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검 첨수1부(부장검사 신봉수) 전병헌 청와대 정무수석이 협회장으로 있던 한국e스포츠협회 등에 대한 전격 압수수색에 나선 것은 지난 7일. 롯데홈쇼핑이 e스포츠협회에 후원한 3억 원 가운데 1억 원가량이 전병헌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의 의원 시절 비서관 등 3명에게 들어간 정황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eoimage=서울] 박은숙 기자 = 전병헌 청와대 정무수석이 6일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열린 국정감사에 출석해 물을 마시고 있다. 2017.11.06
‘롯데홈쇼핑과 e스포츠협회가 왜? 전병헌 수석은 왜?’라는 생각이 얼핏 들 수 있지만, 2015년 당시 국회의원 자격이었던 전 수석이 e스포츠 협회장을 맡고 있었고, 국회에서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소속이었던 점을 알고 보면 파악이 어렵지 않다. 롯데홈쇼핑이 사업권 재승인 관련, 전 의원 측 비서관 등에게 청탁을 하고 그 대가로 협회에 3억 원을 건넸고 이를 보고받은 전 수석(당시 국회의원)이 움직여 롯데를 도와줬다는 게 검찰이 수사 중인 혐의점이다. 검찰은 이 3억 원이 ‘대가성 뇌물’이고, 이 중 일부가 전 수석의 정치자금으로 사용됐을 가능성을 주목하고 있다.
실제 대가성으로 해석될 만한 여지들이 다수 있다. 전 수석은 롯데홈쇼핑에 대한 문제를 관련 상임위 등에서 제기한 바 있고, 3억 원의 후원금 역시 세탁됐다. 3억 원이 전 수석의 전 비서관 윤 아무개 씨가 만든 용역회사와의 허위 거래 등으로 흘러갔기 때문. 롯데홈쇼핑의 부탁을 들어줄 전 수석이 없으면 안 되는 구조인 것도 전 수석의 관여 가능성을 높이는 정황이다.
하지만 워낙 예민한 수사 대상이어서일까, 수사팀은 말을 아끼는 분위기다. ”롯데홈쇼핑에서 e스포츠협회에 후원금을 낸 과정과 협회 자금을 횡령한 내용 중심으로 수사를 벌이고 있다. 현재 명확한 수사대상은 체포한 3명이다. 이외 다른 사람은 현재 단계에서 말할 수 있는 내용이 없다“는 설명만 내놓았다.
그럼에도 수사팀 안팎에서 나오는 얘기들은 다소 다르다. ‘검찰이 이미 증거를 다 확보했다’는 것. 사건에 관여된 한 법조계 관계자는 “이미 검찰이 진술과 금융 계좌 등 전 수석의 관여를 입증할 증거들을 가지고 있다”며 “남은 것은 이 과정에 관여된 비서관 등으로부터 전 수석까지의 연결을 인정하는 진술을 받아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살아있는 권력(여권) 중에서도, 가장 강력하다는 정권 1년차 청와대의 정무수석을 겨눈 수사다. 신중하고 신중할 수밖에 없다”며 “인사가 만사라는 검찰이 청와대 수석을 겨눈 수사를 시작했다는 것은, 처벌이 200% 가능하다고 확신할 수 있을 때만 움직인다”고 설명했다.
사실 관련 범죄 흐름이 파악된 것은 지난해다. 지난해 여름, 서울중앙지검 롯데수사팀이 롯데홈쇼핑 관련 수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방송 사업권을 따내기 위한 로비성 자금이 협회 측으로 흘러들어간 정황을 포착한 것. 당시 수사팀은 곧바로 강현구 롯데홈쇼핑 사장을 불러 “전병헌 수석(당시 의원)을 만난 뒤 한국e스포츠협회에 3억 원을 후원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고 알려진다.
사실상 로비성 자금이라는 것을 인정한 셈인데, 검찰은 신동빈 회장 등 롯데그룹 횡령 등과 직접적으로 관련성이 없었던 데다 곧바로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 등이 터지면서 수사를 개시하지 못했다. 그리고 1년여가 흐른 지난 7일, 공개수사(압수수색)에 나섰다.
롯데 측은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3억 원을 협회에 보낸 것은 맞지만 어떤 식으로 사용됐는지는 잘 알지 못한다. 전 의원 등 개인에게 흘러들어갔는지는 전혀 알지 못한다”는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뇌물’을 건넨 측도 처벌받기 때문에 이를 피하려는 속셈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전 의원을 만난 뒤 돈을 준 것은 맞다’는 시점에 대해서는 인정하고 있다.
자연스레 검찰 안팎에서는 전병헌 수석이 최순실 씨와 같은 구조의 범행을 저지른 탓에 ‘(법리적으로) 공동운명체가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삼성 등 다수의 대기업으로부터 민원 해결 등의 목적으로 미르·K스포츠재단에 후원금을 받은 과정과, 전 수석의 상황이 유사하기 때문. 삼성 등 대기업에 롯데홈쇼핑을, e스포츠협회에 미르와 K스포츠재단을, 그리고 최순실 씨에 전 수석을 놓으면 상황이 거의 일치한다는 얘기다.
앞선 관계자는 “롯데도 삼성처럼 후원금을 준 것은 맞지만 특정한 목적이 있는 대가성은 아니다. 전 수석을 만난 적은 있지만 전 수석 개인에게 뇌물로 준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지 않냐”며 “역설적으로 최순실 씨가 유죄가 나면 전 수석도 유죄, 최 씨가 무죄면 전 수석도 무죄인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사실 전 의원의 ‘입법 로비 후 뒷돈’ 의혹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전 수석이 현역 의원이었던 2008년, 전 수석의 당시 비서관 이 아무개 씨도 비슷한 구조의 범행을 저질렀다. 노량진 재개발 사업 과정에서 이른바 ‘알박기 금지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킨 대가로 1억 7000여 만 원을 받은 것.
당시에는 돈을 건넨 측에서 이번 사건보다도 훨씬 구체적인 진술이 나왔다. 최 아무개 조합장과 이 아무개 개발업체 대표는 검찰(서울중앙지검 특수3부) 수사에서 “전병헌 당시 의원에게 전해주라며 2009년 중순 해당 금품을 이 비서관에게 전달했다”고 진술했다. 입법 로비 대가로 전 수석에게 돈을 보냈다는 것. 이에 검찰은 전 수석의 금품 수수 의혹에 확신을 가지고 수사했지만, 수사는 전 수석까지 올라가지 못했다. 돈을 전달했어야 하는 이 비서관이 ‘배달 사고’를 낸 것.
당시 검찰 수사를 지켜본 법조계 관계자는 “당시 입법 로비 역시 전 수석이 나서서 해결해줘야 했기 때문에 전 수석까지 돈이 전달됐을 가능성을 주목했지만 계좌와 진술 등을 확인해보니 이 비서관이 전 수석에게 전달하지 않은 게 확인됐다. 배달사고가 명백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전 수석이 이번에 이 사건으로 수사를 받는다는 얘기를 듣고, 입법 로비의 구조가 상당히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이번 수사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는 게 법조계 중론이다. 구속된 전 비서관 윤 씨 등의 진술 태도가 바뀌고 있기 때문. 윤 씨는 후원금 일부를 빼돌린 정황에 대해 인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수사팀은 윤 씨 등을 상대로 이번 롯데홈쇼핑 사업권 로비에 전 수석이 얼마나 관여했는지, 뒷돈을 챙긴 부분이 있는지 집중 추궁한다는 방침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윤 씨 등이 심경 변화를 일으킬 경우, 이번 사건 외에 또다른 입법 로비 정황 등이 드러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서환한 기자 brigh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