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지난 2013년 열린 18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나란히 걷고 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박근혜 탄핵 이후 보수단체 뿔뿔이
<한국일보>에 따르면 화이트리스트 의혹을 수사하고 있는 검찰은 최근 박근혜 정부 청와대가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자금으로 친정부 성향 보수단체 수십 곳을 한 건물에 모으는 ‘건전단체 허브 플랜’을 실행한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경련이 비용을 대고 한 건물 사무실을 일괄 임차해 보수단체들에게 나눠주는 방식이다. 이 계획을 위해 당시 정관주 청와대 국민소통비서관이 직접 박 아무개 전경련 전무와 접촉해 청와대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더불어민주당(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과거 정부에서는 기껏해야 보조금이나 행사 지원 등을 해주는 수준이었는데 청와대가 직접 나서서 사기업 단체를 압박해 보수단체들 사무실까지 마련해준 것이 사실이라면 충격적인 일”이라며 “이해하기 힘든 행태”라고 말했다.
이 건물은 서울시 중구에 위치한 D 빌딩으로 얼마 전까진 1층부터 맨꼭대기인 5층까지 모두 보수 성향 단체 사무실이 자리 잡고 있었다. 건물에 입주한 단체는 바른사회시민회의, 청년이여는미래, 바이트, 북한인권학생연대, 청소년통일문화, 교학연, NK워치, 북한민주화청년학생포럼 등이다.
건물에 입주해 있던 한 보수단체 관계자는 “사무실 입주과정에서 지원 받은 것은 없다. 여기 위치가 굉장히 안 좋아서 임대료가 싸다. 시민단체들 사정이 어렵다 보니 우연하게 이 건물로 모이게 된 것 같다”고 해명했다. 또 다른 단체 대표도 “우리는 정상적으로 임대료를 다 냈다”면서 관련 보도를 부인했다.
우연이라고 주장하던 단체들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전후로 모두 사무실을 이전하면서 뿔뿔이 흩어졌다. 지난 11월 14일 D 빌딩을 직접 찾아갔다. D 빌딩은 새로운 입주자들을 맞이하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 이날도 입주 희망자가 사무실을 둘러보고 있었다. 빌딩 관리인은 “정확한 계약관계는 모르겠지만 건물에 입주해있던 단체들이 비슷한 시기에 모두 빠져나갔다”며 “이상한 일”이라고 말했다.
# 국정원, 탈북자 단체 운영 개입
한 탈북자 단체에서 핵심간부로 근무했던 A 씨는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국정원이 탈북자 단체 운영에 적극 개입했다”면서 “이전 정부에서는 없었던 일”이라고 주장했다.
A 씨는 “당시 내가 속한 단체뿐만 아니라 많은 탈북자 단체들이 국정원과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면서 “(국정원 외에도) 정부 기관이 단체 활동을 적극 지원했다. 세미나를 개최하면 정부부처 산하 기관 차량으로 탈북자들을 실어 나른 경우도 있었다. 세미나 주제는 정치적으로 편향된 것이었다. 정치적으로 중립을 지켜야 하는 사람들(정부 기관)이 중립을 지키지 않았다”고 말했다.
A 씨는 “탈북자 단체에 참여하는 탈북자 중 상당수는 생계형이다. 북한 인권이나 민주주의 그런 것에 관심 있어서 활동하는 것이 아니다. 돈을 벌기 위해 활동했다. 일반 보수단체와는 또 달랐다”면서 “이명박 정부 들어 탈북자 단체에 대한 지원이 늘어나 탈북자 단체에서 활동하려는 사람이 많아졌다. 여러 탈북자 단체가 사무실 한 곳에서 공동으로 운영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사무실은 하나인데 책상 10개 가져다놓고 10개 단체가 운영되는 식”이었다고 증언했다.
A 씨는 “이런 기조는 박근혜 정부에서도 이어졌다”면서 “이명박, 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탈북자 사회가 아주 혼탁해졌다. 지원금을 놓고 단체들끼리 갈등이 생겨 내부적으로 다투기도 했다”고 말했다.
# 정권 초 위기가 발단, 좌파 척결에 사활
고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비망록에는 박근혜 정부 청와대가 좌편향 문제에 적극 대응하려 했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비망록에 따르면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예술계 좌파 책동에 투쟁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지시했다. 2014년 8월 8일자 메모에는 ‘홍성담 배제노력, 제재조치 강구’라는 김 전 실장 지시가 적혀있었다.
홍성담 작가는 박 전 대통령을 허수아비로 표현한 풍자그림을 그렸던 화가다. 이명박 정부 당시 국정원은 블랙리스트에 오른 연예인들을 퇴출하려고 광고주인 기업까지 압박한 정황이 드러나기도 했다. 검찰에 따르면 2010년 1월 국정원이 작성한 문건에는 ‘방송사 간부와 광고주에게 알려 해당 연예인을 배제하라’는 표현이 수차례 등장한 것으로 확인됐다. 같은 해 8월에 작성된 문건에서는 ‘간접 제재로 분량을 축소하고 정부나 경제 단체를 통해 대기업이 이들을 쓰지 않도록 유도하라’는 구체적인 내용이 담겨 있었다.
자유한국당 전직 의원은 “이명박, 박근혜 정부가 모두 정권 초에 엄청나게 흔들렸다. 그런 경험이 좌파척결에 집착하는 계기가 됐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명박 정부는 2008년 2월 출범 이후 3달도 지나지 않아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에 반대하는 이른바 ‘광우병 시위’로 위기를 맞았다. 100일 이상 집회가 계속되면서 급기야 정권퇴진 운동으로 번졌다. 이 사건으로 이명박 정부는 취임 100여 일 만에 내각이 총사퇴하는 사상초유의 일을 겪었다.
이명박 정부 한 관계자는 “광우병 시위 이후 이명박 정부가 좌편향에 과민반응을 가지게 된 것은 맞다”면서 “당시 진보 좌파 진영에서 선동해서 정권을 엄청나게 흔들었다. (광우병 괴담 등이) 나중에는 다 거짓으로 드러난 것 아닌가. 좌편향 문화단체와 예술인들이 그런 선동을 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고 그런 과정을 지켜보면서 (좌편향이) 심각하다는 문제의식을 갖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세월호 사건이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정부에서 활동한 한 인사는 “북한은 남한에서 사회적으로 흉흉한 사건이 일어나면 이를 적극적으로 이용했다. 세월호 사건 때도 댓글 공작 등을 엄청나게 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사이버 심리전 대응은 당연히 필요한 것이다. 댓글 부대로 불리는 사이버 심리전단은 노무현 정부 때부터 운영됐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좌편향에 대한 문제의식은 정권 초부터 있었다”면서 “노무현, 김대중 정부를 거치면서 진보 단체에 지원이 집중돼 보수 단체가 어렵다는 이야기가 굉장히 많았다. 시위 현장만 가 봐도 알 수 있는 게 좌파 진영 시위는 무대 장치부터 시위 용구가 굉장히 세련됐었다. 우파 진영 시위는 무대 장치 등이 조잡하다는 느낌이 든다. 그런 것을 보며 보수단체를 지원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앞서의 민주당 관계자는 “야권에선 과거 정부에서도 있었던 일이라며 자꾸 정치보복이라는 주장을 하는데 이명박근혜 정부에서 벌어졌던 반대 진영 탄압은 누가 봐도 정상 범위를 넘어선 것”이라며 “아직도 반성하지 않고 책임 회피만 하려는 태도는 실망스럽다. 당연히 책임자들은 처벌을 받아야 하고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제도개선에도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