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정당 김무성 의원 등 통합파 의원들이 11월 6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탈당선언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홍철호 김용태 강길부 이종구 김영우 황영철 김무성 정양석 의원. 박은숙 기자
동남풍은 지방선거를 비롯한 전국 단위 선거의 핵심 변수다. 부산·울산·경남(PK)과 대구·경북(TK) 등 경부선 판세는 선거 승리를 위한 요충지다. 최근 두 차례 대선에서도 그 중요성은 증명됐다. 2012년(제18대) 대선 때 맞붙었던 문재인 대통령(민주통합당 대선후보)과 박근혜 전 대통령(새누리당 대선후보)의 마지막 유세 지역은 ‘경부선’이었다. 박 전 대통령은 그해 12월 18일 경남 창원과 부산 동구에서 대규모 합동 유세를 한 뒤 대전과 서울에서 유세를 마무리했다. 문 대통령은 같은 날 서울 등 수도권을 시작을, 대전을 거친 뒤 부산역 광장에서 집중 유세를 펼쳤다. 상·하행선만 다를 뿐, 동남풍을 염두에 둔 전략인 셈이다.
지난 5·9 대선에서 1·2위를 차지한 문 대통령과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의 마지막 유세도 ‘경부선’이었다. 문 대통령은 18대 대선과는 역순으로, PK와 TK에서 시작해 충청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마지막 유세를 했고, 홍 대표는 PK를 시작으로, TK와 대전 등을 거쳐 서울광장에서 유세를 마무리했다. 여당 한 보좌관은 “TK 공략은 쉽지 않지만, PK 탈환은 선거 때마다 나오는 승리 방정식”이라고 말했다. PK의 균열 여부에 따라 판이 뒤바뀔 수 있다는 얘기다. 동남풍이 중부권을 거쳐 수도권으로의 북상 여부가 여야의 선거 승리 방정식을 푸는 키인 셈이다.
실제 그랬다. 2012년 4·11 총선 당시 정세균 국회의장이 제안한 남부민주벨트와 문 대통령을 필두로 한 낙동강 벨트도 동남풍 전략과 맞물려있다. 당시 민주통합당(현 민주당)은 낙동강 벨트에 친노(친노무현)계를 전진 배치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의 지역구인 부산 사상 포함, 2곳 승리에만 승리, 낙동강 전선 탈환에 실패했다. 민주통합당은 당시 총선에서 127석에 그치면서 새누리당에 과반(152석) 의석을 넘겼다. 4년 후 민주당은 부산 전체 18개 선거구 중 5곳에서 승리했다. 예상보다 저조한 수치지만, 낙동강 벨트의 ‘틈새 벌리기’ 작전은 어느 정도 성공했다. 민주당은 그해 제1당으로 올라섰고 이듬해 대선까지 탈환했다.
동남풍의 핵심은 PK다. 이곳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 대통령의 고향이다. 친문(친문재인) 차출설의 진원지이기도 하다. ‘PK 다크호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부산시장 불출마 의사를 밝혔다. 이호철 전 청와대 민정수석 등판이 초읽기에 들어간 가운데, 오거돈 전 해양수산부 장관과 최인호 더불어민주당 의원, 정경진 전 부산시 행정부시장 등도 출마 쪽으로 기울었다. 최근에는 물밑에서 이 전 수석 측과 최 의원 측이 부산시장 경선 제1라운드를 펼치고 있다는 얘기까지 돌고 있다. 당 외 실세그룹과 당내 실세그룹 간 맞대결이다. 전재수 민주당 의원 등의 지원을 받을 것으로 알려진 이 전 수석이 오 전 장관과 연대 전선을 형성하는 시나리오도 나온다. 그만큼 부산시장은 ‘경부선 대첩’으로 격상했다. 당내 그룹에선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 차출설을 제기하지만, 초기 내각 공백에 대한 부담으로 출마를 강행할지는 미지수다.
반면, 자유한국당은 ‘인물난’에 시달리고 있다. 현직인 서병수 부산시장의 재선 가능성은 열려있지만, 엘시티 의혹에 휩싸인 데다 홍준표 한국당 대표와의 갈등으로 입지는 좁아진 상태다. 당 내부에선 부산 4선인 조경태·김정훈·유기준 의원과 3선의 이진복·유재중 의원 등도 자의 반 타의 반 거론된다. 하지만 이들은 일부는 차기 원내대표 선거 쪽을 타진하고 있다. 원외에서는 박민식 전 의원이 출마를 준비하고 있지만, 인지도 면에서 비교열세라는 평이 우세하다.
정치권 안팎에선 민주당이 부산에서 ‘사고’를 칠 경우 내년 6·13 지방선거의 최대 사건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 1995년 민선 이후 부산은 보수진영 ‘독무대’였다. 1995년 민선 제1기 문정수(51.40%) 전 시장을 시작으로, 제2·3기 안상영(45.14%·63.76%) 전 시장, 제4·5기 허남식( 65.24%·55.42%) 전 시장, 제6기 서병수(50.65%·이상 득표율) 시장 등 보수당이 부산권력을 장악했다.
변수는 보수진영의 화학적 결합이다. 이 지점은 ‘샤이 보수’(여론조사에서 자신의 성향을 드러내지 않는 보수층)가 전면적으로 등장하는 변곡점이 될 전망이다. 바른정당 탈당파 중에는 부산 구심점인 김무성 의원도 포함됐다. 한국당 부산 당원 등 바닥 민심에선 ‘무대(무성대장 줄임말) 불가론’ 움직임도 엿보이지만, 지방선거 국면으로 접어들면 민주당과의 ‘1대1’ 구도를 만드는 결정적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바른정당 잔류파 중 부산시장 후보군인 김세연 의원도 탈당을 고심하는 이유다. 한국당 한 관계자는 “바른정당 탈당파도 내년 지방선거가 정치적 생명을 연장하느냐의 분기점”이라며 “험지든 뭐든 ‘선당후사’로 임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무대 역할론’을 평가했다.
부산에서 ‘민주당 vs 한국당’ 구도로 접어들 경우 동남풍의 다른 지역인 경남과 울산 등에서도 양자 구도로 재편할 가능성이 크다. 경남에선 문 대통령 입인 김경수 민주당 의원의 등판설이 나온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11월 5일~6일(7일 결과 발표) 이틀간 경상남도에 거주하는 만 19세 이상 성인 남녀 1033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후보 적합도 1위는 김 의원(17.0%)이었다. 안상수 창원시장(10.8%)과 박완수 한국당 의원(8.1%), 이주영 한국당 의원(5.6%) 등이 2∼4위를 차지했다. 보수진영의 단일대오에 따라 판이 달라질 수 있는 셈이다.
원외에선 한때 ‘리틀 MB(이명박 전 대통령)’로 불린 김태호 전 의원도 출마를 고심하고 있다. 울산에서는 한국당 소속 김기현 시장의 재선 도전이 유력하다. 국회 부의장 출신인 정갑윤 한국당 의원도 출마를 권유받고 있다. 민주당에서는 송철호 전 국민고충처리위원장이 하마평에 올랐다.
보수진영이 PK에서 반문(반문재인) 연대에 나서고 TK에서 권영진 현 대구시장과 경북지사 후보군인 이철우·강석호·박명재 한국당 의원 등이 판세를 압도한다면, 수도권에서도 ‘1대1’ 구도가 만들어질 것으로 보인다. 보수 발 분당으로 3당 체제로 재편했지만, 한국당·국민의당·바른정당이 정계개편과 관계없이 ‘3당 연합’ 공천에 나서는 방안도 반문진영 내부에서는 검토되고 있다.
문제는 내부 갈등의 관리다. 내년 지방선거가 5·9대선과 마찬가지로 ‘문 vs 반문’ 구도로 치러진다고 해도 ‘1대1’ 구도 실패 및 화학적 결합에 실패할 경우 보수진영은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선에 이어 세 번 연속 패배할 수도 있다. 홍준표 한국당 대표가 11월 8일 정운천·박인숙 의원이 바른정당 전당대회 중도하차를 번복한 직후 “이제 문을 닫고 내부 화합에 주력하겠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최진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는 “외형적으로 보면 PK 등에서 보수 지지층이 결집해 친문계 견제세력을 확대할 수는 있지만, 보수진영 파워게임도 만만치 않다”며 “보수 재편이 지방선거 판세를 흔들지는 내부 갈등 구조를 얼마나 톤다운하느냐에 달렸다”고 말했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