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바마 대통령과 아내 미셸. | ||
잘 알려져 있다시피 오바마 부부가 처음 만난 것은 1989년 시카고의 한 로펌에서였다. 당시 하버드 로스쿨에 재학 중이던 오바마는 여름방학을 이용해 잠시 인턴실습을 하고 있었으며, 미셸은 로펌에서 근무하고 있던 변호사였다.
단순히 동료애로 시작됐던 둘의 관계는 점차 끈끈한 우정으로 발전했으며, 그리고 마침내 애정을 느끼게 된 둘은 1992년 결혼에 골인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순조로워 보였다. 1997년 일리노이주 상원의원에 당선된 오바마는 본격적인 정치인으로서의 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98년 첫딸 말리아가 태어났고, 3년 뒤에는 둘째 딸 사샤가 태어났다.
영원히 행복할 것 같았던 부부 생활에 위기가 닥친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오바마가 정계에 발을 들여 놓기 시작하자 평화로웠던 가정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상원의원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오바마는 일주일의 대부분을 시카고가 아닌 다른 곳에서 보내기 일쑤였고, 가끔 주말에만 집에 들러 얼굴을 보여주곤 했다. 때문에 자연히 부부가 굳게 약속했던 ‘무슨 일이 있어도 저녁은 집에 와서 먹는다’는 철칙을 어기는 날도 허다했다.
이에 홀로 두 아이를 돌보게 된 미셸은 점차 지쳐 갔다. 자신이 마치 아이 아빠 없이 아이들을 키우는 ‘싱글맘’이 된 것처럼 느껴졌으며, 남편에게 누차 “당신은 분명히 잘못하고 있다”고 충고하기도 했다.
잦은 다툼과 갈등으로 서먹해진 부부는 1999년 관계 회복을 위해서 하와이로 휴가를 가기도 했지만 이마저도 곧 다툼으로 끝나 버렸고, 일정을 다 채우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사정이 이러한데 오마바가 대선 출마를 결심했을 때 미셸이 순순히 오케이했을 리는 만무했다. 하지만 당시 남편의 정치적 야망을 모르는 바 아니었던 미셸은 못 이기는 척 한 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대선에 출마하는 대신 반드시 담배를 끊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한 워싱턴 관계자는 오바마는 여전히 금연에 성공하지 못했으며, 틈틈이 미셸 몰래 담배를 피우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 11월 대통령 당선이 확정된 후에도 오바마 부부 사이에서는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우선 아이들 학교 문제가 그랬다. 시카고에서 워싱턴으로 전학을 온 아이들이 공립학교에 다니길 희망한 오바마와 달리 미셸은 사립학교를 고집했다. 아이들 교육에 관한 한 결정권은 대부분 미셸에게 있었기 때문에 오바마는 하는 수 없이 미셸의 결정을 따라야 했다.
이밖에도 아이들 문제에 있어 오바마 부부는 종종 의견 충돌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셸은 아이들이 언론에 공개되는 것을 꺼리면서 사생활 보호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반면 오바마는 미셸이 아이들을 지나치게 화려하게 치장시킨다며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한 백악관 관계자는 오바마가 행여 아이들이 공주처럼 보이진 않을까 염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한 점차 멋을 부리기 시작한 미셸 본인에 대해서도 오바마가 불쾌해하고 있다는 소문도 들려오고 있다. 당선이 확정된 후부터 디자이너 의상을 구입하는 데 드는 비용이 점차 늘어나자 오바마는 미셸에게 가급적 자제하라며 주의를 당부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선거 당시만 하더라도 방송에 출연해서 공공연히 “저가 브랜드의 옷을 즐겨 입거나 온라인 쇼핑몰을 즐겨 이용한다”고 말했던 것과는 분명히 다른 것이다.
취임식 전날에도 작은 다툼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취임식 전날 미셸이 새로 쇼핑한 물건을 한아름 안고 방에 들어서는 모습을 본 오바마는 몹시 화가 났다. 값비싼 진주 목걸이를 포함해서 미셸이 쓴 돈이 적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오바마는 “당장 가서 환불해라”며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오바마는 “국가 경제가 위태로운데 이런 사치는 말도 안 된다”면서 다그쳤고, 둘 사이에는 한동안 말 없이 냉전 기류가 흘렀다고 한다.
과연 이런 소문들이 단지 떠도는 이야기에 불과한지 아니면 측근들의 입을 통해 나온 이야기인 만큼 신빙성이 있는지는 알 수 없는 일. 다만 지위가 지위인 만큼 이런저런 소문에 휩싸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 아닐까 싶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