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은행연합회는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이사회를 열고 차기 회장 후보군을 구성했다. 이날 이사회에는 하 회장을 비롯해 이동걸 산업은행장, 이경섭 NH농협은행장, 윤종규 KB국민은행장, 위성호 신한은행장, 함영주 KEB하나은행장, 박종복 SC제일은행장, 빈대인 부산은행장 등 8명이 참석했다.
차기 은행연합회장 후보로 거론되는 홍재형 전 경제부총리(왼쪽 세번째)가 민주당 인사들과 함께한 모습. 박은숙 기자
이들은 이 자리에서 각자 차기 회장 후보를 개별 추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사회 멤버 중 김도진 IBK기업은행장과 박진회 한국씨티은행장, 채용 비리 사태로 사의를 표명한 이광구 우리은행장 3명은 불참했다.
이날 차기 회장 후보로 추천받은 인물은 기존에 거론됐던 홍재형 전 부총리와 김창록 전 산업은행 총재, 윤용로 전 외환은행장, 신상훈 전 신한금융 사장, 민병덕 전 KB국민은행장, 이종휘 전 우리은행장 외에도 이장호 전 BS금융지주(현 BNK금융지주) 회장도 언급됐다.
이 전 회장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부산상고 동문으로 대표적인 참여정부 사람으로 분류된다. 박근혜 정부 출범 초기에 금융당국으로부터 BS금융 회장직 퇴진을 요구받아 임기를 남겨두고 퇴임한 바 있다. 다만 이 전 회장은 엘시티 사태에 연루돼 지난달 1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아 자격이 미달된다. 이 전 회장은 이영복 엘시티 회장으로부터 부정청탁과 상품권 수수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았다.
홍 전 부총리는 1994~1995년 부총리 겸 초대 재정경제원 장관을 지내고 16~18대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그는 지난 10월 31일 손해보험협회장에 재무부 출신 관료가 선임됨에 따라 한때 은행연합회장 유력 후보로 부상하기도 했다.
김창록 전 총재는 행시 13회로 공직에 발을 들였다. 재무부, 재정경제원, 금융감독원 등을 거쳤으며 최근에는 코리안리와 한화의 사외이사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윤 전 행장은 행시 21회 출신으로 재무부, 재경부, 금융감독위원회를 거치고 중소기업은행장, 외환은행장, 하나금융지주 기업금융부문 부회장 등을 지냈다.
이들은 재무부 출신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홍 전 부총리와 김 전 총재의 경우 ‘OB(올드보이)’라는 공통점도 있다. 이 때문에 옛 인물이 수장이 돼 빠르게 변화하는 금융환경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지, 정부 또는 정치권의 입김에 휘둘리지 않을지 의구심이 일고 있다.
김창록 전 산업은행 총재도 차기 은행연합회장 후보로 거론된다. 연합뉴스
이런 우려는 지난 국정감사에서도 제기됐다. 지난 10월 30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감에서 최운열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금 핀테크 시대인데 언론에 거론되는 분들은 20년 전에 금융을 담당했던 분”이라며 “이들이 아무리 역량이 뛰어나도 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까”라고 의문을 표했다.
최근 손해보험협회에 이어 은행연합회까지 재무부 출신 올드보이가 수장에 오르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자 민간 출신 인사들도 거론되고 있다.
우선 신상훈 전 사장은 2010년 이른바 ‘신한 사태’에 휘말려 퇴진하고 당시 경영자문료 횡령, 금융지주회사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됐다. 올해 3월 일부 횡령 혐의만 제외하고 무죄가 확정됐다. 신 전 사장은 우리은행 사외이사로서 차기 우리은행장 후보로도 거론된다. 신한은행 내부에서는 신 전 사장이 차기 회장으로 선임될 경우 ‘신한사태’의 앙금을 풀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쟁쟁한 인물이 수두룩한데도 이날 이사회는 ‘적임자가 없다’는 분위기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한 시중은행장은 “구체적인 논의라기보다 차기 회장 후보를 추천받는 자리였다”며 “이미 언론에서 거론된 후보군이 이날 이사회에서도 추천된 것은 ‘할 만한 사람이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하 회장의 임기 만료까지 아직 시간이 있어 각 후보들에 대해 잘 생각해보겠다는 게 이날 이사회에 참석한 은행장들의 입장”이라고 밝혔다. 하 회장 역시 이사회가 끝난 뒤 “차기 회장은 행장들이 뽑는 것이어서 최대한 의견을 반영해 결정할 것이며, 오늘은 후보 추천만 받았을 뿐 구체적인 논의는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금융권에서는 정기 이사회 직전까지 새로운 후보가 부상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문재인 정부 첫 금융감독원장으로 최흥식 서울시립교향악단 전 사장이 급부상했던 전례가 거론된다. 금감원장 자리는 당초 김조원 전 감사원 사무총장이 ‘내정자’로 거론됐지만 지난 9월 8일 청와대는 “문재인 대통령이 최흥식 사장을 금융감독원장으로 임명했다”고 전격 발표했다. 하루아침에 뒤집힌 결과를 두고 “내리꽂았다”는 표현이 나올 만큼 전례 없는 인선으로 평가됐다. 금융권은 은행연합회 회장 인선도 막판까지 누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는 의견도 나온다.
대형 은행 고위 관계자는 “이사회 멤버들이 추천 인물은 소위 자신들이 ‘미는 사람’”이라며 “그래놓고도 마땅한 사람이 없다는 평가를 했다는 것은 이사회 추천이 요식행위에 불과하다는 방증 아니겠느냐”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정기이사회 때 그간 언론에 거론되지 않았던 새 인물이 쇼트리스트에 들어간다면 결국 ‘그 사람’이라는 의미일 가능성이 크지 않겠느냐”고 내다봤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