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재태 경우회장. 사진제공=재향경우회
<일요신문>은 지난 4월 22일자 ‘[단독] 현대제철 감사 문건 입수… 보수단체 우회 지원 의혹’ 기사를 통해 경우회와 보수단체, 대기업의 ‘삼각 거래’ 의혹을 가장 먼저 제기한 바 있다. 검찰 수사 결과 경우회의 보수단체 지원은 사실로 드러났고, 이 과정에서 이헌수 전 국정원 기획조정실장이 현대차그룹 수뇌부에 경우회를 지원할 것을 요구했다는 정황이 새로 드러나기도 했다.
경우회는 보수단체 지원 명목으로 대기업에서 일감을 받고, 이를 재위탁하는 방법으로 이명박·박근혜 정부 당시 수백억 원의 수익을 올렸다. 이 과정에서 대기업이 일감을 끊거나 지원을 거부하면 항의 시위를 벌이고, 청와대 등을 움직여 해당 기업에 압박을 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관계자는 “당시 분위기상 청와대 뜻이라는데 거부할 기업이 어디 있었겠느냐”며 “검찰 수사나 국세청 세무조사를 받지 않으려면 (권력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경우회에 철스크랩(고철) 재처리 일감을 몰아주던 대우조선해양은 2012년 경우회와 거래를 중단하려 했지만 보수단체가 고재호 당시 대우조선해양 사장, 강만수 당시 산업은행장 자택 앞에서 시위를 벌이자 납품 계약을 연장했다. 이후 2014년 국회 국정감사에서 경우회에 대한 특혜 의혹이 불거지자 대우조선해양은 계약을 해지했는데 공교롭게도 고재호 전 사장과 강만수 전 행장은 2016년 나란히 검찰 수사를 받고 구속기소됐다.
경우회는 또 2016년 7월 현대제철이 고철 납품 계약을 해지하자 고엽제전우회 등 보수단체를 동원해 정몽구 현대차 회장 자택 앞에서 시위를 주도하는 한편 현대차 수뇌부와 물밑 협상을 시도했다. 당시 경우회는 자회사인 경우AMC가 ‘수도권 도시환경 정비사업’ 임대사업자가 될 수 있도록 현대차의 협조를 요구했다. 경우AMC는 구재태 전 경우회장이 대주주로 있는 부동산 자산관리회사다.
현대차 계열사인 현대건설은 당시 도시개발 정비 사업권을 놓고 경우AMC와 경합을 벌였다. 결과적으로 임대사업권은 경우AMC가 가져갔다. 해당 사업을 추진해 온 재개발조합 관계자는 “경우AMC가 적법한 절차를 거쳐 임대사업자로 선정됐으며, 현대건설은 당시 자금을 조달하지 못해 스스로 사업을 포기한 것”이라며 “현재 정부 조사가 진행 중이고, 아무 이상 없는 사업이다. 지난 일을 이제 와서 따지는 이유가 뭐냐”고 말했다. 현대건설은 답변을 하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2차 청문회가 열린 지난해 3월 고엽제전우회 회원들이 한국언론진흥재단 앞에서 특조위 청문회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최준필 기자
경찰 전·현직 관계자에 따르면 경우AMC는 경안흥업과 함께 경우회의 핵심 자금줄로 지목된다. 2009년 설립된 경우AMC는 자본금 71억 원으로 경우회와 KB국민은행, 롯데건설, 두산건설 등이 지분 투자를 한 것으로 확인된다. 이 가운데 KB국민은행은 지난해 경우AMC 지분을 모두 팔았다. 금융권 관계자는 “당시 리츠(부동산 자산운용) 사업에 대한 시장 수요가 있었고, 유명 시중은행과 대기업 건설사가 투자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러나 검찰은 경우AMC에 대한 민간기업의 지원이 정치권의 압력으로 벌어졌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사업 실적이 거의 없던 경우AMC가 충청권을 중심으로 뉴스테이 임대사업자로 선정된 배경에 구재태 전 회장의 역할이 있었는지가 관건이 될 것으로 알려졌다.
구 전 회장은 박근혜 정부 들어 경찰과 관련된 각종 이권 사업에 개입하고, 경찰 인사에도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구 전 회장과 가까운 사이로 알려진 구은수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은 청탁 수사 등 혐의로 구속된 상태다. 또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도 재직 시절 수사기관에 하명 수사를 내렸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경우회는 우 전 수석 일가와 삼남개발을 공동 소유하고, 기흥골프장을 운영하고 있다.
우 전 수석은 2015년 2월 청와대 민정수석 영전 후 포스코 수사를 막후 지휘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검찰 고위 간부는 일선 수사팀에 “포스코 관련 첩보를 생산하라”는 하명을 내렸다. 2015년 3월 검찰은 포스코건설에 대한 압수수색을 단행했는데 이 과정에서 경우회와 보수단체는 포스코 본사 앞에서 수사를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경우회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경우회가 포스코 쪽에도 지원을 요구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고 말했다. 재계 한 인사는 “(보수단체가) 포스코에 지원을 요구하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나 경우회에 대한 포스코의 지원은 확인되지 않았다. 재계 일각에선 포스코가 당시 청와대의 스포츠팀 창단 요구를 거부했듯 경우회 지원에도 소극적이어서 눈 밖에 난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포스코 관계자는 “확인되는 내용이 없다”고 말했다. 포스코 수사의 핵심 피의자인 정준양 전 포스코 회장은 1, 2심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았다.
경우회의 또 다른 자회사이자 상조업체인 경우라이프는 현재 부채가 자산보다 55억 원이 많은 자본잠식 상태다. 경우라이프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경우라이프는 2015~2016년 광고선전비, 기부금 명목으로 경우회에 1억 4970만 원을 지급했다. 경우회는 경우라이프에서 받은 돈 일부를 보수단체 지원에 썼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현행법상 경우회는 정치활동이 금지돼 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