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고리 3인방으로 불렸던 안봉근 전 청와대 국정홍보비서관과 이재만 전 총무비서관은 매월 1억 원가량의 국정원 특활비를 수수한 혐의로 11월 3일 구속됐다.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서울중앙지검 특수 3부(양석조 부장검사)는 이들에게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와 국고손실 혐의를 적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안봉근 전 청와대 국정홍보비서관이 최순실 의혹과 관련 조사를 받기 위해 지난해 11월 14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으로 들어서고 있다. 최준필 기자
야권에서는 “역대 정권마다 다 해왔던 일을 부풀려 정치보복성 수사를 하고 있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정우택 자유한국당(한국당) 원내대표는 11월 1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역대 정권마다 다 해왔던 것을 지난 정부가 뇌물을 받은 것처럼 표현하는 것에 분개한다”면서 “마치 뇌물을 받은 것처럼 각색해서 처벌하려는 것은 누가 봐도 표적수사”라고 했다.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캠프 종합상황실장을 지낸 권영세 전 의원도 반발하고 나섰다. 권 전 의원은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김영삼 정부 시절에도 안기부(현 국정원) 예산을 선거자금으로 전용했다는 이른바 ‘안풍 사건’이 있지 않았느냐”면서 “국정원이 청와대에 특활비를 지원한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고 주장했다.
권영세 전 의원은 “잘못된 관행이면 처벌을 하는 것이 맞다”면서도 “김대중, 노무현 정부는 수사하지 않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다. 5·18민주화운동의 경우 수십 년이 지난 것도 재조사하고 있는 것 아닌가. 다 철저하게 조사하라 이거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과거 검찰 수사에서 국정원 자금이 정치권으로 흘러들어간 사실이 몇 차례 확인된 바 있었다. 2001년 대검 중수부가 김대중 전 대통령 차남 김홍업 씨를 수사할 때 임동원, 신건 국정원장이 총 3500만 원을 김 씨에게 줬던 사실이 밝혀졌다. 국정원장들은 ‘개인 돈으로 떡값을 준 것’이라고 해명했고 검찰은 이들을 처벌하지 않았다. 2004년에는 권노갑 전 의원에게 국정원 수표가 일부 흘러들어간 것으로 드러났지만 역시 수사로 이어지지 않았다.
김만복 전 국정원장은 “관행이라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 국정원장을 지낸 김 전 원장은 “최소한 제가 원장으로 재임하고 있었던 시절에는 특활비든 어떤 예산이든 국정원에서 청와대에 돈을 보낸 적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야당이 관행이라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서는 “자기들이 살려고 그러는 거지. 청와대로부터 특활비를 지원해달라는 요청을 받은 적도 없었고, 줘야 한다는 규정도 없었다. 준 것이 사실이라면 분명히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국정원 특활비는 주로 청와대 정무수석들에게 지원된 것으로 확인됐다. 조윤선 전 수석은 2014년 6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약 5000만 원, 후임인 현기환 전 수석도 비슷한 액수의 돈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당의 한 관계자는 “정무수석은 정부와 국회 간에 가교 역할을 하는 자리다. 당연히 만날 사람도 많고, 만나면 밥이라도 먹어야 할 것 아닌가. 특활비 지원은 불가피하다. 지금도 공공연히 그런 돈이 쓰이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김대중 정부에서 정무수석을 지낸 조순용 전 정무수석은 “정권 초기에 외부 기관에서 가져오는 특활비가 있긴 있었다고 들었다. 그런데 김대중 정부는 출범하자마자 그런 관행을 모두 없앴다. 저는 정무수석으로 근무하면서 특활비나 어떤 명목으로든 국정원으로부터 돈을 받은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에서 정무수석을 지낸 김효재 전 정무수석도 “어떤 명목으로든 불투명한 돈을 지급받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 전병헌 정무수석 측 관계자는 “그런 문제는 저희가 개인적으로 답변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과거 정부들도 관행적으로 지급해왔던 돈이라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는 얘기다.
특활비 사용처도 중요한 쟁점이다. 박근혜 청와대는 지난해 4·13 총선을 앞두고 비공식적으로 의뢰한 여론조사 비용 5억 원을 특활비로 처리한 것으로 밝혀졌다. 검찰은 또 문고리 3인방이 지난 2014년 아파트를 한 채씩 나란히 산 것과 관련해 국정원 특활비가 사용됐는지 확인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의 한국당 관계자는 “아직까진 특활비를 개인적으로 사용했다는 증거가 나오지 않았는데 검찰은 다짜고짜 뇌물죄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 아닌가. 기껏해야 업무상 횡령이나 배임, 국고손실 혐의가 적용될 문제에 과도한 혐의를 적용했다”고 비판했다. 이 관계자는 “만약 청와대 관계자들이 특활비를 개인적으로 사용했다면 백번 처벌받아 마땅한 일”이라면서도 “개인적인 착복이 아니라 기관운영비로 쓰였다면 부족한 활동비를 메우기 위한 편법 예산 배분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뇌물죄가 적용될 경우 형량이 10년 이상이지만 업무상 횡령이나 배임, 국고손실 혐의가 적용될 경우엔 형량이 10년 이하 또는 5년 이하다. 뇌물죄 성립을 판가름할 핵심은 대가성이 있었느냐 여부다. 검찰도 대가성에 대해서는 뚜렷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다만 검찰 측은 대가성을 따지기 전에 직무 관련성이 있다는 점만으로도 뇌물죄가 성립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불법성 인식 여부도 처벌 수위에 크게 영향을 미칠 쟁점이다. 이재만 전 비서관은 검찰 조사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지시로 특활비를 받았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식라인을 통해 지시를 받았음으로 불법성을 인식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정원 자금을 주고받았던 접선 장소가 인적인 드문 북악스카이웨이였던 점과 지난해 여름 청와대 측 인사가 국정원 쪽으로 연락해 ‘안 되겠다. 당분간 돈 전달은 하지 말라’고 했다는 진술이 나왔다는 점에서 충분히 불법성을 인식하고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온다.
검찰은 이 돈이 정치권에 흘러 들어갔을 가능성도 수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 특활비가 정치인들에게 건네진 정황이 확인될 경우 국정원 게이트로 비화될 가능성까지 점쳐지고 있다. 특히 한 언론보도에 의하면 검찰이 특활비가 정무수석뿐만 아니라 청와대 모든 수석과 비서관급에게까지 전달됐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장 청와대 출신 야당 의원들이 수사대상에 오를 가능성이 크다. 한국당 이정현, 김재원 의원이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냈고, 곽상도 의원은 민정수석 출신이다.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민정수석실 공직기강비서관 출신으로 수사대상이 될 수 있다. 곽상도 의원은 “청와대 근무 시절 어떤 명목으로도 특활비를 받은 적이 없다. 국정원 특활비가 전달되었다는 것은 금시초문”이라고 말했다.
한국당은 이번 수사가 현역 의원들에 대한 수사로까지 번질 경우 정치보복으로 규정하고 강력하게 저항하겠다는 입장이다. 검찰은 야당의 반발에도 특활비가 사실상 박 전 대통령의 비자금으로 사용됐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검찰 주변에서는 생각보다 사건이 쉽게 풀릴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재만 전 비서관이 박 전 대통령 지시였다는 점을 쉽게 털어놓는 등 수사에 비교적 협조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박 전 대통령 변호를 맡았던 채명성 변호사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탄핵 심판 당시 최측근인 두 사람에게 증언을 부탁했지만 이들이 거절했다”면서 “세상 인심이 참 무섭다”고 말했다. 재판과정에서 수차례 박 전 대통령을 옹호하는 발언을 한 정호성 전 비서관과는 대조적이다. 이들이 형량을 줄이기 위해 수사에 적극 협조하고 나설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당시 국정원장이었던 남재준 전 원장의 입장을 듣기 위해 수차례 연락을 시도했지만 전화를 받지 않았다. 검찰의 자택 압수수색 이후에는 아예 전화기가 꺼져 있었다. 이번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특수 3부 관계자도 “수사 중인 사건에 대해서는 드릴 말씀이 없다”고 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