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시리즈 4승이 1홈런에 밀렸다?
한국시리즈 MVP는 당연히 우승팀에서 나온다. 아무리 잘 던지고 잘 쳐도 패한 팀 선수는 왕관을 쓸 수 없다. 한국시리즈 우승팀과 마찬가지로 한국시리즈 MVP 역시 ‘하늘이 내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연히 각 팀은 우승 숫자만큼 한국시리즈 MVP를 배출했다. KIA가 11명, 삼성이 8명, 두산이 5명, 현대가 4명, SK가 3명, LG와 롯데가 각 2명, 한화가 1명이다. 그 가운데 한국시리즈 MVP를 2회 이상 수상한 선수는 역대 단 네 명뿐. LG 김용수(1990·1994년)와 해태 이종범(1993·1997년), 현대 정민태(1998·2003년) 삼성 오승환(2005·2011년)이 전부다. 모두 한국 프로야구에 한 획을 그은 스타 선수들이다.
초창기 3년은 타자들이 연속으로 MVP에 올랐다. 1982년 초대 한국시리즈 MVP의 주인공은 OB 외야수 김유동. 6차전에서 역대 최초 한국시리즈 그랜드슬램을 터트린 주인공이다. 타율 4할에 홈런 3개로 12타점을 올렸다. 5차전과 6차전에서 홈런 세 방을 몰아친 덕분에 더 깊은 인상을 남겼다. 6차전 완투승을 거둔 에이스 박철순을 MVP 투표에서 눌렀다.
한국시리즈 MVP가 돼 부상으로 받은 승용차에 앉아 포즈를 취하는 김유동. 연합뉴스
심지어 롯데가 우승한 1984년에는 전무후무한 한국시리즈 4승을 올린 고(故) 최동원이 MVP 투표에서 유두열에 밀렸다. 최동원은 1984년 삼성과의 한국시리즈에서 1·3·5차전을 완투(1차전 완봉승, 3차전 완투승, 5차전 8이닝 완투패)했다. 또 6차전 구원승에 이어 7차전에서 다시 완투승을 올렸다. 한국시리즈 7경기 가운데 5경기에 등판해 총 40이닝을 던졌는데도 평균자책점이 1.80이다. 그야말로 만화에서나 나올 법한 전설적 활약이다. 그러나 한국시리즈 MVP는 타율 0.143(21타수 3안타) 1홈런 3타점 2도루를 기록한 유두열에게 돌아갔다. 정규시즌 27승을 올린 최동원이 이미 페넌트레이스 MVP를 확보했다는 게 그 이유였다. “한 선수에게 최고의 상이 몰리면 안 된다”는 이상한 논리가 최동원의 시리즈 MVP를 막았다. 당시 최동원과 함께 뛰었던 한 야구인은 “최동원은 이미 정규시즌 MVP가 확실했기 때문에 시리즈 MVP가 유두열로 결정됐을 뿐”이라며 “지금도 믿기지 않고, 앞으로도 다시 나오기 힘든 역사”라 아쉬워했다.
# 김용수의 오른팔과 이종범의 발이 만든 전설
1986년부터 1997년까지는 지그재그식 수상이 이어졌다. 짝수 해에는 투수, 홀수 해에는 타자가 MVP에 오르는 식이었다. 1986년 한국시리즈 MVP인 해태 김정수는 역대 최초로 투수가 수상한 사례였다. 그는 5경기 가운데 4경기에 나서 3승을 올렸다. 14⅔이닝을 소화하면서 삼진 13개를 잡았고 평균자책점 2.45를 기록했다. 3승 가운데 2승이 구원승이다. 그 뒤는 1988년 해태 문희수(3차전 완봉승 포함 2승 1세이브 평균자책점 0.46)가 이었다.
한국시리즈 MVP로 선정된 LG 김용수 선수. 연합뉴스
물론 그 사이 MVP를 가져간 다른 타자들도 화려했다. 특히 1993년 MVP에 오른 해태 이종범은 ‘바람의 아들’이라는 별명에 걸맞은 활약을 했다. 타격 성적은 타율 0.310(29타수 7안타) 4타점으로 평범했지만 도루를 무려 7개나 해내면서 상대의 기를 꺾었다. 무엇보다 우승팀을 최종 결정지은 7차전에서 4타수 3안타 2도루로 펄펄 날면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종범은 1997년에도 3차전 연타석 홈런을 포함해 3홈런 4타점 2도루로 맹활약했다. 김용수에 이어 두 번째 ‘한국시리즈 MVP 2관왕’ 선수가 됐다.
OB 김민호 역시 1995년 한국시리즈 MVP에서 7차전까지 총 12안타를 터트려 당시 한국시리즈 역대 최다 안타 기록을 세웠다. 또 도루도 6개나 해내는 기동력을 과시했다. 3차전에서는 연장 10회에 안타로 출루한 뒤 2루를 훔치면서 결승 득점에 결정적인 발판을 놓기도 했다. 심지어 김민호는 당시 한국시리즈 종료 사흘 후 동갑내기 연인과 결혼식을 앞둔 상황이었다. 우승은 물론 MVP로도 선정돼 예비 신부에게 최고의 결혼 선물을 안겼다.
# 최고 투수들과 최고 외인 타자들의 경쟁
1998년부터는 판도가 조금 달라졌다. 1998년과 1999년에 2년 연속 투수가 수상한 뒤 2000년부터 3년간은 타자들이 MVP를 가져갔다. 또 2003년부터는 다시 3년 연속 투수에게 MVP가 돌아갔다. 외국인 선수 제도가 도입되면서 한국시리즈에서 외국인 MVP들이 등장하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하다.
1998년과 1999년은 최고의 투수들이 MVP를 거머쥐었다. 1998년 MVP인 현대 정민태는 1차전과 4차전에 선발 등판해 2승을 챙겼고, 총 3경기에서 17⅔이닝을 던져 평균자책점 0.51을 기록했다. 실점이 단 1점뿐이다. MVP 투표에서 유효투표수 50표 가운데 49표를 쓸어갈 만큼 압도적인 임팩트를 남겼다. 정민태는 5년 뒤인 2003년에도 1차전, 4차전, 7차전에 선발 등판해 모두 승리투수가 되는 기염을 토했다. 심지어 7차전은 7-0 완봉승으로 장식했다. 총 21⅓이닝을 던져 자책점은 4점뿐. 평균자책점이 1.69에 이른다. 또 다시 한국시리즈 MVP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1999년에는 한화 구대성이 영웅의 배턴을 이어 받았다. 한화 역사에 아직까지 유일한 우승으로 남아 있는 이 한국시리즈에서 구대성은 팀이 치른 5경기에 모두 등판했다. 성적은 1승 3세이브 평균자책점 0.93. 우승을 확정짓는 마지막 투수도 당연히 구대성이었다. 한국시리즈에서의 활약도 대단했지만, 플레이오프부터 이어져온 투지와 희생정신이 더 높은 점수를 받았다. 그해 포스트시즌에서 구대성의 성적은 총 2승 5세이브였다.
한국시리즈 MVP를 차지한 현대 톰 퀸란. 연합뉴스
# 2006년 이후엔 타자가 MVP 점령
현대 조용준(2004년)과 삼성 오승환(2005년)을 마지막으로 한국시리즈 MVP는 타자들의 전유물이 됐다. 2011년 오승환이 다시 뽑히면서 6년 만에 투수 출신 MVP로 등극했지만, 2012년부터 다시 5년 연속 타자들의 MVP 수상이 이어졌다. 올해 MVP가 된 양현종은 오승환 이후 6년 만에 나온 투수 MVP였다.
오승환은 신인이던 2005년 한국시리즈 4경기 가운데 3경기에 등판해 총 7이닝을 던졌다. 1승 1세이브 평균자책점 0.00. 큰 무대에서도 절대 흔들리지 않는 ‘돌부처’ 신화의 출발점이었다. 2011년에는 이미 KBO 리그 최고 마무리 투수로 올라선 뒤였다. 5경기 가운데 팀이 이긴 4경기에 모두 나왔다. 그리고 그 가운데 3세이브를 따냈다. 5⅔이닝을 던져 8탈삼진 무자책점. 이번에도 평균자책점은 0.00이었다. 심지어 3경기 모두 터프세이브였다. 1차전에서는 2-0 리드를 지켰고, 2차전에선 2-1로 한 점 차 승리를 지켰다. 마지막 5차전에서도 다시 1-0으로 살얼음판 같은 긴장감을 이겨냈다. 4차전(8-4 삼성 승리)을 제외하고는 양 팀 모두 매 경기 2점 이하 득점을 올렸을 정도로 투수의 힘이 중요했던 시리즈다. 그래서 오승환의 활약은 더 돋보였고, 존재감이 컸다.
한국시리즈와 같은 단기전에선 역시 결정적인 홈런이 MVP 투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 2007년 MVP인 SK 김재현은 3차전과 5차전에서 결승타를 때려내고 4차전과 6차전에서 홈런을 쳤다. 2008년 SK 최정은 3차전 결승 홈런과 5차전 결승타의 주역이 돼 21세 나이로 역대 최연소 한국시리즈 MVP에 올랐다. 2009년 MVP는 당연히 KIA 나지완의 차지였다. 역대 유일무이한 한국시리즈 7차전 끝내기 결승홈런을 터트렸다. 6차전까지 홈런 없이 단 3안타로 부진했던 나지완은 7차전에서 한국시리즈 역사상 가장 극적인 한 방을 날리면서 다른 모든 선수의 활약을 잊게 만들었다. 2012년에는 한국으로 복귀한 36세 베테랑 삼성 이승엽이 1차전 결승홈런을 포함해 7타점으로 맹활약하면서 역대 최고령 한국시리즈 MVP에 등극했다.
지난해 한국시리즈 MVP인 두산 양의지는 4경기에서 타율 0.438(16타수 7안타)를 기록했다. 4차전 홈런을 포함해 총 4타점을 올렸다. 그러나 양의지가 진짜 MVP로 인정받은 부분은 타격이 아닌 포수 리드였다. 양의지는 1차전 더스틴 니퍼트, 2차전 장원준, 3차전 마이클 보우덴, 4차전 유희관까지 두산 선발진의 ‘판타스틱 4’와 완벽한 호흡을 맞췄다. 두산 마운드는 양의지가 안방을 지킨 한국시리즈 4경기에서 단 2점만 내줬다. 양의지의 능수능란한 리드에 NC 타선이 완벽하게 속아 넘어갔다. 1991년 해태 장채근에 이어 역대 두 번째 포수 한국시리즈 MVP로 뽑혔던 비결이다.
배영은 일간스포츠 기자
양현종 MVP 선정 비하인드…“팀 위기가 곧 나의 기회” 2017 한국시리즈 MVP는 KIA 양현종이다. 2차전 1-0 완봉승으로 시리즈의 흐름을 KIA 쪽으로 돌려놓은 데 이어 5차전 9회말 팀의 마지막 승리를 지켜 내면서 우승까지 직접 확정했다. 1승 무패 1세이브. 평균자책점은 0.00이다. 동시에 양현종은 기자단 투표에서 총 유효표 74표 가운데 48표를 얻어 팀 동료인 로저 버나디나(24표)와 이범호(2표)를 제쳤다. 정규시즌 MVP 등극도 유력한 상황이라 사상 최초의 ‘통합 MVP’가 가시권에 들어왔다. 한국시리즈 MVP를 차지한 KIA 양현종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날도 그랬다. 7회초까지 KIA가 두산에 이미 7-0으로 앞서 있던 터라 기자단도 이전과 비슷한 시간에 투표를 시작했다. 완봉승을 거둔 양현종의 공을 인정하면서도 5경기에 모두 나서 5할이 넘는 타율을 기록하고 결승타까지 두 차례 때려낸 버나디나의 활약에 더 큰 점수를 주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상황이 급변했다. 두산이 7회말 무려 6점을 뽑아 KIA를 7-6까지 추격했다. 순식간에 승부를 알 수 없는 상황이 돼버렸다. 게다가 8회부터 KIA 불펜에 양현종이 등장했다. 양현종이 9회 마운드에 오를 수 있다는 신호였다. 동시에 기자단의 투표도 일거에 중단됐다. 두산이 승리한다면 한국시리즈 MVP 투표를 할 필요가 없고, 양현종이 등판한다면 MVP의 주인공이 바뀔 수 있다는 의미에서였다. 결국 양현종이 9회 마운드에 올랐다. 1점 차 살얼음판 리드 속에 수비 실책으로 1사 만루 위기까지 몰렸다. 그러나 양현종은 끝내 두산 3루 주자의 득점을 허락하지 않았다. 무사히 7-6 스코어를 지키고 엄청난 세이브를 따냈다. MVP는 그 순간 버나디나에서 양현종으로 바뀌었다. 결국은 ‘임팩트’ 싸움인 한국시리즈 MVP 경쟁에서 양현종을 이길 선수는 없었다. 양현종은 그렇게 또 하나의 역사를 썼고, 공·수·주에서 펄펄 날았던 버나디나는 팀 우승으로 만족해야 했다. [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