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신문] “암행어사 출도요!”
조선 시대 왕의 측근이자 관원을 움직일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은 자. 비밀리에 파견돼 위장복 차림으로 암행하게 한 왕의 특명사신 ‘암행어사’입니다. <춘향전>의 변 사또를 응징한 이몽룡 역시 암행어사였습니다.
“뜬금없이 이상한 얘기를 해?”란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암행어사 얘기를 꺼낸 이유가 있습니다. 현대판 암행어사라 불리는 ‘미스터리 쇼퍼’를 아시나요. 생소할 수도 있는 이 직업에 대해 알아보려고 합니다.
미스터리 쇼퍼는 고객을 가장해 서비스와 제품 등을 평가하는 사람입니다. ‘현장 평가자’라고도 불리죠. 미스터리 쇼핑은 ‘현장평가업무’로 정의할 수 있는데 최근 공공기관에서는 ‘고객평가’라고 칭합니다.
2017년 농협중앙회 서비스모니터링 품질표준표 자동화기기/코너, 환경관리 항목 사진= 전국협동조합노동조합 제공
기업은 제품이나 서비스를 개선하고자 미스터리 쇼퍼를 활용하곤 합니다. 상품과 서비스 질에 대한 소비자 평가에 따라 기업 매출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인데요. 기업은 “소를 잃기 전에 외양간을 튼튼하게 고치겠다.”는 것입니다. 농협의 평가표를 보면 시설관리와 환경관리가 포함돼 있습니다. 쾌적한 환경을 고객에게 제공하겠다는 의미입니다. 실제로 기업이 미스터리 쇼퍼를 운용하면서 만족할만한 성과가 나오기도 했죠.
2017년 농협중앙회 CS평가조사 추진계획 CS평가 점수 현황 사진= 전국협동조합노동조합 제공
그 대표적인 곳이 서울시입니다. 서울시는 불법 행위를 적발하려는 목적으로 미스터리 쇼퍼단을 구성해 실제로 소비자에게 도움이 되는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22명의 주부로 된 미스터리 쇼퍼단은 관내 한우판매소 459개소를 점검해 상반기 동안 19곳을 적발했습니다. 미국산 등 수입산 쇠고기를 한우로 둔갑 판매한 업소가 10곳, 육우를 한우로 둔갑 판매한 업소가 7곳이었습니다.
“그럼 좋은 거 아니야?”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아닙니다. 다른 면도 봐야 합니다. 노동자 측은 “미스터리 쇼퍼 운용을 과도한 감시”라며 반발합니다. 극심한 업무 스트레스를 유발하고 일방적인 인권 침해를 감수하도록 강요한다는 이유입니다. 암행감시 평가는 오히려 ‘블랙컨슈머(고의적으로 악성 민원을 제기하는 사람)’를 양산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어떤 식으로 평가를 하기에 직원들의 반대가 심할까요?
2017년 농협중앙회 ‘서비스모니터링 품질표준표’ 용모/복장 체크리스트(왼쪽), CS평가조사 추진계획 항목 배점표(오른쪽) 사진= 전국협동조합노동조합 제공
위 사진의 체크 리스트를 한 번 보시죠. 제품이나 서비스의 질을 향상한다고 하기엔 용모 항목이 너무 많습니다. 머리와 얼굴, 복장까지 점검토록 하네요. 전국협동조합노조은 “해당 사무소가 평가에서 낮은 점수를 받으면 자체 징계를 한다.”고 토로합니다. 이에 노조는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내기도 했습니다.
미스터리 쇼퍼 평가는 매장을 다 돌고 나온 후 급하게 평가표를 작성하기 때문에 매우 주관적이죠. 따라서 객관적인 평가 방식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습니다. 게가다 과거 과거 미스터리 쇼퍼 평가는 기억에 의존해 점수를 주는 방식이었습니다. 이로 인한 오류가 제법 많았습니다.
미스터리 쇼퍼 전용 평가 애플리케이션 화면 사진= 굿모니터링 제공
이러한 비판 때문일까요. 최근 개선의 움직임도 보입니다. 몇몇 전문 모니터링 기관 및 기업은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이용, 현장에서 체크리스트를 작성해 객관성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최소한 과거 쇼퍼의 주간적인 기억에만 의존하는 방식에선 어느 정도 개선됐다는 평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미스터리 쇼퍼는 양면성이 있습니다. 기업은 제품과 서비스의 질을 향상해 소비자 만족도를 올린다는 입장이지만 노동자는 CCTV로 감시하는 것도 모자라 새로운 감시 수단을 만들었다며 불만을 토로합니다. 물론 이러한 문제점들과 오류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도 병행되고 있습니다.
불법 매장(제품)을 잡는 암행어사. 노동자를 사지로 몰고 가는 저승사자.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요?
김종용 인턴기자 deep@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