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남부의 케랄라 주는 힌두교 국가인 인도에서 기독교 인구가 20%에 달하는 지역이다. 그런데 올 초 ‘인도 교회의 성지’라고도 불리는 케랄라의 가톨릭 교단을 발칵 뒤집어 놓은 사건이 발생했다.
케랄라의 한 수도원에서 26년간 수녀로 생활했으며 2년 전까지만 해도 가톨릭 재단의 한 대학에서 학장으로 재직한 제스메 라파엘(53)이 쓴 자서전 <아멘: 어느 수녀의 자서전>이란 책 때문이다. 180쪽 가득 이 지역 수도원에서 은밀하게 그러나 너무나 공공연하게 행해져온 성적 일탈과 각종 비리가 낱낱이 폭로되어 있다. 특히 저자의 체험을 바탕으로 아주 구체적으로 묘사된 신부와 수녀들의 성추행과 동성애 행각들은 보는 이들마저 낯 뜨겁게 할 정도다.
라파엘 수녀가 잠시 소속 수녀원을 떠나 인근 방가로르 시에 교육을 받으러 갔을 때의 일이다. 그곳에서 그는 영적인 가르침을 받기 위해 덕망 높기로 유명한 한 신부를 만났다. 그러나 사제는 뜻밖에도 신에 대한 사랑이 아닌 육체적 사랑의 중요성을 설파하며 라파엘을 자기 방으로 이끌었다. “그의 방으로 가자 그는 나를 애무하려 했다. 내가 저항하며 나가려고 하자 그는 화를 내며 남자를 만난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내가 아니라고 대답하자 그는 자기 옷을 벗으며 내게도 옷을 벗으라고 명령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라파엘 수녀가 막 수녀원 생활을 시작할 무렵 그는 같은 초보 수녀들에게서 이상한 모습을 발견했다. 수녀들이 가톨릭의 가장 기본적인 의무 중 하나인 고해성사를 꺼려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이유를 알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고해성사를 담당한 신부가 성서의 문구를 내세우며 초보 수녀들에게 ‘성스런 키스’를 강요해온 것이다. 물론 라파엘 수녀도 예외가 아니었다.
신부들뿐 아니라 수녀들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교사로 일할 당시 동료교사인 수녀가 밤에 그의 침실로 찾아왔다. 알고 보니 동성애자인 그는 라파엘을 상대로 온갖 음란한 행동을 했지만 막을 길이 없었다. 또 일부 선배 수녀들이 관례처럼 하급 수녀들에게 동성애를 강요하는 일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라파엘 수녀는 신에 헌신하기로 결심하고 수녀원에 머무는 내내 이렇게 온갖 성추행에 시달려야 했다. 영혼의 구원을 위해 수녀원에 들어왔으나 가장 성스러워야 할 수도원의 추악한 이면을 체험하며 오히려 극심한 정신적인 혼란과 고통을 느꼈다. 고민 끝에 그는 상급 수녀들에게 사실을 털어놓으며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그들은 가해자들을 처벌하기는커녕 라파엘 수녀를 정신이상자로 몰며 정신병원에 집어넣으려고 했다.
결국 라파엘 수녀는 26년간의 수녀로서의 삶을 포기하고 자신이 몸담았던 조직의 치부를 세상에 고발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는 당시의 정신적 고통을 ‘고문’에 비유하며 교회의 비리를 폭로하기 위해서라기보다 자신이 겪은 일들을 털어놓음으로써 이제라도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서 이 책을 썼다고 밝혔다.
그의 의도는 아니라 해도 <아멘>은 인도사회에 큰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직격탄을 맞은 가톨릭 교단에서는 라파엘 수녀가 거론한 문제들은 ‘일부 불량’ 성직자들에 국한된 개인사일 뿐이며 성직자도 ‘천사가 아닌 인간’이기에 실수할 수 있다는 어이없는 해명을 했다. 그리고 이 책이 ‘가톨릭 박해와 반사회적인 움직임의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주장을 펼치고 심지어 태연히 ‘우리도 다 아는 사실’이라며 책의 의미를 깎아내렸다.
책에서 라파엘 수녀는 종교계의 도덕 불감증 속에 방치되고 있는 각종 비리에 대해서도 지적하고 있다. 그는 교회나 수도원이 운영하는 학교를 둘러싼 각종 금품 거래와 돈 많은 수녀들은 특별대우를 받는 반면 가난한 수녀들은 각종 박해와 따돌림을 당하는 차별행태도 고발하고 있다.
현재 <아멘>은 초판 3000부가 다 팔려나가고 재판 인쇄에 들어간 상태다. 그런데 뒤늦게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이 책이 세상에 나오기까지의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고 한다. 집필 사실이 알려지자 일부 성직자들은 뇌물을 주며 집필을 포기하라고 종용했고 또 일부는 협박과 회유를 하기도 했다.
라파엘 수녀는 책에서 자신의 경험들은 특별한 경우가 아닌 ‘대부분의 수도원에서 비일비재한 일’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를 방증하듯 최근 케랄라를 중심으로 인도 가톨릭계에는 각종 성추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올 2월에는 케랄라의 한 수녀원에서 조세핀(38)이라는 수녀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우울증 치료를 받아왔으며 그의 죽음이 성추행 때문이었다는 주장이 제기돼 규탄시위가 열리기도 했다. 지난해 8월에도 23세의 수습 수녀가 자신의 대모인 상급 수녀의 성추행을 견디지 못하겠다는 유서를 남긴 채 목매 자살했다. 또 한 수녀는 운전수와의 성관계 장면이 휴대폰과 인터넷으로 유포되어 수녀복을 벗었으며 남부 코친 시의 주교는 26세의 여성을 양녀로 입양한 사실이 드러나 추문이 일자 순전히 ‘부성애’ 때문이라고 항변했으나 결국 해직된 후 재판에 회부되었다.
성직자들을 둘러싼 추문은 비단 인도 가톨릭계만의 문제도 어제오늘의 일도 아이다. 그러나 종교계가 이러한 사건들에 대해 은폐로 일관한다면 수녀와 신부들의 피해와 폭로로 이어지는 악순환은 나날이 심해질 것이다.
미국의 작가 오스카 와일드는 이런 말을 남겼다. ‘아름다운 육체에게는 쾌락이 있으나 아름다운 영혼을 위해서는 고통이 있다.’ 이러한 고통이야말로 유혹을 이겨내고 인류애를 실천하는 성직자들이 우리 시대의 영웅으로 추앙받는 이유다.
이예준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