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정치권에선 한국당이 극심한 내홍에 시달릴 것이란 관측도 적지 않다. 당 주류로 올라선 친홍(친홍준표)계와 여전히 탄탄한 조직력을 갖고 있는 친박계, 그리고 돌아온 김무성계가 주도권을 놓고 치열한 세 대결을 벌일 가능성 때문이다. 당장은 아니겠지만 홍준표 대표와 김무성 의원 간에 물러설 수 없는 한판 대결도 점쳐진다.
홍준표 한국당 대표와 바른정당을 탈당한 김무성 의원이 11월 9일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재입당 국회의원 간담회에서 만났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홍 대표와 김 의원은 악연이라면 악연이다. 둘은 2007년 한나라당(현 한국당) 대선 경선 당시 각각 이명박 후보 캠프와 박근혜 후보 캠프에 참여해 치열하게 싸웠던 과거가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당대표를 맡고 있던 2005년엔 홍 대표가 한나라당 혁신위원장을 맡아 당권과 대권을 분리하는 혁신안을 제시하자 친박계 사무총장이었던 김 의원이 이를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벌써 양측 사이엔 미묘한 기류가 흐른다. 11월 9일 오전 바른정당 탈당파 의원들의 한국당 재입당 간담회 자리에 홍준표 대표는 10분가량 늦게 도착했다. 당 안팎에선 “홍 대표가 기선제압을 위해 탈당파들을 의도적으로 기다리게 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정치 9단이라 불리는 박지원 국민의당 의원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홍 대표가 ‘이제 문을 닫겠다’며 바른정당 의원 추가 복당에 제동을 건 것에 대해 “김무성 의원 힘이 너무 커지면 자기가 죽을 수 있다. 지금 김무성파가 이미 많이 (한국당에) 가 있지 않나. 더 이상 오면 김무성 의원 힘이 너무 커져 그러면 안 되겠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현재 한국당 내 바른정당 탈당파는 22명이다. 단숨에 주요 계파 중 하나로 떠오른 셈이다. 게다가 탄핵 정국 당시 탈당하지 않았던 비박계 의원들 중에서도 김무성 의원과 친분이 두터운 의원들이 적지 않다. 반면 친홍계라고 분류할 수 있는 현역 의원은 홍 대표가 경남도지사 시절 경남 행정부지사를 지낸 윤한홍 의원 정도가 유일하다. 홍 대표가 경남도지사를 지내며 오랫동안 국회를 떠나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당 전직 의원은 “홍준표당 만들려다 김무성당 만들었다는 평가가 있다”며 “당내 일각에서는 지방선거를 이끌기에는 홍 대표가 너무 중도층에 인기가 없어서 새 인물을 내세우자는 ‘새 인물론’이 거론되고 있다. 또 지방선거 결과가 나쁠 경우 홍 대표가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할 수도 있다. 홍 대표가 물러나고 나면 탈당파들이 당 주류로 떠오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표면적으로는 바른정당 탈당파가 홍 대표와 손을 잡고 친박계와 대립하는 모양새지만 사안에 따라서는 친홍계와 친김무성계, 친박계가 서로 물고 물리는 싸움을 할 수도 있다. 정치권에선 친홍계와 김무성계가 내년 지방선거 공천을 앞두고 대립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온다.
김 의원은 지난 8월 류석춘 한국당 혁신위원장이 자신의 정치적 브랜드인 ‘상향식 공천’을 실패로 규정하고 전략공천을 늘리겠다고 발표하자 즉각 반발했다. 김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류 혁신위원장이 상향식 공천을 해서 지난 총선에서 패했다고 말하는데 지난 총선에서 패배는 특정 권력자와 그 추종세력들이 상향식 공천의 취지를 훼손하고 당원과 국민의 뜻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라고 했다. 김 의원은 이어 “전략공천은 특정 권력자가 공천권을 휘두르며 자기 사람을 심는 ‘사천’을 부추기며 정치를 후퇴시킨다”고 강조했다.
이미 1차 탈당으로 한국당으로 돌아가 있었던 친김무성계 의원들도 전략공천 확대를 비판하는 발언을 쏟아냈다. 강석호 의원은 혁신위 발표 이후 한국당 3선 의원 연석회의에서 “20대 총선을 상향식 공천 때문에 졌느냐”고 따져 물었고, 김무성 의원 비서실장 출신인 김학용 의원도 “상향식 공천을 전략공천으로 되돌리는 것은 한국당을 과거로 회귀시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당내 반발에도 불구하고 홍 대표는 지방선거 전략공천 확대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
한국당의 한 고위 당직자는 “탈당파는 홍 대표랑 사이가 좋은 편이다. 홍 대표는 친박들을 제압하기 위해서 탈당파를 이용하려고 하는 것”이라며 “(탈당파인) 홍문표 사무총장도 홍 대표와 친한 사이고 이은재 의원은 홍 대표 부인이랑 친하다. 탈당파라고 무조건 김무성 의원을 따를 것이라는 것은 잘못된 예측이다. 특히 김 의원은 한국당과 바른정당을 오가면서 당내 영향력이 상당히 약화됐다. 당내 권력 투쟁을 할 힘이 없다”고 평가했다.
김무성 의원 측도 홍 대표와 갈등설이 나오는 것에 대해 불쾌감을 드러냈다. 김 의원 측 관계자는 “언론에서 싸움 붙이지 말았으면 좋겠다”면서 “의원님은 당분간 조용히 있을 것이다. 보수 대통합을 통해 보수를 살리려는 큰 목표를 가지고 움직이는 거지 절대로 권력투쟁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홍 대표가 전략공천을 강행해도 대응하지 않을 것이냐는 질문에 김 의원 측 관계자는 “당 지도부가 알아서 할 일”이라며 “당헌당규에 맞게 한다면 그거에 대해서는 인정을 해야 하지 않겠나. 친박 청산에는 힘을 실어줄 수 있지만 사익을 위해 계파싸움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일축했다. 홍 대표 측 관계자도 “지방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는 토대를 구축하기 위해 내부 통합을 하는 과정인데 계파고 뭐고 다 쓸데없는 이야기”라며 갈등설에 선을 그었다.
하지만 앞서의 한국당 전직 의원은 “바른정당 의원들이 한국당으로 돌아온 가장 큰 이유는 내년 지방선거다. 대선 전에 치러진 재보선에서 바른정당이 참패를 하지 않았나. 그때부터 지역구 시의원이나 도의원, 지자체장들이 한국당으로 돌아가라는 압박을 강하게 했다. 국회의원 따르는 시도의원이 지방선거에서 다 낙선하고 나면 지역 조직이 무너져 차기 총선도 어렵게 된다. 그래서 바른정당 의원들이 돌아 온 것”이라며 “지방선거 때문에 돌아왔는데 공천을 홍 대표 마음대로 한다고 하면 과연 탈당파들이 보수대통합을 위해 흔쾌히 양보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친박계로 분류되는 한 의원실 관계자도 “이제 한국당에서 친박계는 유명무실해졌다. 최대 계파라고 하는데 친박계라고 드러내놓고 활동하는 사람은 10명도 안 된다. 우리 의원님도 마찬가지고 대부분 친박계 꼬리표를 떼고 싶어 한다”면서 “공공의 적이 사라지면 새로운 세력끼리 싸우게 되는 것이 수순”이라고 전망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