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가르비에게 낚여 700만 유로를 뜯긴 주잔네 클라텐과 그의 남편. 이들 부부의 신고로 스가르비의 사기 행각은 만천하에 드러났다. | ||
지난 10여 년 동안 오로지 돈 냄새를 찾아 킁킁대며 헤매던 스위스 ‘제비’의 놀라운 사기 행각에 온 유럽이 떠들썩하다. 최근 뮌헨 법정에서 사기 및 공갈협박 혐의로 징역 6년을 구형 받은 헬크 스가르비(44)는 유럽의 내로라하는 사모님들을 상대로 몸과 마음 그리고 돈까지 갈취한 파렴치한이었다. 돈을 뜯어낸 후에는 알몸 사진이나 섹스 동영상을 유포하겠다며 여성들을 협박했던 그가 경찰에 체포된 것은 한 여성의 용감한 결단력 때문이었다. 바로 독일 최고의 여성 갑부이자 세계 60위 갑부인 BMW 상속녀 주잔네 클라텐(45)이 그 주인공이다. 스가르비에게 낚여 700만 유로(약 128억 원)를 뜯긴 그녀는 오랜 망설임 끝에 계속되는 협박을 참기보다는 당당하게 경찰에 신고하는 쪽을 택했다. 그렇게 해서 결국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제비의 사기 행각은 만천하에 드러났다.
지난 2007년 7월 여름.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의 최고급 호텔 리조트인 ‘란저호프’에서 홀로 휴가를 즐기고 있던 클라텐에게 훤칠한 키를 자랑하는 한 남성이 미소를 띠면서 다가왔다. 자신을 ‘국제분쟁 담당 스위스 특수대사’라고 소개한 이 남성은 비록 뛰어나게 잘생긴 외모는 아니었지만 다정다감하고 상냥했으며, 무엇보다도 클라텐의 말을 잘 경청해주는 자상한 사람이었다.
그렇게 친해진 둘은 곧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면서 가까워졌고, 급기야는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아니 적어도 클라텐은 그렇게 생각했다. 처음 만난 날부터 그는 클라텐에게 전화를 걸어 ‘사랑한다’고 속삭였으며, 꽃다발을 선물하는 등 그녀의 혼을 쏙 빼놓았다.
그리고 얼마 후, 뮌헨의 ‘홀리데이 인 호텔’에서 다시 만난 둘은 결국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이때부터 이들의 밀회는 세계 각지의 호텔을 돌면서 이어졌고, 클라텐은 오랜만에 느끼는 사랑의 감정에 온몸이 불타오르는 듯했다.
하지만 핑크빛 로맨스가 서서히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한 것은 불과 두 달이 채 되지 않아서였다. 미국으로 출장을 갔다가 돌아온 그가 다급한 목소리로 SOS를 보내온 것이다. 사연인즉슨 이랬다. “마이애미에서 운전을 하다가 어린 아이를 하나 치었다.
그런데 이 아이의 부모가 알고 보니 마피아 조직원이었다. 특수대사라는 내 신분상 재판까지 갈 수는 없고, 대신 합의금을 지불해야 하는데 돈이 모자란다. 그쪽에서 1000만 유로(약 180억 원)를 요구하고 있지만 300만 유로(약 55억 원)는 내가 마련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머지 700만 유로(약 128억 원)만 마련해달라.” 그리고 그는 “돈은 꼭 갚겠다”는 말을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처음에는 망설였지만 이미 사랑에 빠져있던 클라텐은 순순히 돈을 마련해주었다. 하지만 그의 요구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다시 두 달이 지나자 이번에는 남편과 이혼하고 자신과 새로운 삶을 시작하자고 부추기기 시작한 그는 급기야 둘의 앞날을 위해서 2억 9000만 유로(약 5300억 원)를 신탁기금에 예치해놓자고 제안하기에 이르렀다.
이혼까지는 생각하지 않고 있던 클라텐은 이런 제의를 반대했으며, 점차 이상한 낌새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휴대폰 통화내역을 조회하던 클라텐의 남편이 아내의 외도 사실을 눈치채고 말았고, 클라텐은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생각에 남편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 놓고 용서를 구했다. 그리고 스가르비에게는 조용히 전화로 결별을 통보했다.
이로써 모든 것이 마무리될 줄 알았지만 진짜는 이제부터였다. 어렵게 낚은 ‘대어’를 순순히 놓칠 수 없었던 스가르비가 서서히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당장 만나주지 않으면 ‘일’을 저지르겠다며 협박하기 시작한 그는 결국 “우리가 뮌헨 호텔에서 저지른 일을 기억하고 있겠지?”라는 말로 섹스 비디오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언급했다.
그러면서 그는 남편과 일가친척, BMW 이사진, 그리고 언론에 이 섹스 비디오를 보내겠다며 4900만 유로(약 940억 원)를 요구했다.과거의 다정했던 애인이 살벌한 협박꾼으로 돌변하는 순간이었다. 몰카에 찍혔다는 사실에 등골이 오싹해졌지만 클라텐은 순순히 그의 협박을 들어주지는 않았다. 그녀가 꿈쩍도 하지 않자 그는 다시 액수를 대폭 낮춰 1400만 유로(약 257억 원)를 요구했다.
▲ 제비의 추락 스위스 제비 헬크 스가르비는 최근 뮌헨 법정에서 사기 및 공갈협박 혐의로 징역 6년형을 구형받았다. | ||
그러면서 그는 남편과 일가친척, BMW 이사진, 그리고 언론에 이 섹스 비디오를 보내겠다며 4900만 유로(약 940억 원)를 요구했다.과거의 다정했던 애인이 살벌한 협박꾼으로 돌변하는 순간이었다. 몰카에 찍혔다는 사실에 등골이 오싹해졌지만 클라텐은 순순히 그의 협박을 들어주지는 않았다. 그녀가 꿈쩍도 하지 않자 그는 다시 액수를 대폭 낮춰 1400만 유로(약 257억 원)를 요구했다.
결국 클라텐은 남편에게 섹스 비디오에 대해 털어놓았고, 부부는 오랜 고심 끝에 경찰에 신고하는 쪽으로 일을 마무리 지었다.이렇게 함으로써 결국 스가르비의 오랜 사기 행각도 마침표를 찍게 됐다.비록 클라텐 본인은 이번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망신과 굴욕을 당했지만 사람들은 오히려 그녀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있다.
아닌 게 아니라 그동안 그에게 걸려 들고도 수치심 때문에 속으로만 끙끙 앓고 있던 여성이 한 둘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만일 이들이 제때 신고만 했더라도 제2, 제3의 피해자는 없었을 것 아니냐는 것이다. 때문에 그가 지금까지 몇 명의 사모님들을 울렸는지, 또 얼마나 많은 돈을 뜯어냈는지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는 상태다.
단지 최소 다섯 명이라는 점, 그리고 수천만 유로는 된다는 사실뿐이다.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스가르비의 과거는 가히 ‘세기의 카사노바’라고 불러도 무방할 만큼 화려하고 요란했다. 그에게 걸려든 여성들은 모두 나이가 많은 중년 혹은 노년의 여성들이었으며, 상당한 재산을 보유한 재력가들이었다.
스가르비는 일부러 이런 여성들만을 골라 작업을 걸었으며, 이런 그를 가리켜 친구들은 “그는 여성들을 유혹하는 데 동물적 감각을 타고났다”고 말했다. 가령 클라텐을 유혹했던 ‘란저호프’ 리조트에서도 그의 동물적 감각은 빛을 발했다.
사모님들에게 한두 마디만 던져도 금세 재정상태를 꿰뚫을 수 있을 만큼 눈치가 빨랐으며, 어찌나 교묘한지 대부분의 여성들은 자신들이 낚이고 있다는 사실조차 눈치채지 못했다. 그는 사모님의 지갑이 자신이 원하는 만큼 두둑하다 싶지 않으면 단번에 돌아섰고, 반대인 경우에는 어떻게든 달라붙어서 떨어지지 않았다.
지금까지 가장 크게 걸려들었던 사모님들 가운데 한 명은 스위스의 귀족 부인이었던 83세의 꼼떼스 베레나 두 빠스끼에-괴벨이었다. 지난 2001년 몬테카를로의 ‘호텔 드 파리스’에서 처음 스가르비를 만났던 그녀는 비록 억만장자였지만 매일매일이 지루하고 답답한 외로운 노인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30대 중반의 젊은 남자가 다가와 사랑을 속삭인다면 어떻게 될까. 결과는 뻔했다. 늘그막에 자신을 보호해줄 남자가 절실히 필요했던 그녀는 손주뻘 되는 스가르비에게 온 정신을 팔리고 말았다. 진심으로 이 젊은이를 사랑하게 된 그녀는 결국 그와 동거를 시작했고, 그가 바라는 건 무엇이든 들어주었다.
심지어 귀족가문의 문장이 새겨진 약혼반지까지 선물했는가 하면, 만일을 대비해서 사람은 항상 비상금을 갖고 있어야 한다며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현금 55만 유로(약 10억 원) 가운데 절반이 넘는 36만 유로(약 6억 6000만 원)를 그에게 맡겨 놓기도 했다. 물론 그가 이 돈을 금고에만 잘 보관하고 있을 리는 만무했다. 이 돈으로 그는 벤츠, 지프 체로키 등 고급 승용차를 구입하는 등 온갖 사치를 부렸다. 전직 은행가였던 그는 돈을 어떻게 다룰 줄도 잘 알고 있었다.
이 점을 이용해 그녀를 대신해서 재산을 관리하고 있었던 그는 리히텐슈타인의 펀드를 해지하고 찾은 2790만 스위스 프랑(약 330억 원)을 고스란히 자신의 계좌로 송금했다. 그것도 모자라 얼마 안 가 또 돈이 바닥나자 이번에는 다른 거짓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는 “사고를 쳤는데 마피아가 돈을 보내지 않으면 해를 입히겠다며 협박했다.
당장 200만 프랑(약 24억 원)을 보내야 한다”고 말했다. 거짓말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고, 다음에는 300만 프랑(약 36억 원)에 롤렉스 시계까지 요구했다.애인을 잃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이 늙은 부인은 의심도 하지 않고 계속해서 돈을 대주었다. 그녀는 “그는 나를 사랑한다고 말했다. 죽는 날까지 내 곁에 있어주겠다고 약속했다”고 말하면서 그의 사랑을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하지만 결국 꼼떼스의 친구에 의해 꼬리가 잡혔던 그는 2001년 사기 및 공갈협박, 절도 혐의로 체포되었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절대로 꿍꿍이 같은 건 없었다. 내가 바라는 건 오로지 그녀 옆에 있어주는 것이었다”며 결백을 주장했다. 그가 ‘빌렸다’고 주장한 돈의 일부를 갚자 마음이 아팠던 부인은 결국 고소를 취하했고, 이듬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이밖에도 그가 던진 그물에 걸려든 여성들은 많았다. 한 번은 64세의 스위스 갑부 여성과 2년 동안 밀회를 즐겼던 그는 그녀에게서 모두 약 200만 유로(약 36억 원)를 갈취했으며, 또한 영국의 한 갑부 여성에게서도 수백만 유로를 받아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사모님들의 주머니를 턴 돈으로 그는 뭘 했을까.
고급 승용차나 주택을 구입하는 등 사치를 부리는 것 외에도 그는 자신이 믿고 있던 사이비 종교단체의 지도자이자 공범인 에르나노 바레타(64)에게 상당한 액수를 바쳤다. 경찰이 바레타의 저택을 수색한 결과 출처가 불분명한 현금 1억 6115만 유로(약 3000억 원)가 발견되기도 했으며, 소유하고 있는 자동차만 무려 60대인 것으로 조사됐다. 현재 바레타는 스가르비의 범행을 뒤에서 조종한 혐의로 곧 재판을 받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