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존 데릭 워보이스 | ||
이것이 런던의 택시 ‘블랙캡’ 기사 존 데릭 워보이스(51)가 대도시 런던에서 수십 명의 여성들을 성폭행한 전형적인 수법이다.
지난 13일 열린 재판에서 워보이스는 “승객들에게 거짓말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육체적인 접촉은 없었다”며 자신의 혐의를 부인했다. 그는 2006년 10월부터 2008년 2월 사이에 저지른 6건의 성폭행, 1건의 성폭행 미수, 12건의 약물 투여 등 19개 혐의에 대해 유죄판결을 받았다. 선고 공판은 워보이스의 정신과 감정 이후인 4월 12일에 열릴 예정이다.
경찰조사에 따르면 ‘두 얼굴’의 택시기사 워보이스는 늦은 저녁부터 새벽 사이 웨스트엔드나 소호 등 술집과 클럽이 밀집된 런던 중심가에서 술에 취한 10대에서 30대 여성을 목표물로 삼았다. 그는 택시비를 깎아준다며 여성들을 차에 태운 다음 진정제나 수면제를 탄 술을 마시게 해 정신을 잃은 틈을 타 뒷좌석에서 여성들을 유린했다.
워보이스가 수년간 범행을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은 여성들에게 먹인 약물 탓이 컸다. 대다수 피해자들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하거나 기억이 희미해서 제대로 신고를 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사실 워보이스의 범행은 좀 더 일찍 막을 수도 있었다. 그는 2007년 7월 10대 소녀를 뒷좌석에서 끌어내리는 모습이 CCTV에 포착되어 체포됐으나 경찰은 그를 보석으로 풀어주고 말았다. 2008년 2월에 와서야 경찰은 피해소녀를 담당한 상담원의 요청에 따라 재수사에 착수해 워보이스의 집에서 샴페인, 콘돔, 진정제, 바이브레이터 등 ‘강간 장비’를 찾아내며 그를 검거했다. 그 사이 피해자가 7명이나 더 늘어난 후였다.
‘블랙캡’은 런던의 명물로 요금이 비싼 대신 안전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렇다 해도 젊은 여성들이 처음 보는 중년의 택시운전사의 꼬임에 쉽게 넘어갔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게다가 피해자는 언론인, 광고회사 중간간부, 명문대 학생 등 학력 수준이 높은 중산층 여성들이었다.
그러나 워보이스를 직접 만난 피해자들은 ‘누구라도 그럴만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그는 일단 가능한 ‘동정심’을 유발했으며 이 방법이 통하지 않을 때는 놀라운 ‘집요함’을 보였다.
피해여성 중 최연소로 2007년 사건 당시 19세이던 대학생 케리 시몬즈(21)는 워보이스의 택시에 타기는 했지만 샴페인은 받기만 하고 요령껏 택시 바닥에 버리며 마시지 않았다. 하지만 워보이스는 그에게 포르노 영화에 출연하거나 포르노 사진을 찍으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얘기를 늘어놓으며 끈질기게 술을 강요했다. 시몬즈가 자신은 ‘너무 어리다’며 계속 말을 돌리자 워보이스는 급기야 차를 세운 채 뒷자리로 와서 술을 권했다. 심한 압박과 불안을 느낀 시몬즈에게 그는 마지막으로 보드카 한 잔만 마셔주면 50파운드를 주고 곧장 집에 내려주겠다고 제안했다. 시몬즈는 어서 이 상황에서 벗어나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술을 들이켰다. 물론 그 이후 택시 안에서 무슨 일을 당했는지도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 요금이 비싼 만큼 안전하기로 유명한 런던의 ‘블랙캡’. | ||
밸런타인데이 밤에 친구와 함께 워보이스의 택시에 탔다가 간신히 위기를 모면한 나디아(가명)도 그의 끈질긴 요구에 넘어갈 뻔했다고 증언했다. 친구와 함께 있는 동안에는 아주 평범한 대화만 하던 워보이스는 친구가 먼저 내리고 외진 길로 접어들자마자 ‘섹스’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그에게 술을 권하기 시작했다. 나디아는 때마침 그를 마중 나온 남편이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그 역시 워보이스의 희생양이 되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성실 근면한 택시운전사’를 자처해온 워보이스는 월수입이 4000파운드(약 800만원)에 달하며 템스 강변에 위치한 52만 파운드(약 10억 3000만원)짜리 아파트와 토지를 소유한 상당한 재산가로 밝혀졌다. 현재는 이혼남이지만 2년 전까지도 일곱 살 연하의 여자친구를 사귀는 등 겉보기에는 모든 생활이 정상적이었다.
이렇게 안정된 생활을 하던 그가 어떻게 ‘영국 최악의 연쇄 강간범’이 된 걸까. 법정에 선 워보이스 본인은 어린 시절 어머니의 죽음을 겪은 충격으로 인한 애정결핍 때문이라고 호소했다. 한때 그가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강한 진정제를 처방받았고 이때 모아둔 진정제가 나중에 범행에 사용된 사실도 밝혀졌다.
성인이 된 워보이스는 20대에 몇 년간 런던의 클럽에서 ‘광부 테리’라는 별명을 가진 스트리퍼로 일했으며 ‘토니’라는 이름의 포르노 배우로 활동하기도 했다. 나중에 그는 직접 스튜디오를 차려놓고 포르노 영화를 직접 연출제작하기도 했다. 30대 후반에 접어든 그는 1996년부터 택시를 몰기 시작해 한동안은 포르노배우와 택시 운전을 병행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언론은 이번에 드러난 워보이스의 행각이 빙산의 일각이라고 보도하고 있다. 경찰도 그가 13년간 택시기사로 일한 점, 강간사건의 특성상 여성들이 신고를 꺼리는 데다 약물 때문에 신고가 어려운 점을 감안하면 여죄가 더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현재 추가 피해가 신고되면서 경찰은 2002년 이후 피해건수를 85건으로 공식 집계했으나 영국의 대중지 <더선>은 피해자가 200명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이예준 해외정보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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