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탕쿠르 로레알 회장 | ||
화장품과 헤어제품 등을 생산하는 세계 굴지의 기업 로레알의 최대 주주인 베탕쿠르는 자신과 고인이 된 남편의 오랜 친구인 사진작가이자 소설가 겸 화가인 프랑수아 베니에(61)를 수십 년간 후원해왔다. 예술 애호가로 알려진 베탕쿠르가 이 다재다능한 예술가에게 건넨 후원금은 수표, 부동산, 생명보험(거액을 증여할 때 통상적으로 쓰이는 수단)에다 피카소, 마티스 등 거장들의 그림을 합해 무려 약 2조 원이나 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지난달 14일 베탕쿠르의 외동딸이며 상속녀인 프랑수아즈(55)가 베니에를 ‘약취’ 혐의로 고발하면서 언론에 공개되었다. 그녀는 이 거액의 후원이 고령의 어머니가 사진작가의 꼬임에 넘어가 ‘온전치 못한 정신으로’ 저지른 것이라며 가족의 재산을 탕진하고 있는 어머니에 대해서도 정신감정을 의뢰했다.
언론들이 다투어 이 사건을 보도하는 가운데 일부 언론은 거액의 후원에 뭔가 이유가 있지 않은지 의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일부에서는 베탕쿠르가 베니에를 양자로 삼을 계획이라며 ‘입양설’을 제기하기도 했다.
베탕쿠르는 이 상황에 대해 한마디로 ‘어이없다’는 반응이다. 미국의 경제지 <포브스>에 따르면 로레알의 창립자인 유진 슈엘러의 외동딸로 현재 로레알의 지분 27.5%를 가지고 있는 베탕쿠르의 자산 가치는 약 230억 달러(약 31조 1000억 원)에 달한다. 베탕쿠르는 자신이 베니에에게 준 후원금은 큰 액수이기는 하지만 딸이 물려받게 될 재산에 비하면 별 것 아니라는 설명이다.
사실 베탕쿠르에게 거액의 기부는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녀는 ‘베탕쿠르 슈엘러 재단’을 세워 매년 젊은 생명과학자들에게 거액을 지원하고 있으며 최근에도 프랑스의 마르모탕 미술관의 모네동 건립에 거금을 기부하는 등 예술 후원에도 열정적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엄청난 갑부고 사회에 대한 책임과 예술을 사랑하는 마음이 크다해도 어떻게 한 개인에게 그렇게 엄청난 돈을 선뜻 내줄 수 있었을까.
밝혀진 바에 따르면 베탕쿠르와 베니에의 관계는 2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두 사람이 어떻게 처음 만났는지는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았으나 분야를 넘나들며 명사들의 사진을 찍어온 베니에가 베탕쿠르 부부의 사진을 찍어준 것을 계기로 절친한 친구 사이가 됐다. 베탕쿠르는 20년지기 베니에에 대해 “영감을 제공하는 예술가로 내가 관습적인 주위환경에 갇히지 않도록 해주었다. 남편이 사망했을 당시 큰 의지가 되기도 했다”며 남다른 애정을 표현한 바 있다.
베탕쿠르의 단언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후원이 의혹의 눈초리를 받고 있는 것은 바로 후원이 이뤄진 시점 때문이다.
베탕쿠르는 수십 년간 여러 차례에 걸쳐 베니에에게 후원금을 전달했다. 그런데 총액의 절반이 넘는 6억 유로(약 1조 1300억 원)가 2003년과 2006년 그녀가 병원에 입원했다가 돌아온 직후에 건네졌다. 이에 대해 프랑수아즈는 당시 어머니가 가족조차 알아보지 못하는 상태였다며 바로 이 점에서 후원의 순수성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프랑스가 로레알가(家) 안방의 내분으로 시끄러운 가운데 정작 문제의 당사자이자 엄청난 행운의 주인공인 베니에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유명인사 전문 사진작가로 알려진 그는 어떤 인물일까. 예술을 빙자한 사기꾼일까. 아니면 세간의 의혹이 억울한 진정한 예술가일까.
▲ 사진작가 베니에 | ||
최근 검찰의 1차 조사 결과가 발표된 후 한동안 함구했던 베탕쿠르가 입을 열었다. 실제 후원금은 언론에 공개된 것보다 다소 적은 9억 9300만 유로(약 1조 8800억 원)인 것으로 드러났다. 베탕쿠르도 딸의 요청에 따라 정신감정을 받았으며 자신이 매우 온전한 상태라고 밝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모녀 사이 감정의 골은 깊어지고 있는 듯하다. 베탕쿠르는 프랑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딸이 질투에 눈이 멀어 나를 정신이 온전치 못한 인물로 몰았다. 공개적으로 나의 명예와 기업 이미지에 먹칠한 딸과 의절하겠다”라고 선언했다. 유산을 안 줄 수도 있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베니에와의 관계에 관해서는 두 사람 사이의 순수한 우정을 강조하고 있다. ‘입양설’에 대해서도 “60세가 넘은 양자를 들일 의사가 전혀 없다”고 일축했다. 항간에 떠도는 자신이 사르코지 대통령에게 이번 사건에 대한 공식수사를 막아달라고 부탁했다는 소문에 대해서도 “그(사르코지 대통령)는 그렇게 한가하지 않다”며 사실무근이라고 못박았다.
검찰이 본격적으로 수사에 착수할지 여부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언제 어떤 식으로 사건의 전모가 드러날지는 모르지만 그녀는 평소 돈에 대해 이렇게 소신을 밝혔다고 한다.
“돈이란 하나의 기회다. 주위에 써야 할 일들이 생기면 써야 한다. 대단한 동기나 계산, 보답에 대한 기대 없이도 자신이 받은 것의 일부를 자유롭게 사회에 돌려줘야 하는 것이다.”
<포브스>는 이번 사건이 화장품 회사 로레알의 이미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기는 하겠지만 현재 전문경영자인 대표와 이사장이 회사를 책임지고 있어 경영상의 문제로 비화되지는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예준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