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삼성전자 사장단 인사에서 권오현 부회장(오른쪽) 회장으로, 윤부근 사장(왼쪽)이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 2008년 비상체제와 닮은꼴
2008년 삼성 비자금 사태가 발생했을 때는 등기임원이던 이건희 회장, 이학수 부회장, 윤종용 부회장 등이 대거 퇴진했고, 구조조정본부가 해체됐다. 삼성전자 전문경영인이던 이윤우 부회장과 최도석 사장은 남았다. 이수빈 삼성생명 회장이 등판해 2012년까지 그룹 회장 역할을 대신했다. 이건희 회장은 이사회와 경영에는 참여하지 않았지만, 대외적으로 대표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현재도 이수빈 회장이 비등기임원이지만 대외적으로 삼성생명을 대표한다.
미래전략실은 이미 해체됐다. 전문경영인 중심의 사장단 인사도 단행했다. 이사회 의장에 내정된 이상훈 사장은 전문경영인의 대표 격이다. 최고재무책임자(CFO)인 이 사장은 지난해 가을 이재용 부회장이 등기임원에 오르면서 사내이사 자리를 양보했다. CFO는 삼성전자는 물론 그룹 전반을 가장 잘 파악할 수 있는 자리다. 이 사장은 미래전략실 전략1팀장도 역임해 그룹 업무에도 밝다.
대외역할을 수행할 간판의 윤곽도 드러났다. 권오현 부회장이 종합기술원 회장으로 윤부근·신종균 사장이 각각 고객관계관리(CR)와 인재개발 담당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직급으로 보면 권 부회장이 현역으로 활동하는 삼성전자의 최고위 임원이 된다. 재계 한 관계자는 “2008년 이 회장은 이학수 체제의 권력구조 개편으로 흔들릴 수 있었던 총수의 위상을 지켜냈다”며 “이번에도 비슷한 과정이 전개될 가능성이 엿보인다”고 풀이했다.
# 이재용, 등기임원 퇴진하나
삼성전자의 사내이사는 4명이다. 반도체, 무선사업, 가전 부문 수장과 이재용 부회장이다. 새롭게 부문장에 오른 이들이 모두 등기임원에 선임된다면 이 부회장이 물러나야 이상훈 사장이 이사회 의장이 될 수 있다. 이 부회장의 등기임원 퇴진 가능성이 점쳐지는 이유다. 단, 상법상에는 금융회사가 아닌 일반 기업 등기임원의 자격을 수감 중이란 이유로 제한하는 조항은 없다.
물론 사내이사 4명, 사외이사 5명으로 구성된 이사회 규모와 구성 자체가 달라질 가능성도 열려 있다. 사외이사를 늘리면 사내이사 수도 늘어난다. 이 부회장이 퇴진하지 않고도 이 사장이 의장에 오를 수 있다. 하지만 이 경우 여론의 비난이 상당할 수 있다. 게다가 이 부회장이 삼성전자 등기임원 자리를 내놓더라도 당장 그룹 지배력에는 영향이 없다.
# 공고해지는 지배력
삼성전자가 내년부터 올해의 2배인 연평균 9조 6000억 원 배당을 하면 외국인 주주들의 견제를 최소화할 수 있다. 또 삼성전자의 주주사들에도 혜택이 상당하다. 삼성전자 주주구성을 보면 삼성생명이 7.17%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삼성물산과 삼성화재가 각각 4.03%, 1.25%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약속한 2018년부터 3년간 연평균 현금배당을 지분대로 계산하면 각각 6883억 원, 3869억 원, 1200억 원씩이다.
배당뿐 아니다. 삼성전자는 잉여현금흐름(FCF)의 50% 배당 후 잔여재원을 배당 또는 자사주매입·소각에 투입할 방침이라고 했다. 발행주식이 줄면 이들 3사는 배당 수익이 늘어나는 것은 물론 지분율도 높아진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전자 효과로 삼성생명과 삼성물산 주가가 오르면 각사 최대주주인 이건희 회장과 이재용 부회장 지분가치가 높아진다”며 “공교롭게도 최근 삼성그룹주 가운데 가장 주가가 많이 오른 곳들을 보면 모두 총수 일가가 지분을 가진 곳”이라고 설명했다.
10월 한 달간 주가상승률을 보면 삼성SDS 22.85%, 삼성생명 19.47%, 삼성물산 9.63% 순이다. 같은 기간 삼성전자 상승폭 7.41%를 넘어선다. 특히 이 부회장이 직접 지분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이 부회장 경영 성과의 핵심이자 지배구조의 주요한 변수가 될 삼성바이오로직스는 9월 19.26% 급등한 데 이어 10월에도 13.78%나 치솟았다.
삼성전자 사장단 인사 이후 삼성그룹 지배구조와 이재용 부회장의 거취에 관심이 쏠린다. 고성준 기자
# 앞으로 지배구조는?
이 부회장이 ‘의결권’으로 지배하는 회사 중심 체제가 예상된다. 제조부문은 삼성물산이 삼성전자를 지배하는 형태가, 금융부문은 삼성생명 중심의 보험지주회사가 유력하다. 그 전에 ‘금산분리’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삼성생명과 삼성화재가 가진 삼성전자 지분을 정리해야 한다. 현재 두 보험회사가 가진 삼성전자 지분가치는 31조 원에 달한다.
삼성물산이 삼성바이오로직스 지분 43%를 삼성전자에 넘기면 현재가치로 11조 원을 손에 쥘 수 있다. 주식맞교환을 할 수 있는 삼성생명 지분가치도 현재 5조 5000억 원이다. 이건희 회장이 삼성생명 지분 20%를 보유한 최대주주이니만큼 삼성물산이 빠져도 경영권 유지에는 문제가 없다.
삼성물산과 이재용·이부진·이서현 남매 등의 삼성SDS 지분 가치도 5조 5000억 원에 달한다. 22조 원 상당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주가가 더 오르면 가장 쉽다. 삼성물산이 보유 자산이나 사업부를 매각해 유동성을 확보하는 방안도 있다.
이 부회장 입장에서는 상속세 부담에도 불구하고 이 회장의 삼성생명 지분을 물려받는 게 비용 측면에서 가장 유리하다. 진행 중인 재판에서 자칫 금융회사 대주주 지위에 문제가 생길 경우에도 대비할 수 있다. 이 회장의 지분만 남으면 이 부회장이 삼성생명 지배주주 위치에 오를 이유가 사라진다. 이 회장의 지분을 통해 법적 제약 없이 삼성생명을 실질적으로 지배할 수 있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