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광석 씨의 아내 서해순 씨가 딸 서연 양의 사망 의혹과 관련해 조사를 받기 위해 12일 오후 서울 내자동 서울지방경찰청에 출석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박정훈 기자
무혐의 발표 뒤에도 ‘연쇄살인범’ ‘돈에 눈이 먼 악마’라는 낙인에서 벗어나지 못한 가수 고 김광석의 처 서해순 씨(52)는 이제 반격을 시작하고 있다. 그리고 반격의 칼날은 그에게 이 같은 낙인을 찍었던 이상호 고발뉴스 기자와 고 김광석의 형 김광복 씨, 그리고 이들을 지지했던 대중들을 정조준했다.
서 씨의 반격에 함께한 변호인은 이번 ‘고 김광석 의문사 재조명’ 사건에서 이상호 기자를 향해 연일 “이상한 도박을 하고 있다” “너절리즘의 진수”라며 강도 높은 비난을 이어왔던 박훈 변호사다. 박 변호사는 영화 <부러진 화살> 속 변호사의 실제 모델로도 유명하다.
박 변호사가 처음부터 서 씨의 완전무결한 결백을 주장한 것은 아니었다. 지난 9월 21일 그가 처음으로 고 김광석 사건에 대해 언급한 글에서 박 변호사는 “서해순이 분명 나쁜 사람인 것은 맞는 것 같지만, 그렇다고 그가 남편과 딸을 죽인 살인범이라고 대중적으로 몰고 가는 것은 정말로 아닌 것 같다”라고 지적했던 바 있다. 서 씨에게 사건과 관련해 다소 미심쩍은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일지라도 그것만으로 그를 마녀사냥 할 수 없다는 주장이었다. 박 변호사는 서 씨의 사건을 정식으로 수임한 뒤에도 이 같은 마녀사냥을 ‘광풍’으로 지적해 왔다.
영화 ‘김광석’ 포스터.
먼저 유기치사 혐의의 수사에서, 염색체 이상 등으로 발생하는 희소병인 가부키 증후군을 앓고 있었던 서연 양의 사인은 급성폐렴으로 재확인됐다. 가부키 증후군으로 면역력이 약화된 상태에서 단순한 감기의 폐렴 진행 속도가 빨라질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의견도 더해졌다. 딸이 숨지기 전에도 감기약을 먹였다는 서 씨의 진술대로 서연 양의 시신 부검 결과 혈액에 감기약 성분이 나오기도 했다.
양육 과정에서도 모녀 간 별다른 갈등도 발견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서 씨가 서연 양의 검사와 치료를 위해 지속적으로 국내외 병원 진단을 받아온 사실이 드러났다. 갑작스러운 폐렴으로의 병세 악화를 눈치 채지 못했을 수는 있어도, 아픈 딸을 방치해 숨지게 한 비정한 어머니라고 결론지을 수 없다는 것이 경찰의 입장이다.
소송 사기의 경우 박 변호사는 경찰이 정식으로 수사에 착수하기 전부터 “애초에 성립할 수 없다”고 꼬집었던 바 있다. 그는 “(유족들이 문제 삼는) 소송의 원고가 (고 김광석의 아버지) 김수영의 부인과 김광석의 형 김광복이었다. 소송 사기는 원고가 하는 것이지 피고가 하는 게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더욱이 고 김광석의 정당한 법적 상속권자가 서 씨와 딸 서연 양이라는 점은 대법원에서 명백하게 드러났다는 것이 박 변호사의 설명이다. 승소한 서 씨의 입장이라면 권리 주장이 배척된 고 김광석의 유족들과 굳이 조정을 할 필요도 없었지만 파기환송심에서 조정에 참여해 성립을 이끌어 냈다는 것이다. 여기서 박 변호사는 “서연 양이 사망한 사실을 미리 알았더라면 조정에 응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유족들의 주장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애초에 조정에 응하지 않는다면 대법원 판결대로 유족들에게는 어떤 권리도 돌아가지 않기 때문이다.
경찰 수사가 무혐의로 결론 내려지면 남은 것은 본격적인 반격의 진행 상황이다. 지난 13일 박 변호사는 서울서부지방법원에 이상호 기자와 김 씨를 상대로 영화 <김광석>의 상영금지, 서 씨에 대한 비방금지 등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비방금지의 경우 서 씨를 비방하는 일체의 언행을 고발뉴스는 물론, 타 언론매체와 심지어 SNS를 통해서도 기사화할 수 없도록 요청한 상태다.
또 명예훼손 행위에 대한 손해배상으로 이상호 기자에게 3억 원, 김 씨에게 2억 원, 고발뉴스에게 1억 원 등 총 6억 원을 청구했다.
14일에는 박 변호사가 직접 서울지방경찰청을 방문해 이상호 기자와 고발뉴스, 김 씨에 대해 출판물 등에 의한 명예훼손,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명예훼손), 무고 혐의 등으로 고소장을 제출했다.
박 변호사는 피소된 직접 관계자들 외에도 이상호 기자의 의견에 특별히 동조했던 언론인과 국회의원에게도 강경히 대응할 방침을 밝혔다. 여기서 영화 <김광석>에 이어 ‘김광석 법’ 청원과 발의에 관여한 더불어민주당 안민석 의원의 이름이 거론됐다. 김광석 법은 공소시효가 만료된 살인사건에서 재수사에 착수할 만한 중대한 단서가 발견돼 진실규명이 가능하다고 판단될 경우 공소시효를 적용하지 않도록 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법안이다.
이상호 고발뉴스 기자, 더불어민주당 안민석 의원, 정의당 추혜선 의원이 발의, 지지하는 ‘김광석 법’ 청원 화면.
안 의원은 정의당 추혜선 의원과 함께 김광석 법을 이끈 양대 축이자 법안의 ‘얼굴’이기도 하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서 이름을 떨쳤던 그가 또 다른 뜨거운 감자인 고 김광석 의문사 사건에 앞장서 법안 발의를 지원한다는 데에 많은 지지자들이 모이기도 했다.
안 의원 역시 이런 지지자들의 성원에 힘입어 의혹에 더욱 불을 지폈다. 실제로 서연 양의 사망 사실이 뒤늦게 밝혀진 후 자신의 SNS에 “어린 딸이 아파서 죽었는데 빈소를 차리지 않은 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리고 왜 10년 간 딸의 죽음을 숨겼을까? 김광석의 팬들은 서해순 씨의 해명을 갈망한다”라며 이상호 기자가 제기한 의혹에 힘을 싣기도 했다. 서연 양이 이미 사망한 채 병원으로 이송됐다는 제보를 공개한 것 역시 안 의원이었다. 서 씨로서는 이와 같은 안 의원의 앞으로의 행보에 대해서 주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안민석 의원실 관계자는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김광석 법 제정 기자회견에 참여한 것은 맞지만 대표 발의자는 추혜선 의원이다. 그 뒤로 법안 진행 여부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하며 관여하지 않는다”라며 “(서 씨 측이) 안 의원을 고소한다거나 앞으로 주시하겠다고 언급했다는 것도 전혀 들은 바가 없다. 다만 안 의원의 SNS에 작성된 글을 이번 사건에 대한 공식입장으로 보시면 될 것 같다”고 답변했다. 안 의원은 지난 11일 자신의 SNS에 “서해순 씨를 무혐의 내린 경찰 결정을 존중하지만 서해순 씨의 말에 진실이 있다고는 믿기 어렵다. 진실을 추적하는 이상호 기자를 응원했던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다.
한편 박훈 변호사는 이번 고소와는 별개로 김광석 법 그 자체에 대해서도 강한 불쾌감을 나타냈다. 그는 “김광석 법은 서 씨가 김광석을 타살했다는 의혹을 전제로 하는 것”이라며 “김광석 법 청원 운동을 계속하거나 그 이름을 붙인다면 추진하는 사람들과 청원 네티즌들에 대해서도 적절한 법적 조치를 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서 씨 역시 한 인터뷰에서 “법의 취지에는 동의하지만 그 법에 김광석 씨의 이름을 쓰는 것은 망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라고 밝힌 바 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