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검 특수3부(양석조 부장검사)가 찾아낸 것은 국정원의 ‘청와대 뒷돈 상납’ 정황. 국정원 예산 중 특수 활동비 명목으로 지급되는 돈 중 수십억 원이 청와대에 정기적으로 상납된 사실을 확인했다. 검찰은 당시 국정원 인사들로부터 구체적인 진술을 통해 은밀한 뒷돈 상납 사실을 포착했다. 현재 이 돈을 받았다고 지목된 이재만 전 청와대총무비서관과 안봉근 전 청와대 제2부속비서관, 정호성 전 청와대 비서관 등 문고리 3인방은 수수 사실을 인정했고, 3일 구속영장이 발부됐다. 진짜 핵심으로 지목된 박근혜 전 대통령까지, 뒷돈 상납 과정에 관여한 인물들이 적지 않아 ‘국정원 특수활동비 게이트’를 둘러싼 후폭풍이 한동안 서초동에 휘몰아 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국정원 의혹과 관련해 체포된 이재만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왼쪽)과 안봉근 전 청와대 국정홍보비서관이 3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들어서고 있다. 2017.10.31 사진=연합뉴스
수사의 핵심 단서가 된 진술을 털어놓은 것은 국정원 예산과 인사를 좌지우지했던 이헌수 전 국정원 기획조정실장이었다. 이 전 실장은 검찰 조사에서 “청와대가 먼저 돈을 달라고 해서 매월 돈을 청와대에 보냈다, 국정원장에게 ‘돈을 청와대에 보낸다’고 보고한 뒤 청와대에 1억 원씩 전달했다”며 “돈은 007가방이라고 불리는 검은 서류 가방에 넣어 건넸다”고 털어놨다.
가장 중요하지만 검찰이 아직 다 밝혀내지 못한 것은 상납금의 사용처다. 40억 원이 넘는 상납금 중 5억 원은 지난해 초 청와대가 4·13 총선을 앞두고 자체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비용으로 사용된 것을 확인했다. 하지만 나머지에 대해서는 아직 용처가 드러나지 않았다. 문고리 3인방이 구체적으로 확인해주지 않고 있기 때문.
검찰은 안 전 비서관, 이 전 비서관, 정 전 비서관이 2014년 나란히 강남구 삼성동, 서초구 잠원동 등지에 8억~9억 원 안팎의 아파트를 구입한 것에 주목하고 있다. 이들이 국정원에서 상납받은 뇌물을 부동산 구입에 썼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는 것. 하지만 이들은 “박근혜 전 대통령 지시로 특활비를 상납 받은 것은 맞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사용했는지는 알지 못한다, 박 전 대통령이 알고 있다”는 해명만 반복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7월 27일 집행유예 판결을 받아 수갑을 풀고 법원에서 나오는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검찰 수사 결과로도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검찰 수사에 따르면 국정원은 조윤선, 현기환 전 정무수석에게는 특수활동비 중 500만 원을 매달 줬다. 2014년 6월 취임해 2015년 5월까지 근무한 조 전 수석은 약 5000만 원, 현기환 전 수석도 1년 동안 비슷한 액수의 돈을 챙긴 것으로 검찰은 파악하고 있다.
이 돈을 전달하는 역할은 신동철 전 비서관이 맡았는데, 중간에서 매달 300만 원을 별도로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국정원이 정무수석실에 연 1억 정도에 달하는 금액(매달 800만 원, 연 9600만 원)을 건넸고, 직급 순서대로 정무수석이 500만 원, 비서관이 300만 원을 나눠가진 것이다.
서초동(검찰) 분위기는 들떠있다. 이번 수사를 놓고 ‘국정원 수사 중 최고의 성과’라는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사실 국정원 수사가 약간 ‘복수’의 형식으로 지지부진하게 끌고 가는 측면이 있었는데 이번 뒷돈 상납 확인은 국정원의 특활비 상납 첫 확인이라는 의미는 물론, 범죄 혐의금액(40억여 원)까지 상당하지 않냐”고 평가했다. 이번 사건으로 실제 문고리 3인방 모두를 구속하는 데 성공하면서(정호성 전 비서관은 이미 구속상태였음) 검찰은 나머지 피의자들 범죄 혐의 입증에도 자신감을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우려가 없는 것도 아니다. 특히 성격이 비슷한 국정원의 특활비를 뇌물로 판단해 수사하는 게 ‘성역’을 건드린 것이라는 자아비판도 나온다. 검사 출신 법조인은 “검찰도 특수활동비를 받아서 집행하는 기관 중 하나인데, 검찰에 할당된 특활비 중 일부는 검찰총장이 법무부 장관에서 상납하고 있다는 얘기도 있다”며 “이는 윗 조직에게 상납하는 문화가 남아 있어서 그런 것인데 국정원의 특활비가 뇌물이면 검찰총장이 법무부 장관에서 상납하는 것도 뇌물이라는 설명이 성립하는데 나중에 검찰이 어떻게 이 부분을 털고 가려는지 모르겠다”고 털어놨다.
서환한 기자 brigh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