할 때 사용된 것으로 학계 일각에서 주장해 온 금속활자다. 현존 증도가는 1239년 제작된 번각본으로, 금속활자본은 남아 있지 않다. ‘증도가자’는 1377년 간행된 ‘직지심체요절’보다 최소 138년 앞서는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 관련 유물로 알려졌으며, 증도가자가 문화재로 지정될 경우 한국은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과 최고의 금속활자를 동시에 인증 받게 된다. 고려금속활자 ‘증도가자’의 모습=연합뉴스 문화재청은 2017년 4월 증도가자가 증도가를 인쇄한 활자로 보기 어렵다며, 문화재 지정 신청을 불허했다. 문화재청의 공식발표로 일단락될 것 같았던 증도가자 진위 논란은 오히려 더 거세지고 있다. 아쉬운 점은 문화재청이 스스로 가능성이 높다고 인정한 고려금속활자에 대한 평가보다는 증도가자 진위 여부에만 열중한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문화재청은 2015년 기존의 기초학술조사 연구용역에 참여했던 전문가들을 배제한 채 지정조사단을 구성해 1년 6개월 동안 연구, 조사를 벌였다. 그 결과 증도가자에 남아있는 먹의 연대를 12세기 초~13세기로 추정했다. 조사단은 2016년 12월 활자의 역사성을 추정하는 것은 현 수준에서는 미흡하므로 신청활자를 문화재로 당장 지정하기보다는 검증 방법이 더 개발, 발전될 때까지는 유보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결론냈다. 조사단의 ‘보류’ 권고에도 문화재청은 지난 4월 13일 ‘지정 부결’을 부랴부랴 낸 모양새를 보여 논란은 더욱 커지고 있다. [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