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정부 시절 국정원 사찰 피해자로 확인된 명진 스님이 ‘일요신문’과 인터뷰를 가졌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이명박 전 대통령이 당선되기 전부터 최소한 사기 전과가 있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안 된다는 얘기를 법회나 공․사석에서 많이 해왔다. 초파일(부처님 오신 날)에 이 전 대통령이 등값을 보내 왔는데 부도덕한 사람의 등을 절에 다는 것은 맞지 않다고 판단해서 돌려보냈다. 그런데 청와대 행정관이 찾아와 어떻게 돌려보낼 수 있냐며 화를 내더라.”
―이명박 전 대통령을 왜 그렇게 비판한 것인지.
“이명박 전 대통령은 대한민국을 완전히 망쳐놓았다. 도덕이 무너진 세상을 회복하는데 문재인 대통령 5년 가지고도 힘들다고 본다. 그만큼 나라를 못 쓰게 만들었다는 말이다. 국가 권력을 완전히 사적인 용도로 이용했다. 몇 억만 년을 내려왔던 강의 흐름과 산의 줄기를 뚫고 바꿔서 운하를 만들려고 한 것 자체가 자연의 순리를 거스른 행동이었다.”
―대통령 비판 발언을 자제해달라는 압박은 없었나.
“봉은사에 오가는 사람 중에 정부 관료도 있고 언론사 간부도 있다. 그 분들 통해서 정부와 여당(당시 한나라당) 쪽에서 ‘스님 때문에 엄청 신경 쓴다. 발언을 자제해 달라’는 요구를 많이 받았다.”
―박근혜 정부와의 관계는 어땠나.
“박근혜 전 대통령은 대선 때 인혁당 사건 등 조작된 공안 사건들 얘기만 나오면 ‘과거는 역사에 맡기자’는 얘기를 수차례 했다. 그래서 내가 ‘역사가 전당포냐. 왜 자꾸 맡기느냐’고 응수했다. 박 전 대통령 쪽에서도 불쾌하게 생각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국정원으로부터 사찰당하고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았나.
“2010년 봉은사에서 나와 남산에 있는 아파트를 사무실 겸 숙소로 얻게 됐다. 아무도 거기 사는 걸 모르는데 어버이연합회 등 보수 단체가 피켓 들고 와서 시위를 했다. 또 출판기념회를 두 번 했는데, 장소가 공개되지 않았는데도 어떻게 알고 수십 명씩 몰려와서 피켓 들고 시위를 했다. 출판기념회를 하면 신도들이 떡을 해온다. 시위자들이 떡도 받아가고 기념품도 받아갔다. 자발적으로 온 사람들이면 떡을 받아갔겠나. 허허. 틀림없이 국가 기관이 개입됐다고 생각했다.”
―MB 정권에서 불이익을 당한 게 또 있나.
“2010년 11월 <중생이 아프면 부처도 아프다 : 서이독경>이란 책을 냈다. 교보 사장이 15만 권 팔릴 걸 예상하고 초판 2만 부 가운데 1만 5000부를 매장에 깔았다. 그런데 며칠 만에 매장에서 모두 수거가 됐다. 외압이 없었으면 그렇겐 안 된다. 실제로 출판사가 그 책을 내고 문을 닫았다. 출판사 측도 구체적으로 얘기는 하지 않는데 외압 받았다는 식으로 얘기를 했다.”
9일 열린 국정원 불법사찰 관련 기자회견에 명진 스님도 참석했다. 이종현 기자
―KBS 블랙리스트에도 올랐다고 들었다.
“천안함 침몰했을 때 KBS 인터뷰를 했다. 나중에 방송인 김미화 씨가 KBS 블랙리스트 보니까 내 이름과 본인 이름이 있다더라. 그러면서 김 씨가 나도 명진 스님하고 같은 반열이라고 그러더라. 허허.”
―봉은사 직영 사찰 전환 배경에도 국정원이 있다고 했다.
“2009년 11월 국회 문광위원장이었던 고흥길 한나라당 의원과 김 아무개 보좌관, 안상수 원내대표, 자승(전 조계종 총무원장)이 만났다. 안 원내대표가 ‘강남 좌파 주지 그냥 놔둘 것이냐’고 했다더라. 이에 자승은 ‘임기가 있어 어렵다’고 답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듬해 3월 갑작스레 직영을 결정했다. 거기에 정부가 개입했다고 생각한다.”
―주지 임기(2010년 11월 13일)를 다 채우지 못했다.
“2010년 11월 9일부터 코엑스에서 G20 행사를 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 비판 내용이 담긴 애드벌룬을 4개 국어로 띄우겠다고 했다. 11월 7일 자승 쪽에서 특사를 보내와 지금 당장 봉은사를 떠나면 주지를 내가 원하는 사람으로 임명해주겠다고 했다. 그래서 11월 8일 봉은사를 떠났다. 내가 짐 싣고 떠나는 것까지 사진을 찍어 갔다. 자승에게 사진을 갖고 가야 된다고 하더라.”
―왜 퇴출당했다고 생각하나.
“광우병 촛불집회 때 내가 도와줬다는 말이 나왔다. 집회 지도부들이 봉은사에 숨어있다는 말도 있었다. 또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 때 불교 대표로 가서 영결사를 했다. 용산 참사 때 1억을 기부했다. 정치권에선 이 세 가지가 결정적이었다고 계속 얘기가 나왔다. 안 그래도 미운 털 박혔는데 쫓아 낼 생각을 하게 됐다고 들었다.”
―이명박 정부와 자승 스님이 각별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까지 조계종 총무원장을 맡았던 자승과 이명박 전 대통령은 호형호제 하는 사이다. 당시 자승은 종회의장이었다. 2006년 12월 만찬을 하면서 예정에도 없던 ‘이명박 대통령 만드는데 앞장서자’며 건배사를 했다. 그리고 2007년 대선에서 747불교지원단이란 단체를 만들어 본인이 상임고문을 맡았다. 자승은 이상득 전 의원(이명박 전 대통령의 형)과 함께 다니면서 선거 운동을 했다.”
―국정원 TF가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해 검찰에 수사 의뢰하도록 권고 조치를 내렸다.
“국정원 TF는 수사권이 없다. 원세훈 전 원장과 자승의 금융 거래 내역과 통화 기록을 보면 아주 낱낱이 그들의 관계가 드러날 것이라고 본다. 또 자승과 이상득 전 의원과의 관계, 어떻게 조계종이 이렇게까지 됐는가에 대해서도 밝혀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린다.
“인간에 대한 존경과 배려가 종교인의 덕목이 되어야 한다. 종교가 세상 걱정을 해야 되는데 세상이 종교를 걱정하는 나라가 됐다. 모든 종교에 거짓말 하지 말라는 계율이 들어가 있다. 거짓말을 하지 않아야 신뢰가 형성되는 것이다. 이명박근혜 시대는 전부 거짓이었다.”
김경민 기자 mercur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