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불거진 성심병원 장기자랑 논란 이후 간호사들의 아우성이 빗발치고 있다. 한림대 일송재단 가족이 운영하는 6개 성심병원(한강성심병원, 강남성심병원, 춘천성심병원, 한림대학교성심병원, 동탄성심병원, 강동성심병원) 소속 간호사들이 행사에서 선정적인 의상을 하고 춤을 추도록 강요받았다는 주장이 시초가 됐다. 이밖에도 시간외수당 미지급, 근무환경 등에 대한 문제까지 제기되며 논란은 일파만파 커졌다. 더욱이 이번 사건을 필두로 간호사들의 근무 환경 실태가 알려지고 청와대 게시판에 관련 사안 개선을 요구하는 청원도 올라와 파문은 지속될 전망이다.
사진=간호학과,간호사 대나무숲 페이스북
이번 사건은 노무사, 변호사, 노동전문가로 등으로 구성된 시민단체 ‘직장갑질 119’에 의해 수면 위로 드러났다. 지난 2일 ‘직장갑질 119’가 상담을 위해 열어둔 카카오톡 익명 채팅방에서 간호사들이 연달아 목소리를 낸 것. 바로 한림대학교 성심병원의 부당노동 행위에 대한 이야기로 간호사들은 그동안 당한 피해 사례를 봇물 터지듯 쏟아냈다. 이어 지난 10일 페이스북 페이지 ‘간호학과, 간호사 대나무숲’에도 비슷한 사연이 올라와 여론에 불을 지폈다.
이들은 매년 10월 재단 행사인 ‘일송 가족의 날’ 행사에 간호사들을 강압적으로 동원하고 장기자랑 때는 노출이 심한 복장을 입고 춤을 추도록 했다고 주장했다. 장기자랑에 참가하는 간호사를 키와 몸무게 등 몸매를 기준으로 선발한 뒤 업무시간 종료 후와 휴일에 장기자랑 연습을 하게 했다. 익명을 요구한 성심병원 현직 간호사는 “행사 한 달 전부터 연습 참석을 강요당하는데 새벽 6시에 출근해 오후 3~4시까지 고된 일과를 마친 뒤 저녁 늦은 시간까지 연습을 해야 한다”며 “외부 춤 강사를 섭외해 연습을 시키며 출석부로 명단 체크까지 한다”고 말했다.
장기자랑에 참가한 간호사들은 대부분 연차가 낮거나 신규 직원들이었다. 따라서 거부 의사를 밝히기도 쉽지 않았다는 게 관계자들의 증언이다. 앞서의 간호사는 “간호부장이 너희들 참여하기 싫으면 말해 라고 하는데 간호부장, 팀장, 수간호사 다 있는 자리에서 감히 신규 간호사가 ‘저 안하겠습니다’라고 할 수 있을까”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 간호사는 그 자리에서 직접 하기 싫다고 말했지만 윗년차 간호선생님이 압박을 줘 행사에 갈 수밖에 없는 분위기가 조성됐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익명의 간호사는 “우리 수간호사는 간절히 빠지겠다는 경우에 빼주긴 하는데 대신 참가 간호사들을 위해 격려금을 내야만 했다”고 말했다.
아울러 간호사들이 장기자랑에 입는 의상의 경우 ‘선정성’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성심병원 간호사들은 장기자랑에서 짧은 치마 또는 바지, 민소매 셔츠 등 노출이 심한 옷을 착용했다. 한 전직 한림대 성심병원 간호사에 따르면 재단 장기자랑 1등 상금은 300만 원이다. 따라서 장기자랑의 경쟁이 과열되다보면 쉽게 자극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의상을 선택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이 간호사는 “의상 선택에 관해 묻긴 하지만 대부분 신규 간호사들이다 보니 대답을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했다.
이 같은 간호사들에 대한 노동 착취는 그동안 꾸준히 있어왔지만 관행이라는 명목 하에 묵인돼 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비단 이번에 논란이 된 성심병원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앞서의 전직 한림대 간호사는 “2년차 때 수간호사가 날짜를 정해주며 정장을 챙겨오라고 해서 갔더니 하는 일은 병원 행사를 위한 도우미 안내원 역할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재단 의사들과 간부들이 오면 인사하고 강당까지 안내하고 자리 안내하라는 지시였다”며 “간호사가 이런 일도 하는건가 간호사 인생 처음으로 정체성의 흔들림을 경험했다”고 밝혔다.
다른 대학병원의 경우도 병원 행사에 간호사들이 동원되는 관행은 과거부터 이어져온 것으로 파악됐다.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웬만한 병원에서 신규 간호사 춤 시키는 건 당연한 일”이라며 “오프 때마다 연습이라며 일방적으로 통보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대학병원 간호사는 “우리 병원은 하고 싶은 부서만 하게 하는 거였는데 수간호사에 따라 케이스 바이 케이스였다. 우리 수간호사는 하기 싫으면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는 반면, 다른 병동 수간호사는 강제로 나가라는 식이었다”고 설명했다.
간호사들은 이른바 ‘태움’과 ‘임신 순번제’ 등 문제도 지적했다. 태움 문화는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라는 의미로 직장내 괴롭힘을 의미한다. 신입간호사에겐 몰아붙이며 가르치는 방식을 뜻한다. 실제로 성심병원 장기자랑 사태 이후 청와대 ‘국민청원 및 제안’ 게시판에 올라온 ‘전국 간호사 처우개선 청원’에는 ‘간호사 태움 문화’에 대한 비판도 포함됐다. 청원인은 “태움에는 인사 안 받아주기, 음식을 먹을 때 신규만 빼고 먹기 등 다양한 종류가 있다”며 “이에 시달린 신규 간호사들은 우울증에 걸리거나 자살을 결심한다”고 적었다.
또한 임신 순번제는 간호사들이 2명 이상 한 번에 임신하지 않도록 순번을 정하는 관행을 뜻한다. 페이스북 페이지 ‘간호학과, 간호사 대나무숲’에 따르면 “누군가 순번제를 어기고 겹치게 임신을 하면 먼저 임신한 사람이 분만 휴가를 갈 때까지 밤 근무를 하겠다는 내용 등의 동의서에 서명해야 한다”며 ‘임신 순번제’를 강요받았다고 주장하는 내용도 있다. 여러 명의 임신으로 일손이 부족해지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다. 순서를 어기고 임신한 사람은 퇴사를 종용받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성심병원 장기자랑 논란이 불거진 뒤인 지난 11일 등록된 ‘전국 간호사 처우개선 청원’은 14일 현재까지 1만 6000여 명의 동의를 이끌어냈다. 사진=청와대 홈페이지
간호사들은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이다. 현재도 ‘직장갑질 119’를 비롯해 간호사들의 커뮤니티 ‘널스커뮤니티’ ‘전국 간호사 연합’ 오픈채팅방 등 다양한 곳에서 이번 사태와 관련된 제보와 반응을 쏟아내고 있다. 서울 소재 종합병원 한 간호사는 “오래된 악습이다 보니 간호사들이 당연하게 여겼었는데 모든 게 잘못되어 있었다. 이번 기회에 간호사들의 근무 환경이 조금이라도 나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청와대 게시판에 ‘전국 간호사 처우개선 청원’을 올린 A 씨는 “사건이 터지고 어떤 단체가 나선 게 아니라 현업에 있는 개개인이 순수한 목적으로 모인 학생간호사와 현직 간호사들이 이번 사안의 중요성을 널리 알리려 했다”며 “사실 대부분 내년 입사를 기다리고 있는 신규 간호사들로 이슈가 되는 것이 두렵다. 하지만 그런 만큼 간호사들의 처우 개선이 하루빨리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라고 밝혔다.
이 같은 논란에 성심병원 측은 당초 장기자랑 논란은 병원 내 직원들 화합을 도모하기 위한 연례행사일 뿐 간호사들의 참여를 강압적으로 지시한 적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논란이 일파만파 커지자 대책 강구에 나서는 모양새다. 성심병원 관계자는 “병원 내부에서 제기되고 있는 여러 주장에 대해 진위를 파악 중”이라며 “사실로 밝혀질 경우 개선안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한편 대한간호협회는 지난 13일 성명서를 발표하며 “내년에 가동할 ‘간호사인권센터’를 통해 간호사 특유의 태움 문화를 비롯해 임신순번제·성희롱 문제 등 인권침해 사례를 개선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협회는 또 센터 설립과 관련해 국가인권위원회와 업무협약(MOU)을 맺고, 간호사가 건강한 근무 조건에서 진료에만 집중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나가도록 제도 개선을 추진할 예정이다. 특히 인권문제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있는 전문상담원을 배치해 신변 노출 등으로 인한 2차 피해 예방에도 신경을 쓰겠다는 게 협회 측 설명이다.
김상훈 기자 ksanghoon@ilyo.co.kr
김진태 의원에 흘러들어간 후원금 “명백한 알선” 김진태 자유한국당 의원 강원도 선거관리위원회는 지난 13일 춘천성심병원 소속 수간호사 A 씨를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서면 경고’ 했다고 밝혔다. 선관위에 따르면 A 씨는 동료 간호사들을 상대로 김 의원에게 10만 원의 정치 후원금을 내도록 요구한 것으로 드러났다. A 씨는 지난해에는 김진태 의원실에서 작성된 후원금 안내문을 병원 내부 메일을 통해 일부 간호사들에게 보내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강원도 선관위 관계자는 “A 씨의 행위는 타인의 의사를 억압하는 방법으로 알선한 행위에 해당한다”며 “정치자금법에는 후원금을 알선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된 만큼 조사를 거쳐 서면 경고 조치했다”고 밝혔다. 한편,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지난 2월 공개한 ‘2016년도 국회의원 후원회 후원금 모금액’ 자료에 따르면 김진태 의원의 후원금은 3억 1844만 5044원으로 전체 국회의원 가운데 2위다. [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