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이케 에이코 | ||
그라비어 아이돌은 1970년대 중반에 처음으로 등장했다. 처음에는 가수나 배우 등 여성 연예인들이 대중의 관심을 끌기 위해 수영복 차림의 화보를 선보이는 정도에 지나지 않았지만 점차 전문 그라비어 아이돌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재미있는 것은 일본에만 존재하는 특이한 연예 문화임에도 불구하고 최초의 그라비어 아이돌이 일본인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최초의 그라비어 아이돌은 아그네스 럼이라는 19세의 하와이 출신의 중국계 소녀였다. 앳된 얼굴에 풍만한 가슴, 구릿빛 몸매라는 ‘이상적인’ 조합으로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이 그라비어 붐의 시작이었다.
수영복 화보 모델은 섹시하고 육감적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청순하면서도 발랄한 미소녀들을 등장시킨 것이 히트의 비결이었다. 그 후로 건강하고 발랄한 이미지를 무기로 하는 그라비어 아이돌이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1980년대에 들어서자 그라비어 붐이 본격적으로 확산됐다. 그라비어 전문 잡지가 속속 등장했고 그라비어 아이돌도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지금은 유명 연예인이 된 마쓰다 세이코와 고이즈미 교코 등도 이때 그라비어 아이돌로 데뷔하여 연예인이 된 경우다. 이후로 그라비어 아이돌은 연예인 지망생들이 데뷔를 위해 거쳐야 할 하나의 통과의례로 자리 잡았다.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은 그야말로 그라비어 아이돌의 전성기였다. 30~40대 남성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보았을 미야자와 리에의 사진집 <산타페>가 출시된 것도 이때의 일이다. 당시 그녀는 아역 배우로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진 상태였다. 그때만 해도 그라비어 아이돌은 언론과 대중의 관심을 끌어 연예계에 데뷔하는 수단으로 생각되던 시절이라 이미 유명한 미야자와 리에가 ‘뭐가 아쉬워서’ 누드 화보를 찍는지 의아해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러나 <산타페>가 150만 부라는 경이적인 매출을 올리자 우려와 비난의 목소리는 자취를 감췄다.
▲ 고이즈미 교코(왼쪽 위),미야자와 리에,사에코(왼쪽 아래),리아 디종 | ||
이 시기에 등장한 그라비어 아이돌 출신의 유명 연예인들로는 공포 영화 <윤회>로 우리나라에서 이름을 알리게 된 여배우 유카와 1990년대 가수로 크게 활약한 가하라 도모미, 지금은 가수이자 연기파 배우로 더 유명한 히로스에 료코 등이 있다.
유카는 사슴 같은 눈망울의 순진한 얼굴과 87-59-85의 글래머러스한 몸매로 데뷔하자마자 큰 인기를 끌었다. 이 시기부터 가슴이 큰 그라비어 아이돌을 지칭하는 ‘거유(巨乳) 아이돌’이라는 신조어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옐로캡’이라는 ‘거유’ 전문 연예기획사까지 있을 정도니 왕가슴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옐로캡’이 배출한 ‘거유 아이돌’로는 F컵의 고이케 에이코와 173㎝의 큰 키에 F컵인 사토 에리코, H컵의 메구미 등이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F~H컵 정도는 보통이고 J~L컵의 큰 가슴을 자랑하는 ‘거유 아이돌’도 등장하고 있다. 현재 최고의 ‘거유 아이돌’은 P컵(가슴둘레 120㎝)을 자랑하는 후코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섹시함과 청순함은 물론 색다른 개성까지 겸비한 그라비어 아이돌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이노우에 와카는 육감적인 몸매에 귀여운 얼굴, 장난꾸러기 같은 눈망울과 도톰한 입술로 단숨에 인기 그라비어 아이돌의 자리에 올랐다. 일본 프로야구 선수인 다르빗슈 유의 아내인 사에코도 이 시기에 데뷔했다.
2005년에는 호시노 아키가 ‘최고령 그라비어 아이돌’로 유명해졌다. 일반적으로 20대 중반에 접어들면 은퇴해야 했던 그라비어 아이돌 업계의 불문율을 깨고 오히려 28세라는 고령(?)을 당당하게 내세운 역발상 마케팅이 성공한 것이었다.
최근에는 ‘외부인’들의 그라비어 업계 진출이 눈에 띈다. 비치발리볼 선수인 아사오 미와가 연예인 뺨치는 얼굴과 몸매로 그라비어 사진집을 내는가 하면, 인터넷 아이돌로 먼저 이름이 알려진 후 팬들의 요청으로 일본 연예계에 데뷔하게 된 미국 출신의 리아 디종이 대표적인 경우다.
지난 30년 동안 시대와 함께 그라비어 아이돌 업계도 많은 변화를 겪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변하지 않고 전해 내려온 기본 콘셉트가 있다. ‘섹시’와 ‘청순’이라는 상반된 매력의 미묘한 조화는 시대를 불문하고 남성들의 성적 판타지를 자극하는 중요한 요소라는 점이다. 그라비어 아이돌과 하녀복장으로 서비스하는 이른바 ‘메이드 비즈니스’의 성공이 이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다.
박영경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