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8년 4월 호주 빅토리아주에 자리한 인구 7000명의 작은 시골마을 무르프나에서 18세 소녀가 살인혐의로 경찰에 구속됐다. 당시 어머니와 함께 차에 타고 있던 소녀는 묵묵히 경찰을 따라나섰고 이후 4년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꼭꼭 숨겨온 자신만의 비밀을 고백했다.
그녀가 체포되기 전날 34세의 트럭운전사 겸 기계공인 그녀의 의붓아버지가 실종 한 달 만에 자신의 집 마당 텃밭에서 사체로 발견됐다. 거름이 된 그의 몸은 팔다리가 잘려나간 참혹한 상태였다. 또 다른 사체 일부는 집에 딸린 창고 바닥에 묻혀 있었다. 하지만 몇몇 부분은 아직도 발견되지 않은 채였다.
평범해 보이던 이 부녀간에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 경찰에 검거된 소녀는 쓰러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하며 조사실에서 5년간 감춰온 ‘아버지’와 자신의 관계를 털어놓았다.
호주의 일간지 <디 에이지>가 입수한 사건 진술서에 따르면 문제가 처음 시작된 것은 그녀가 14세 되던 해였다. 어머니가 야간근무를 나간 어느 날 의붓아버지가 자고 있는 그녀의 침실에 들어와 그녀의 몸을 더듬기 시작했다. 이듬해부터 아버지의 요구가 더욱 심해졌다. 성행위는 물론이고 바이브레이터 등 각종 기구를 갖춰놓고 그녀에게 변태적인 행위를 시켰고 오럴섹스를 강요했다. 거부하는 그녀에게 아버지는 “죽여버리겠다, 벽에 처박아버리겠다”는 등 온갖 협박을 했다. 심지어 그는 딸이 이러한 사실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지 못하도록 성추행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두었다. 이런 지옥 같은 일이 4년간 매일 때로는 하루 두 차례 이상 그녀의 침실과 창고를 오가며 벌어졌다.
겉으로만 보면 아이들과 텃밭을 가꾸고 주말이면 가족을 데리고 캠핑을 가는 평범한 가장의 모습을 한 아버지는 혈연은 아니지만 엄연히 자신의 딸인 10대의 소녀를 비틀린 성욕을 푸는 노리개로 착취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난해 어느날 어머니가 집을 비운 사이 또다시 오럴섹스를 강요하는 그의 요구를 거부한 소녀에게 아버지는 총을 꺼내 위협하기 시작했다. 총구 앞에서 어쩔 수 없이 아버지의 요구를 들어준 그녀는 그가 잠깐 방심한 사이 그의 옆에 놓인 총을 들고 돌아선 그의 뒷머리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그 순간 소녀의 머리에는 오직 ‘이 자만 없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는 생각뿐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자신이 저지른 일을 깨달은 소녀는 경찰에 신고하는 대신 죽은 아버지를 천으로 덮어둔 채 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이튿날 밤 톱으로 시신을 절단한 후 흰 비닐 봉지에 나눠 담았다. 그리고 또 사흘이 지난 후 그녀는 사체를 일부는 집안에 묻고 일부는 가족이 단란한 주말을 보내곤 하던 캠핑장 화장실과 길에서 떨어진 호젓한 숲 속에 갖다버렸다.
소녀는 진술과정에서 작은 비밀 한 가지를 공개했다. 마치 ‘그의 소유물’이 된 듯 살아온 그녀가 살인사건이 있기 얼마 전 한 소년을 만났고 서로 좋아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 사실을 안 ‘변태 아버지’는 두 사람의 만남을 방해하며 만나지 못하게 했다.
모든 것을 털어놓은 그녀에게 경찰이 마지막으로 물었다. “만약 그를 죽이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 것 같은가요.” 소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마 제가 자살을 했겠죠.”
이후 경찰은 의붓아버지가 찍은 성추행 사진 1만여 점을 확보했다고 밝혔으며 소녀는 이제 곧 법정에 서게 될 예정이라고 한다. 정당방위로 인정될 경우 실형을 면하거나 최저형량을 받을 수도 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총성과 함께 사라지리라 믿었던 소녀의 악몽이 없었던 일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최근 호주의 한 병원에서 실시한 연구결과를 보면 이와 같은 ‘가족 참혹사’는 이미 예정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시드니의 성빈센트 병원 심리학 연구팀이 15년간 미성년자가 저지른 살인사건을 조사한 결과 가해자의 40%가 의붓아버지나 친아버지에 의해 성폭력이나 구타 등 ‘물리적 학대’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폭력의 희생자로 자라며 분노를 키운 아이가 자라서는 결국 가족을 향해 복수를 한다는 얘기다.
이와 함께 연구팀은 아동이나 청소년을 학대한 부모들 중 75%가 정신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존속살해 등 각종 가정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정신질환이 있는 부모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하고 가족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력을 예방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라고 덧붙였다.
이예준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