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웨덴 거리에 놓인 무가지 배포대. | ||
이렇게 몇 년 사이 직장인들의 출근길 풍경을 확 바꾸어 놓은 정체는 다름 아닌 ‘무가지’다. 우리나라의 무가지 시장은 지난 2002년 <메트로> 발행을 시작으로 급성장했으며, 현재는 신문이나 잡지 등 다양한 형태의 무가지들이 발행되고 있다.
하지만 발행부수가 늘어나는 만큼 그에 따른 사회적 문제와 병폐도 속출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가령 읽고 버린 신문지 처리 문제 등이 그러하다. 그렇다면 ‘무가지의 본고장’이라고 할 수 있는 유럽은 어떨까. 지난 10여 년간 폭발적으로 성장한 유럽의 무가지 시장의 현황과 함께 문제점과 해결 방안 등을 살펴 보았다.
유럽에서 무료신문이 처음 발행된 것은 1995년 스웨덴에서였다. 스톡홀름에서 <메트로>가 첫 선을 보인 후 유럽의 무료신문 시장은 꾸준히 성장해왔다. 덴마크, 스페인, 포르투갈, 아일랜드 등의 경우 무료신문의 점유율이 50%를 넘고 있으며, 스위스, 프랑스, 네덜란드, 이탈리아, 스웨덴 등은 25~50%, 영국, 체코, 벨기에 등은 10~25%, 그리고 독일, 노르웨이, 폴란드 등은 10% 미만을 차지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약 19% 정도며, 미국과 러시아는 10% 미만, 일본과 중국은 이보다 더 적은 1% 미만이다.
현재 유럽에서 인구 한 명당 가장 많은 무료신문이 발행되고 있는 나라는 스위스다. 가히 ‘무가지의 천국’이라 불러도 무방할 정도로 매일 수백만 부의 무료신문이 거리로 쏟아지고 있다. 현재 460만 명의 독일어권 스위스인들이 읽는 무료신문은 매일 160만 부에 달하고 있으며, 불어권 독자까지 합치면 200만 부를 훌쩍 넘는다. 다른 나라에서와 마찬가지로 주로 대중교통 정류장에서 배포되는 무료신문을 손에 들고 출근길에 오르는 스위스인들의 모습은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스위스 신문업계의 대대적인 변화는 지난 9년 사이에 모두 일어났다. 2003년까지만 하더라도 스위스의 대중일간지 시장의 모습은 지금과는 전혀 달랐다. 당시 가장 인기 있는 신문이자 대중지의 제왕은 단연 <블릭>이었다. 하지만 근 몇 년 사이 한 부에 1프랑 80센트(약 2000원) 하는 유료신문인 <블릭>은 <20분>이라는 무료신문에게 ‘넘버원’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1999년 창간된 <20분>은 현재 <블릭>보다 두 배가량 더 많은 55만 부를 발행하면서 발행부수 1위를 달리고 있다. 스위스 전역 150개의 전차 정류장에서 배포되고 있으며, 매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만 발행하던 것을 지난해 10월부터는 <20분 프라이데이>라는 주말판까지 발행하기 시작했다.
2년 전부터 본격적인 무료신문 전쟁이 시작된 영국의 경우에는 어떨까. 5년 전만 하더라도 런던 시내에서는 무료신문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오늘날 런던의 지하철 환승역이나 유동인구가 많은 공공장소에서는 예전과 달라진 광경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오고 가는 수많은 인파 속에서 무료로 신문을 나눠주는 사람들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들의 정체는 바로 영국의 대표적인 두 석간 무료신문인 <더런던페이퍼>와 <런던라이트>의 아르바이트 직원들이다. 이들이 주로 신문을 배포하는 시간은 오후 4시에서 저녁 7시 사이다.
현재 영국 최대의 무료신문은 하루 발행부수 50만 부를 자랑하는 <더런던페이퍼>다. <더런던페이퍼>는 ‘미디어 황제’ 루퍼트 머독의 ‘뉴스 인터내셔널’이 발행하는 무료신문으로 2006년 창간된 지 2년 만에 업계 1위로 올라섰다. 경쟁업체는 약 40만 부를 발행하는 <런던라이트>다. 이 신문은 영국의 인기 유료신문인 <이브닝스탠더드>를 발행하는 ‘어소시에이티드 뉴스페이퍼’사가 발행하고 있다.
독일의 경우에는 무료신문 시장이 전혀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 다른 유럽 국가와 달리 무료신문이 전혀 재미를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다 할 대표적인 무료신문도 없을뿐더러 사회 전반적으로 무료신문 발행을 거부하는 분위기다. 여기에는 신문 발행인들이 합심해서 무료신문을 발행하지 않기로 합의를 본 탓이기도 하지만 ‘신문광고 시장을 교란시킨다’ ‘신문을 무료로 배포하는 것은 저널리즘의 질을 낮추는 것이다’는 등 자성의 목소리가 높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지금까지 무료신문이 전혀 발행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지난 1999년 쾰른에서 처음으로 일명 ‘신문 전쟁’이 벌어진 적이 있었다. 노르웨이의 대형 미디어업체인 ‘쉬브스테드’가 쾰른에서 <20분 쾰른>이라는 무료신문을 창간했던 것이다. 이에 쾰른의 지역 타블로이드 신문사인 ‘듀몽 샤우베르크’가 무료신문인 <쾰르너 모르겐>을 발행하면서 맞불작전을 폈고, 독일 최대의 대중지인 <빌트>를 발행하는 ‘악셀 슈프링어’가 잇따라 <쾰른 엑스트라>를 발행하기 시작했다.
독일 토종의 신문들을 당해낼 수 없었던 <20분 쾰른>은 내내 적자를 면치 못하다가 19개월 만에 결국 발행을 중단하고 철수했으며, 이어 곧 <쾰르너 모르겐>과 <쾰른 엑스트라>도 차례로 스스로 발행을 중단했다.
이에 대해 ‘WAZ 미디어 그룹’의 보도 홈바흐 회장은 “독일에서 무료신문이 정착하려면 6년은 버텨야 할 것이다. 그때까지 소요되는 비용은 아마 4억 유로(약 7000억 원) 정도일 것이다. 이 정도의 비용을 감수한다는 건 그야말로 모험이다”라고 말했다.
현재 약 40여 개의 무료신문이 발행되고 있는 미국의 경우에도 무료신문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긴 마찬가지다. 2000년 필라델피아판을 시작으로 2001년에는 보스턴판, 2004년에는 뉴욕판을 차례로 발행하기 시작한 <메트로>는 아직까지도 흑자로 돌아서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2007년 3분기에만 440만 달러(약 57억 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메트로>가 유럽과 달리 미국에서는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미국의 지역 유료신문들이 저력을 발휘하면서 방어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메트로>가 미국 독자들의 요구를 정확히 간파하지 못했기 때문인 것이다. 가령 미국인들은 국제뉴스나 미국 전역의 뉴스보다 자신들이 살고 있는 지역의 뉴스에 더 관심이 많다. 보스턴의 인기 지역신문인 <보스턴글로브>의 경우 하루 발행부수가 38만 부인데 비해 <메트로>는 16만 부에 그치고 있다. 결국 <메트로>는 기존의 유료신문 독자들을 끌어 모으지 못했고, 이에 따라 자연히 광고주들을 유인하지 못해 이렇다 할 광고수익을 올리지 못했다.
이밖에 <메트로>가 유럽과 다른 미국의 교통환경을 간과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유럽인들에 비해 대중교통 이용 비율이 낮은 미국인들은 주로 집으로 배달되는 무료신문에 더 익숙해져 있었다. 가령 미국 최대 무료신문인 <이그재미너>는 비싼 비용을 감수하고라도 신문을 배달하는 방식을 택해 독자 수를 확보할 수 있었다.
아직까지 전세계적으로 무료신문 시장이 활황이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미 사양길에 접어들었다는 의견도 많다. 암스테르담 대학의 언론학 교수인 피에트 바커는 “전세계적으로 발행되던 320여 개의 무료신문들 중 4분의 1가량이 이미 폐간되었다. 현재 발행되고 있는 240여 개의 신문들 중 70%도 적자 상태”라고 지적했다.
스위스의 경우 전체적으로 무료신문 발행부수가 5만 부가량 줄어든 것으로 조사되고 있으며, 이미 무료신문 시장이 포화될 대로 포화된 스웨덴의 경우 <메트로>마저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가판업자들의 생계권을 위협한다는 비난과 신문광고 시장을 교란시킨다는 비난도 제기되고 있으며, 기사의 80%가량이 통신사의 것을 그대로 받아 쓴 것이기 때문에 신문의 질이 떨어진다는 비난도 있다.
즉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려줄 뿐 ‘왜’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알려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무료신문의 발행을 두둔하는 사람들은 “바쁜 생활 속에 신속하게 뉴스를 읽을 수 있어 좋다” “꼭 길어야 좋은 기사는 아니다”라며 무료신문의 편리함과 간편성을 장점으로 꼽고 있다.
간략하고 신속한 보도와 공짜 정보에 익숙한 인터넷 세대인 젊은층들 사이에서 특히 인기를 얻고 있는 무료신문이 과연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