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하시모토 류타로 전 총리가 취임한 후로 지난 13년 동안 자민당 출신의 세습 정치가 7명이 일본 총리를 역임해왔다. 이들은 스스로의 노력이나 고생 없이 선대의 후광과 인맥을 등에 업고 정계에 입문한 ‘도련님’ 정치가라는 공통점이 있다. 문제는 온실 안의 화초로 자라 현실 감각이 없고 난관을 극복하려는 패기나 근성이 부족하다는 데 있다. 일단 이들은 어렸을 적부터 권력과 경제력의 보호를 받으며 현실과는 동떨어진 세계에서 자란다. 그리고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지명도와 후원회, 선거자금, 인맥으로 정치계에 입문한 후 비슷한 성장배경의 ‘도련님’ 정치가들과 어울리며 자연스럽게 정계 고위층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힘들게 노력하여 얻은 자리가 아니라 가업처럼 이어받게 된 자리다 보니 조금만 힘들어도 미련 없이 떠난다. 그런데 한두 사람도 아니고 자질이 부족한 세습 정치가들이 이렇게 많은 이유가 무엇일까.
일본 정계에는 ‘도련님’ 정치가들을 양산해내는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다. 일단 세습 정치가들은 출발부터가 자수성가형 정치가들과는 확연히 다르다. 정계에 입문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문인 선거는 많은 인력과 자금을 필요로 한다. 일본에서는 이를 ‘지반(地盤)과 간판(看板), 가방’으로 표현한다. 지반은 선거구의 후원회, 간판은 (아버지의) 유명세 그리고 가방은 선거 자금을 나타낸다. 2세 정치가들의 경우 처음부터 인맥과 자금, 유명세 등 모든 것을 갖추고 시작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세습 정치가들은 이 시스템을 통해 정치가라는 가업을 물려받게 되고 또 다시 자녀에게 이를 물려주기 위한 준비에 들어가게 된다.
▲ 아베 신조 전 총리(왼쪽) 후쿠다 야스오 전 총리 | ||
현실과 동떨어진 ‘도련님’ 정치가의 결정판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인물이 아소 다로 현 총리다. 일관성 없이 제멋대로인 발언과 행실, 일반인들은 상상할 수 없는 금전감각으로 여러 차례 구설에 오르내렸지만 그가 태어나고 자란 환경을 생각하면 놀랄 일도 아니다. 알아주는 정계 명문가 출신인 아베 전 총리와 후쿠다 전 총리조차 아소 총리와 비교하면 소박하게(?) 보일 정도다. 요시다 시게루 전 총리의 외손자이자 아소 재벌의 후계자라는 화려한 배경과 함께 일본 왕실과도 사돈 관계에 있으니 그야말로 특권층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다.
그 일례로 아소 총리가 다니던 초등학교를 들 수 있다. 도쿄의 명문 사립학교로 전학 오기 전 아소 총리는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고향인 후쿠오카의 초등학교에 다녔다. 이 초등학교는 아소 재벌이 사원들을 육성하기 위해 지은 것으로 학생은 아소 총리를 포함하여 전교에 네 명뿐이었다. 나머지 세 명도 모두 아소 재벌 임원들의 자녀로, 사실상 아소 총리를 위해 지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뿐만이 아니라 어렸을 때부터 시작된 특별대우는 그 후로도 계속 이어졌다고 한다.
아소 총리의 취미 중 하나는 클레이 사격인데 일본대표로 몬트리올 올림픽에 참가했을 만큼 뛰어난 실력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그가 사격 선수로 활동하던 시절 ‘15초 룰’이라는 것이 생겼다고 한다. 아소 총리는 사격 시합에서 집중하는 데 지나칠 정도로 오랜 시간을 들였다고 한다. 일본 시합에서는 아무도 재촉하는 사람이 없었지만 국제 대회에 나가자 경기에 지장을 준다는 다른 선수들의 불만이 접수됐다. 이 때문에 생긴 것이 시합장에 들어가서 15초 내에 사격을 해야 한다는 ‘15초 룰’이다. 아소 총리의 유아독존적인 성격 때문에 모든 선수에게 적용되는 규칙이 새로 만들어진 것이다.
일반인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별세계에서 살아온 아소 총리에게 현실 세계의 경제 위기 극복을 기대하는 것 자체에 무리가 있는 것은 아닐까. 하물며 서민들의 절박한 고통을 알 리 만무하다.
아소 총리가 서민들을 위해 내놓은 정액급부금(경기부양책의 일환으로 국민들에게 직접 현금 지급) 법안을 둘러싸고 그동안 지급 대상이나 액수 등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었다. 결국 모든 국민에게 1만 2000엔(약 18만 원)을 주는 것으로 마무리되면서 지자체에 따라 빠른 곳에서는 3월 초부터 지급이 시작됐다. 지난 3개월 동안 정액급부금을 받을지 말지 고민하던 아소 총리는 지난 3월 2일 국민들과 마찬가지로 1만 2000엔을 수령한 후 곧바로 사용하여 소비 자극에 보탬이 되도록 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대로 끝났으면 좋았을 것을 끝부분에 “나 같은 사람이 (정액급부금을) 받는 것은 솔직히 구차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라고 발언한 것이 파문을 일으켰다. 이 한마디로 순식간에 정액급부금을 받는 국민들을 가난하고 구차한 사람들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이 발언에 대해 자민당의 간부는 “아소 총리에 대한 자민당 내의 지지는 ‘구차하다’는 한마디로 없어진 거나 다름없다. 자신이 제출한 법안을 밀기는커녕 스스로 부정하는 발언을 하다니 어이가 없다”며 씁쓸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박영경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