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우당기념관에서 이종찬 전 국정원장을 만나 인터뷰했다. 최준필 기자
MB정부 국정원뿐만 아니다. 박근혜 정권에서는 ‘문고리 3인방’이었던 이재만·안봉근 전 비서관이 문제가 되고 있다. 국정원 고위 간부들로부터 특수활동비를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정부 국정원에서는 어땠을까. DJ정부에서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를 국가정보원으로 바꾸고 개혁을 진행했던 정치 원로 이종찬 전 국정원장을 지난 15일 우당기념관에서 만났다. 초대 국정원장인 그는 ‘다른 것보다 국정원의 본연의 기능이 떨어트린 게 가장 큰 죄다’라고 분개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초대 국정원장으로서 최근 국정원 일련의 사태를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나.
“국정원은 계속 개혁과 후퇴가 반복됐다. 그럼에도 지금 상황은 지나치다고 생각한다. 정보를 사용하시는 분이 국정원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모른다. 그래가지고 나라의 통치를 어떻게 했는지 위기감을 느낀다. 국가 정보가 뭔지도 모르고 정보를 사적인 정치적 도구로 활용했다면 정말 위험한 것이다.”
―국가 정보를 뭐라고 생각하나.
“국가 정보는 우리나라를 지키기 위해 국내외에 위협 요소를 사전에 알아내고 국가 정책에 조기 경보를 주는 거다. 정책을 만드는 곳은 아니다. 다만 정책을 만드는 각 부처에 ‘이런 위협이 닥치고 있다, 이런 것이 앞으로 위기다’ 등의 조기 경보를 해준다. 그걸 해야 할 사람이 딴 걸 하면 그 본연의 기능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 그럼 국가 안보를 저해하는 결과가 된다.”
―특수활동비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있다. DJ 정부에서는 어땠나.
“지금 보도를 보면 특수활동비는 다른 사람이 쓰면 안 되는 걸로 비춰지는데 그건 아니다. 대통령도 특수활동비를 쓸 수 있다. 예를 들면 대통령이 외국과 교섭하는데 공식적인 경비 이외에 일일이 밝힐 수 없는 돈을 쓸 데가 있다. 그럴 때는 특수활동비를 써야 한다. 외무 장관도 쓸 수 있고 다른 장관도 쓸 수 있다. ‘이런 활동을 하러 가는데 공식적으로 밝히기 어렵다’고 장관이 국정원장에게 이야기해서 특수활동비 가져갈 수 있다. 사용자가 누구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떤 목적에 썼느냐가 중요하다. ‘특수활동비는 대통령이 못 쓴다’ ‘뇌물이다’ ‘상납했다’ 이렇게 일도양단으로 평가하면 그 그림 자체가 잘못된 그림이다. 다만 국가 돈을 엉뚱하게 잘못 썼다면 처벌도 받고 경우에 따라서는 변상도 해야 한다.”
―국정원 특활비를 청와대 수석에게 상납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당시에도 그런 일이 있었나.
“그건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그때 말하자면 내가 DJ 최고 측근인데 누구한테 상납을 하나. 박근혜 전 대통령이 사람을 안 만나고 문고리 3인방만 앞세우니까 그런 이야기가 나온다. 그건 박근혜 전 대통령 운용의 잘못이다.”
―일각에서는 국정원이 지나치게 투명해지고 모든 돈을 다 공개하면 정보 활동을 하기 어려워진다는 주장도 있다.
“물론이다. 그런 요소도 있다. 만약 떳떳하다면 수사과정에서 국가 기밀은 언론에는 비공개해달라고 요청하고 목적을 공개하면 된다. 다만 사적으로 사용한 것도 국가 기밀을 핑계로 공개하지 않는 것은 잘못됐다.”
―북한에서 대남 여론전을 하기 때문에 댓글을 달 수밖에 없었다는 말도 나온다.
“북한에서 만약 댓글을 단다고 해도 대응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북한이 댓글 단다고 우리가 꼭 댓글로 대응할 이유는 없다. 댓글은 우리 국민들을 두고 ‘당신들은 무식하니까 가르쳐줄게’ 같은 오만함이다. 우리 국민은 그렇게 판단력이 없지 않다. ‘사람들이 좌경화된다. 이 놈들 생각을 바꿔야겠다.’ 그건 김형욱 중앙정보부장 시절 생각이다. 그때도 실패했다. 근데 이제 와서 왜 또 회귀하려고 하나.”
이종찬 전 원장은 “국정원을 개혁하되 기능은 살려야 한다”며 “운용의 문제일 뿐, 제도의 문제는 아니다”라고 했다. 최준필 기자
―역대 국정원장들 상당수가 논란의 대상이 됐다. 어떤 국정원장을 뽑아야 한다고 생각하나.
“프로가 해야 한다. 지금 보면 제일 잘못한 게 프로들이 안했기 때문이다. 서훈 국정원장은 잘 뽑았다. 정보기관에 일생을 바친 사람이다. 사람도 점잖다. 국정원 구성원을 서울시 공무원 다루듯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국정원을 완전히 버려놨다. 정보활동이란 건 한 사람이 같은 자리에서 몇 십 년씩 집중적으로 해야 한다. 중요한 소스에 그 사람이 파고들려면 몇 십 년이라도 있어야 한다. 어쩌면 정년이 돼도 정년연장까지 하면서 써야 한다. 그런 전문가들을 많이 꽂아놔야 강한 정보기관이다. 근데 원 전 원장이 부임해서 순환보직을 하면서 마구 흩뜨려 놓았다. 그게 말 못하게 큰 손실이다. 돈 받고 댓글 달고 그런 거보다 근본적으로 국가정보를 약화시켰다. 국가적으로 손실을 따지면 훨씬 더 큰 손실이다. 인사권자가 인사했다는 것으로 범죄가 될 순 없지만 그게 더 큰 잘못이다.”
―지금 생각했을 때 가장 아쉬운 건 무엇인가.
“DJ 정부는 국정원장을 너무 많이 바꿨다. 개혁 의지를 가진 사람이 5년 내리 했으면 길을 잡아 놨을 거 아닌가. 적임자에게 5년이 아니라 정권이 바뀌어도 계속 맡기는 운용이 필요하다.”
―국정원에서 정치권으로, 다시 국정원장으로 갔다. 계기가 무엇인가.
“사실 나 같은 사람이 다시 가는 건 좋지 않다. 정치에 몸담았던 사람이 가면 정치가 몸에 배었기 때문에 부지불식간에 정보기관이 정치적으로 물들 수 있다. 그래서 나도 DJ가 국정원장에 임명할 때 적절치 않다고 했다. 하지만 DJ가 납치, 공작 등을 당한 기억 때문에 정보부에 대해 트라우마 반응이 있었다. 그래서 DJ도 ‘오래 하라는 얘기 아니다. 당신이 제일 잘 아니까 개혁해 달라’고 했다.
―부임해서 어떤 개혁을 했나.
“이름을 바꿨다. 국가정보원을 영어로 보면 옛날에는 Agency였다. 다스린다는 뜻이 내포돼 있다. 그래서 국민에게 봉사하라는 의미로 Service로 바꿨다. ‘부훈도 정보는 국력이다’로 바꿨다. 정보활동이 국력을 신장하기 위한 거다. (국정원은 부훈을 2008년 ‘자유와 진리를 향한 무명의 헌신’, 2016년 ‘소리 없는 헌신, 오직 대한민국 수호와 영광을 위하여’로 바꿨다) 지금 보면 소리 없는 헌신이라고 하는데, 그 헌신을 누구에게 했나. 국력을 신장하기 위한 정보활동이 아니라 개인에게 충성하기 위해 했다. 안타깝다.”
―DJ는 국정원장에게 어떤 점을 강조했나.
“주로 대북문제였다. 북한이 DJ의 햇볕정책에 대해 어떤 반응을 하는지 궁금해 했다. 또한 당시 북한이 당시 핵을 동결시키기로 한 합의를 잘 지키고 있는지도 체크했다. 미국에서도 양론이 있었다. 동결을 하고 있다는 쪽,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쪽. 그래서 DJ가 나를 불러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 시간을 달라고 하고 우리를 속이기 위해 위장을 했다고 보고를 한 기억이 있다. 이렇게 국정원의 본연의 임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게 대북 정보다. 이걸 소홀히 하고 댓글 달았으면 반역이라고 볼 수 있다.”
―국정원의 개혁 방향은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국가정보원을 왜 만들었나. 그 목적에 맞게 부려야 한다. 지금 개혁의 방향엔 국정원을 분리시킨다는 말도 나온다. 그렇게 갈랐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나. 제도의 문제가 아니다. 예를 들어 자유당 때는 모든 정보 활동을 경찰이 했다. 그런데 3·15 부정선거를 경찰이 했다. 내무부 장관, 치안국장이 부정선거로 기소됐다. 그래서 중앙정보부로 가져왔다. 그렇게 해서 문제가 해결됐나. 운용한 사람의 문제일 뿐, 제도가 문제는 아니다. 개혁을 하되 기능은 살려야 한다. 운용의 문제를 자꾸 제도로 접근하면 고쳐지지도 않을뿐더러 교각살우(쇠뿔을 바로 잡으려다 소를 죽인다)가 될 수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잘못한 게 국정원장을 안 만난다고 한 점이다. 만나야 한다. 미국 대통령도 아침마다 제일 먼저 만나는 사람이 DNI(미국 국가정보국) 원장이다. 길게 만날 필요도 없다. 세계가 돌아가는 상황, 대통령이 관심 둬야 할 부분을 보고하고 나오면 된다. 세계를 향해 항해를 하는데 암초가 앞에 있고, 날씨가 나빠지면 예보를 해줘야지 사고가 나지 않을 거 아닌가. 여태까지 국정원이 비밀리에 사적인 활동만 했다고 안 만난다는 건 잘못됐다. 내가 국정원장일 때는 DJ를 매일 만났다. 당시에는 정보화시대로 넘어가는 시기에 우리 정부가 앞장서자는 의미에서 청와대 비서관에게 내가 보고할 때는 모니터를 준비해달라고 했다. 정부 운용을 PC로 전부 바꾸는 게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국정원장으로 근무하며 기억에 남는 일이 있나.
“나도 실수 할 때가 있다. 정치에 물들어서 민감한 문서를 DJ에게 보여준 적이 있다. 이 양반이 딱 보더니 ‘이 원장 우리 이런 거 안 하려고 개혁한 거 아니오’라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등에서 땀이 나더라. ‘제가 잘못 판단했다. 이건 거둬 들이겠다’고 한 적이 있다. 사람이 깜빡할 수 있다. 그때 상호견제를 해줘야 한다. 대통령과 국정원장이 서로 보완해가면서 올바른 길로 가야 한다.”
―정치원로로서 최근 적폐청산은 어떻게 보나.
“적폐청산을 한꺼번에 쏟아내니까 막 아우성이 나온다. 근데 이건 진통이다. 어차피 대통령 임기 초기에 적폐청산 안하면 또 안된다. 눈 질끈 감고 해야 한다. 다만 잘 가려서 해야 한다. 예를 들면 국정원을 조각내면 안 된다. 조각내면 기능이 약화된다. 적폐청산의 목적이 본연의 기능 강화 아닌가.”
―지시가 내려와서 어쩔 수 없이 했다는 사람들도 있다.
“차라리 사표를 내고 나오는 게 낫다. 문성근 합성사진 만든 사람도 후회를 하던데 그때 거부했어야지. ‘이건 아닙니다. 이런 짓을 하면 국정원이 뭐가 됩니까’하고 나왔어야 한다. 불이익을 주면 당할 수도 있지만 나중에 명예회복이 될 수도 있다. 지금 윤석열 검사가 그런 케이스 아닌가. 역사의 평가를 받을 생각을 해야 한다. DJ와도 의견 충돌이 있었고 논쟁을 했다. 무조건 따라선 안된다.”
―문재인 정부에 한 마디 당부한다면.
“개혁 속도를 높이는 건 불가피하다. 그래도 조금 스마트했으면 좋겠다. 대통령 비서실장이 청와대 캐비닛 문서를 들고 나오면 마치 적폐청산을 청와대에서 다 지시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게 된다. 적폐청산의 방침만 만들어주고 집행은 검찰이나 다른 기관에 다 맡겨야 한다. 탈원전도 명령식이 아닌 장기계획을 세워서 진행해 나가야 한다. 정책을 이야기할 때 어떤 부작용이 있는지 다 감안하고 판단해서 진행해야 한다. DJ 때도 IMF 졸업을 지나치게 서두른 게 아쉽다. IMF를 해결했다, 돈을 모두 갚았다고 끝나는 게 아니라 제도 개혁을 더 진행했어야 한다. IMF 졸업 조기 달성을 위해 서두른 측면이 있다. 그런 점을 감안했으면 좋겠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
국정원 개혁 진두지휘 이종찬 전 원장은 누구? 동교동계 아닌 DJ 최측근, 하나회 아닌 육사 출신 이종찬 초대 국정원장은 대한민국의 군인이면서 정치인으로 유명하다. 제5공화국 당시 민주정의당 원내총무(지금의 원내대표)를 지냈으며, 국민의 정부 시절에는 안기부장으로 부임해 국정원으로 이름을 바꾸고 개혁을 지휘했다. 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의 손자이자 이종걸 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의 사촌 형이기도 하다. 이회영은 경술국치를 전후하여 6형제 모두가 나라와 민족을 위해 모든 재산과 명성을 포기하고 만주로 이주해 독립운동을 벌인 한국형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모범으로 꼽힌다. 당시 전 재산을 급하게 처분한 값이 소 13만 마리에 이른다는 말도 있었다. 이종찬은 육사 출신으로 하나회에 가입하지 않은 몇 안 되는 군인으로 유명하다. 또한 DJ의 최측근이었지만 동교동계와는 선을 그었다. 하나회에 가입하지 않은 이유를 묻는 질문에 그는 “나는 지금도 원칙에 어긋나는 일에 개입하고 가담하고 싶지 않다. DJ에게 충성은 했지만 동교동 그룹에도 안 들어갔다. 자기의 부족함을 집단의 힘으로 풀려는 생각을 싫어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초급 장교를 거쳐 중앙정보부 공채 1기에 수석으로 합격한 정통 ‘정보맨’이다. 중앙정보부에서 정치권으로 뛰어들어 4선 국회의원을 지냈다. 그는 6공화국 당시 헌법에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여’라는 조항을 넣었다. 2000년 총선에서 낙선한 뒤 정계 은퇴했다. 현재는 조부인 이회영을 기리는 우당기념관을 운영하고 있으며, 독립유공자 후손들의 장학사업과 대학생들의 사회활동을 후원하고 있다. [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