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라이프는 현대차그룹에 편입된 2011년 이후 단 한해도 흑자를 내지 못했다. 지난해부터 자본잠식에 들어갔고, 지급여력(RBC) 비율은 6월 말 164%로, 금융당국 권고 기준인 150%를 가까스로 웃돈다.
정태영 현대카드·캐피탈 부회장이 현대라이프생명보험 문제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연합뉴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현대라이프생명은 5000억 원 유상증자로 재무구조를 개선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최대주주인 현대모비스가 증자에 제동을 걸었다. 현대모비스는 증자 참여 대신 합작사인 대만 푸본생명에 증자물량을 다 떠넘기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 사실상 회사를 포기하는 셈이다. 정몽구 회장의 둘째 사위가 이끄는 회사임에도 사정이 너무 어려워서다.
구조조정으로 설계사 조직은 사실상 와해됐다. 가장 큰 시장인 퇴직연금은 현대차투자증권이 주도권을 잡은 지 오래다. 문재인 정부 들어 현대차그룹에서 협력사들에 보험가입을 ‘강제’하기도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설령 증자에 성공한다고 해도 영업 정상화를 통해 재무구조가 개선될 가능성이 낮은 셈이다.
한 회계법인 관계자는 “현대라이프가 이번 증자에 성공한다고 해도 2021년 도입 예정인 새 국제회계기준(IFRS17)을 충족하려면 수천억 원에 달하는 자본 확충이 추가적으로 필요하다”며 “시간이 갈수록 주주들의 경제적 부담은 계속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영업이 개선될 가능성도 낮다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자동차 주력그룹 특성상 손해보험 수요는 많지만 생명보험사가 치고 들어갈 여지가 거의 없다. 계열사의 퇴직연금도 현대차투자증권이 주도하고 있어 현대라이프가 끼어들 여지는 별로 없어 보인다”고 설명했다.
정 부회장은 현대라이프 등기임원이다. 또 이재원 현대라이프 대표는 ING생명 부사장을 거쳐 2014년 10월부터 현대카드와 캐피탈, 커머셜 전략기획본부장 임원직 등 정 부회장 지근거리에서 주요 요직을 담당했다. 이 대표 뒤에 정 부회장이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특히 현대차그룹에는 생명보험과 관련한 트라우마가 있다. 2001년 인수 1년 만에 부실금융기관으로 지정돼 대한생명(현 한화생명)으로 넘겼던 ‘현대생명의 악몽’이다. 재계 관계자는 “현대·기아차가 잘 팔릴 때 같으면 현대모비스가 1500억 원 정도 증자야 거뜬했겠지만 요즘은 상황이 달라졌다. 당장 본업인 자동차 부문이 위기상황인 데다 정부 방침이 금산분리 강화다. 회생이 어려운 금융계열사에 자금 투입을 할 경우 주주들로부터 추궁받을 가능성도 크다”고 지적했다.
현대라이프가 부실금융회사로 지정될 경우 정태영 부회장이 입을 타격은 상당할 전망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금산분리가 이뤄지면 현대카드 정도는 정 부회장이 가져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지만, 지금처럼 경영 실패를 거듭한다면 독립은커녕 전문경영인 지위도 흔들릴 수 있다”고 내다봤다.
금융업계 고위 관계자는 “사실 현대·기아차가 파격적으로 비용을 부담하고 영업을 돕지 않았다면 M카드 성공도 불가능했다. 난공불락처럼 보였던 현대캐피탈의 자동차금융 부문 철옹성도 수입차 시장점유율 확대와 신용카드사들의 저금리 할부 공세에 흔들리고 있다. 정 부회장이 회사 안팎을 멋있게 꾸미는 능력은 있을지 모르겠지만, 금융부문에서 진정한 혁신을 가져왔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