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11월 1일 오전 국회에서 새해 예산안 관련 시정연설을 하는 중간 추미애 민주당 대표 등이 박수를 치고 있다. 국회사진취재단
친문계 차출설은 청와대 참모진·내각 인사·더불어민주당 주류 인사 등 크게 세 축으로 움직인다. 지역은 최대 격전지 수도권, DJ(김대중 전 대통령) 적자를 잇는 ‘호남’, 대표적 험지인 ‘영남’에 집중됐다. 수도권과 호남은 단 한 곳이라도 뺏기면 정권에 타격을 주는 지역이고, 영남은 정권의 안정을 위한 전략적 차출이 필요한 곳이다.
신주류 차출설의 대표 격은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다. 서울시장 후보군 때마다 거론되던 임 실장은 최근 전남지사 출마설에 휩싸였다. 10월 25∼26일 이틀간 문재인 대통령의 한국시리즈 1차전 시구 및 관람 등 광주·전남 일정을 동행한 직후 출마설은 극에 달했다. 임 실장의 고향이 전남 고흥이라는 점도 전남지사 출마설에 한몫했다.
일각에선 민주당 호남 후보군 중 전남이 가장 약하다는 평가를 받는 데다, 박지원 국민의당 의원이 출마 여지를 남기면서 청와대가 ‘호남 수성’ 작전에 나선 게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도 있었다. 임 실장의 직접적인 입장표명도, 의례적인 측근의 부인도 없자 의혹은 확산했다. 서울시장과 전남지사 차출설을 놓고 설왕설래하자, 임 실장은 청와대 관계자를 통해 출마설 불끄기에 나섰다.
청와대 관계자는 10월 29일 임 실장의 전남지사 출마 여부에 대해 “본인이 직접 부인했다”며 “지금 출마하기가 쉽겠냐”라고 잘라 말했다. 대통령 비서실장직 1년도 채우지 않고 ‘자기 정치’를 한다는 비판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다만 서울시장 출마의 문은 닫지 않았다. 이 관계자는 “임 실장이 출마 자체를 생각해 본 적은 없다”면서도 “1%는 정치 상황에 따라 단정하기 어려운 것이 아니냐”라고 말했다.
임 실장에 이어 부산시장 후보로 거론되는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도 선 긋기에 나섰다. 그는 10월 31일 출입 기자들에게 문자를 보내 “문재인 정부 첫 민정수석으로 완수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며 “향후 오로지 대통령을 보좌하는 데 전념하고자 함을 재차 밝힌다”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조 수석은 부산 혜광고 출신이다. ‘조국 차출’은 부산의 경우 인지도가 높은 조 수석 외에는 대안이 없다는 점이 설을 재촉했다. 여권 내부에선 지방선거 판 키우기 전략이란 분석이 제기됐지만, 정치권 안팎에선 “부산시장 이외 서울시장 등 타지역 출마 가능성을 연 것이 아니냐”라는 의구심이 쏟아졌다.
청와대 참모진 차출설은 이뿐만 아니다. 2011년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민주당에서 가장 먼저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한 전병헌 청와대 정무수석도 서울시장 후보군이다.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은 경기지사로 거론된다. 윤 수석은 경기 성남에 본사를 둔 ‘네이버’ 부사장 출신이다.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포스트 안희정’ 1순위다. 유력한 충남지사 후보군인 박 대변인은 지난 5·9 대선에서 안희정 당시 민주당 대선 후보 캠프 대변인을 맡았다. 박 대변인의 경우 그간 지방선거 출마 의사를 밝힌 만큼, 출마에 무게가 실린다.
정부 출범 이후 청와대와 갈등설에 휩싸였던 추미애 민주당 대표의 대구시장 출마설도 고개를 들었다. 진원지는 청와대였다.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의 내각 참여로 험지인 대구지역이 무주공산으로 전락하자, 대구 달성 출신인 추 대표가 유력한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다. 청와대 일부 인사는 추 대표의 수락을 전제로 “좋은 카드”라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추 대표는 측은 “거론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잘라 말했다.
3선 도전을 천명한 박원순 서울시장의 ‘경남지사’ 출마설도 돌았다. 박 시장과 경남지사 출마의 연결고리는 고향(경남 창녕) 외에는 없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뜬금없는 얘기”라고 일축했다. 박 시장은 이르면 올해 연말, 늦어도 내년 초 서울시장 3선 도전을 공식화한다. 다만 임 실장의 서울시장 차출 여부에 따라 본선보다 치열한 예선전을 전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차출 당사자의 부인에도 특정 지역 출마설이 도는 것은 ‘권력 암투’와 무관치 않다. 지난 추석을 기점으로 출마 쪽으로 기운 이호철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부산시장 출마 등과는 달리, 지방선거 등판에 손사래를 치는 김경수 민주당 의원의 경남지사 출마는 다분히 정략적이라는 분석이다.
김 의원은 그간 내년 지방선거 출마와 관련, “국회의원을 중도 사퇴해야 하는데 바람직하지 않다”고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경남 김해을 지역을 노리는 당 내외 인사들이 ‘김경수 출마설’을 흘릴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른바 반대편 인사의 ‘권력 밀어내기’ 성격이 짙다는 얘기다. 하지만 정부 출범 이후 첫 번째 전국단위 선거인 지방선거에서 친문 전진 배치를 통한 정국 안정이 필수적인 만큼, 문 대통령의 의중에 따라 김 의원의 선택이 달라질 수도 있다.
의혹 짙은 차출설은 또 있다. 내각에 참여한 지 반년밖에 안 된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의 부산시장 출마설이다. 김 장관이 부산시장에 출마할 경우 조국 수석이 김 장관의 지역구인 부산 진갑에 출마하는 설로 거론된다. 이른바 ‘김영춘·조국’의 주고받기다. 익명을 요구한 한 초선 의원은 “여의도에 떠도는 설만 보면, 내년 지방선거는 우리 내부 싸움”이라며 “당에서 나온 시나리오가 아닌 것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부겸 장관의 대구시장 출마설을 비롯해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경기지사 출마설도 마찬가지다. ‘김부겸·김동연 차출설’도 지역구 및 연고지 등과 교집합을 찾은 정치공학적 접근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김 장관의 지역구는 대구 수성갑, 김 부총리는 경기 수원의 아주대 총장을 지냈다.
한 분석가는 “청와대 참모와는 달리, 내각 참여 1년도 안 된 장관이 지방선거에 나간다고 한다면, 국민 중 누가 응원을 하겠느냐”며 “보수와 진보를 넘어 비판받을 수 있는 지점”이라고 말했다. ‘포스트 문재인’을 향한 차기 대권 잠룡의 조기 등판은 민심의 역풍과 맞닥뜨릴 수 있다는 의미다. 반대 의견도 있다. 민주당 한 보좌관은 “신주류로 부상한 이들의 차출이 현실화된다면, 흥행은 민주당의 편”이라며 “지방선거 이후 국정운영이 한층 안정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설보다는 출마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는 지역도 있다. 수도권 빅2 중 경기지사와 인천시장이다. 이 지역에서는 친문 핵심인 더불어민주당 전해철·박남춘 의원 등이 강하게 출마를 요구받고 있다. ‘부산·경남·울산(PK)’의 친문 전진 배치 요구도 거세다. 이 지역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물론 문 대통령의 고향인 PK 지역은 정권 안정을 위해 ‘판’을 흔들어야 하는 핵심 요충지다.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과 전해철 의원과 함께 3철로 불리는 이호철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부산시장 출마가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 안팎에선 친문 차출설과 관련해 ‘징발’ 논란을 불렀던 참여정부의 과오가 한몫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은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서울시장)을 비롯해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경기지사), 김두관 전 행정자치부 장관(경남지사), 장관급인 조영택 국무조정실장(광주시장) 등 장관급 7명과 청와대 참모진 10명을 차출했다. 이는 2010년 지방선거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이 차출한 규모(장관 2명과 참모진 3명)보다 세 배 이상 많았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참여정부 당시 정치적 논란을 일으켰던 장관 7명이 모두 낙마했다”라며 “문재인 정부도 측근 공천이 아닌 개혁 공천만이 살길”이라고 밝혔다.
윤지상 언론인
돌아온 김종인, 노병은 죽지않는다고? 파괴력은 글쎄 “노병은 죽지 않았다. 잠시 사라졌을 뿐이다.”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돌아왔다. 김 전 대표는 11월 2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김종인의 경제민주화’ 만화책 출판기념회를 개최, 노정객의 생명력을 증명했다. 5·9 대선에서 자신의 정적이었던 문재인 정권이 출범한 이후 6개월간의 야인 생활을 끝내고 정치적 재기의 기지개를 켠 것이다. 김 전 대표는 지난 3월 민주당을 전격 탈당한 뒤 ‘중간지대 플랫폼’ 구축에 나섰지만, 리더십 부재 등으로 끝내 반문(반문재인)연대 판을 구축하는 데 실패했다. 김 전 대표의 대선 이후 첫 행보가 주목받는 이유는 ‘보수대통합’, ‘중도보수대통합’ 등 정계개편과 맞물려있기 때문이다. 이는 지난 대선 과정에서 김 전 대표가 추진했던 중간지대 플랫폼과 상당 부분 교집합을 형성한다. 탈당 이후 자유한국당·국민의당·바른정당으로부터 러브콜을 받았던 김 전 대표는 이후 개헌을 고리로 비패권지대 구축에 나섰다. 그는 민주당에 몸담고 있을 때부터 정의화 전 국회의장과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 등 킹메이커 회동에 나서며 판 만들기에 주력했다. 여의도 안팎에선 김 전 대표가 제2의 DJP(김대중·김종필)연합을 통해 킹메이커가 아닌 판을 흔드는 ‘판메이커’로 나설 것으로 전망했다. 김 전 대표는 조기 대선이 본격화하자,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홍석현 전 중앙일보·JTBC 회장과 반문 빅텐트 구성을 논의했다. 하지만 안 대표와 유 의원이 독자 행보를 고수, 김 전 대표의 개혁공동정부를 고리로 한 비패권지대 구상은 물거품으로 끝났다. 양 날개를 잃은 김 전 대표는 대선 막판 안 대표를 공개 지지했지만, 영향력은 미미했다. 민주당 한 보좌관은 “김 전 대표의 영향력은 대선 패배로 끝났다”고 단언했다. 관전 포인트는 ‘김종인 역할론’이다. 김 전 대표는 이날 출판기념회 직후 기자들과 만나 “정치에는 이제 관여를 안 한다”며 “다시는 절대로 안 할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어 국민의당과 바른정당 통합 논의에 대해서도 “내 역할은 이미 끝났다”고 잘라 말했다. 안 대표도 연대 가능성에 대해 “오늘은 축하하러 온 자리”라며 “건강이 어떠신가, 나중에 한번 뵙겠다는 정도밖에 말씀을 못 드렸다”고 전했다. 즉각적인 연대 가능성은 낮아졌지만, 여지는 남김에 따라 향후 정계개편의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다만 이들의 결합이 화학적 시너지를 낼지는 미지수다. 양 측은 2012년 대선을 기점으로 갈라섰다. 2016년 총선에서 김 전 대표가 새정치민주연합(현 민주당) 문재인 호에 합류하자, 안 대표는 “노무현 대통령이 살아있었다면, 영입을 반대했을 것”이라고 비난했다. 김 전 대표도 지난해 4·13 총선 전 안 대표가 야권통합에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한 직후 “정치를 잘못 배웠다”고 힐난했다. 지난 대선 때 비패권지대 플랫폼 구축에 나섰던 한 인사는 반문연대 실패 요인으로 ▲안철수·김종인 앙금 ▲안철수·유승민·정운찬 등의 각자도생 ▲김종인의 조정자 역할 실패 등을 꼽았다. 이 관계자는 “타 후보 측에서 김 전 대표의 리더십에 대한 우려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며 “정계개편 과정에서 역할론이 계속 나오겠지만, 회의적”이라고 말했다. [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