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MB 수사 성공 방정식’의 마지막 해법이 되어 준 것은 김관진 전 국가안보실장(MB 정부 당시 국방부 장관)이었다. MB 정부 시절 군 사이버사를 통한 댓글 공작 과정에 이명박 전 대통령의 지시를 인정하는 진술을 털어놨기 때문. 검찰은 김 전 장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법원은 이를 발부해 검찰 수사가 성공적으로 가고 있다는 데 힘을 보태줬다.
군 사이버사령부 ‘댓글 공작’에 관여한 의혹으로 지난 7일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출석한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 임준선 기자
법원의 영장 발부로 자연스레 MB 소환 시점이 거론되기 시작했다. 국방부 장관의 보고를 받은 대상이 바로 이명박 전 대통령이기 때문. 통상 보고를 하는 ‘밑’에서부터 받는 ‘위’로 수사 대상을 올리기 때문에 다음 차례로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자연스레 언급되고 있다. 검찰 안팎에서는 이르면 12월 초, 늦어도 12월 중순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을 소환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김관진 전 장관의 구속 만기 시점(11월 말)과, 국정원 댓글 관련 수사 부분 정리(11월 말~12월 첫 주), 그 후 MB 소환 전 적용할 혐의 및 증거자료 정리와 MB 측과의 소환 일정 조율(1~2주) 등을 감안할 때 늦어도 12월 중순에는 부를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것도 참고인 신분이 아닌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해졌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바레인으로 강연 차 출국하는 자리에서 본인을 향한 검찰 수사에 대해 “이것이 과연 개혁이냐, 감정풀이냐, 정치보복이냐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고 불편한 감정을 토로했다. 이 전 대통령 측근들도 “우리도 5년을 집권했는데 (노무현 정부 치부 관련) 정보가 없겠느냐”고 맞불 작전을 시사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분위기를 크게 바꾸기는 힘들 것이라는 게 정치·법조계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적폐청산’ 입장 밝히는 이명박 전 대통령. 이명박 전 대통령이 바레인을 방문하기 위해 지난 12일 인천공항을 통해 출국하기에 앞서 ‘적폐청산’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임준선 기자
“이명박 전 대통령이 얼마나 꼼꼼했던 사람이냐면, 대통령 당시 밑에서 보고를 할 때 보고서에 ‘숫자’를 무조건 넣어야 했던 사람입니다. 각 수석실 별로 ‘대통령이 그렇게 구체적으로 알아야 하냐’는 볼멘소리가 얼마나 많이 나왔는데요. 특히 몇 명과 같은 ‘수치’에 예민했던 사람인데 그 꼼꼼했던 성격을 국정원·군 사이버사령부 운영에 적용시켜 봐요. 댓글 관련 보고도 상세히 받지 않았겠습니까?”
MB 정부 당시 청와대에 근무했던 관계자의 설명이다. 기업인 출신의 MB가 과거 기업인 시절 상세히 보고를 받던 습관을 청와대에서도 똑같이 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 같은 경우에는 대통령과 독대를 하지 않았냐”며 “독대를 했다는 것은 그만큼 편하게 많은 얘기를 주고 받았을 것이기 때문에 국정원 댓글을 통한 여론전에 대한 구체적인 지시가 있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그는 특히 “MB 정부 시절 국정원을 통해 이인규 전 대검 중수부장에게 논두렁 시계 노출 등을 지시하지 않았냐”며 “대통령 독대 과정에서 댓글뿐 아니라, 국정원을 통한 다양한 여론 조작 시도가 있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사실 댓글 영역은 새로운 수사가 아니다. MB 정부 시절 댓글 공작 지시 의혹을 받는 기관은 국정원과 군 사이버사령부 등 두 곳인데, 두 곳 모두 박근혜 정부 시절 검찰 수사와 재판이 진행됐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박근혜 정부가 ‘정당성’을 우려해 제대로 수사하지 못했던 부분이 이제야 드러나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당시 수사에 참여했던 한 검사는 “확실하게 파야 한다던 윤석열 현 지검장과 당시 수사 지휘파트가 부딪혀서 사고가 난 적이 있지 않냐”며 “결국 당시에는 확인하지 못했던 그 부분을 4년의 시간 만에 다시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검찰은 현재 국정원보다는 군 사이버사령부를 통한 댓글 작업 부분을 주목하고 있다. 국방부 내 남아 있던 관련 보고 기록들이, 비교적 상세하게 확보됐기 때문. 이를 토대로 서울중앙지검 국정원 수사팀(팀장 박찬호 2차장검사)은 2012년 총선·대선 때 군 사이버사 댓글 공작을 지시한 혐의로 김 전 장관을 구속할 수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입을 닫고 있던 김 전 장관도 국방부 쪽에 남아있던 자료를 들이미는 검찰 앞에서 “MB에게 사이버사 운영과 관련해 보고한 사실이 있다”는 진술을 내놓았다고 한다.
김 전 장관의 진술은 수사팀에게 큰 의미를 가진다. 사이버사 인원 증원 등과 관련해 이명박 전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은,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 성공 가능성을 높여주기 때문. 검찰은 지난 2010년부터 2014년까지 국방부 장관을 지낸 그에게서 연제욱 전 군 사이버사령부 사령관 등에게 지시해 정부·여권을 지지하고, 야권을 비난하는 내용의 사이버 정치 관여 활동 사실을 집중 추궁하고 있다. 구속영장 발부 이후에도 꾸준히 김 전 장관을 불러 이를 집중적으로 캐고 있다.
김 전 장관은 MB에게 전달된 보고에 대해 “군 사이버사 인력 증원이나 운영과 관련해, 거의 매일 김태효 당시 대통령 대외전략비서관에게 보고서를 건넸다”며 “이 보고서가 이 전 대통령에게도 보고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한 상황. 이에 검찰은 김태효 전 비서관을 출국금지하고, 불러서 조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김 전 장관의 진술 덕분에 MB까지 연결된, 검찰이 그린 큰 수사 그림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구체적으로 보면 넘어야 할 산은 여전히 높다. 특히 김 전 장관의 진술이 큰 틀에서는 ‘MB 혐의 부인’ 차원의 ‘인정 진술’이기 때문. 그는 모든 보고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군 통수권자에게 ‘대북심리전 차원 사이버사 운영‘을 보고한 수준으로 업무 수행 과정도 대북심리전 차원에서 정당한 과정이었다”고 진술하고 있다. 때문에 정치개입 지시에 대해서도 “그럴 의도도 없었고 구체적인 내용은 알지도 못한다”고 부인하고 있다.
23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검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의 서울고검 및 산하 지검, 지청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적폐청산 수사를 이끌고 있는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이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최준필 기자
이는 나머지 수사 영역(국정원 댓글)의 키맨인 원세훈 전 원장도 마찬가지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 독대하며 구체적으로 보고하고 지시를 받았던 원세훈 전 원장은 단 한 차례도 “이명박 전 대통령의 지시가 있어서 정치 개입 댓글을 달았다”고 한 적이 없다. 때문에 국정원을 통한 수사는 아직 이명박 전 대통령을 향하기에는 빈틈이 있다는 게 검찰 관계자들의 중론.
자연스레 MB를 잡기 위한 다른 의혹들로의 추가 수사 가능성도 거론된다. 현재 서울중앙지검은 대검찰청 등 수사 지휘부로부터 롯데타워 인허가 과정에서 청와대 개입 의혹에 대한 재수사 승인을 받아낸 것으로 알려졌다. 내용을 잘 알고 있는 법조인은 “MB 정부 시절 제2롯데타워 인허가 과정에 대해 다시 검찰이 수사에 착수한다고 들었다”고 털어놨다.
<일요신문>도 여러 차례 관련 의혹들을 보도한 바 있는 이명박 정부 시절 당시 제2롯데월드 및 타워 관련 인허가 과정에 이명박 정부가 롯데 측의 요청을 받고 ‘힘’을 써준 사실이 있는지 검찰이 본격적으로 수사한다는 것이다.
실제 성남 서울공항 안전 문제로 번번이 좌절됐던 제2롯데월드는 이명박 전 대통령 당선 후 급물살을 탔다. 이 전 대통령은 2008년 4월 이상희 당시 국방장관에게 “날짜를 정해놓고 긍정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검토해 보라”고 지시했다. 현직 대통령이 특정 기업 숙원사업에 도움을 주는 듯한 발언을 한 것인데, 대통령의 한마디로 많은 게 바뀌었다. 그 후 지지부진했던 인허가 작업은 일사천리로 이뤄졌고, 군 공항을 이유로 제2롯데월드에 반대했던 김은기 공군참모총장은 그해 10월 옷을 벗었다. 지난해 서울중앙지검 롯데 전담수사팀이 관련 의혹까지 수사할 가능성이 거론됐으나, 실제 수사로 연결되진 않았다.
관련 의혹에 대해 올해 국정감사에서도 박범계 등 여당 의원들의 질의가 이어졌는데, 이에 문무일 검찰총장은 “의혹이 있다면 확인, 수사하겠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그리고 수사팀에는 ’재수사 승인‘을 내려 보냈다. 이에 대해 앞선 법조인은 “롯데 부분을 다시 하기로 국감 전후로 검찰 수사팀에 확정 사인이 내려갔다고 들었다”며 “수사가 들어가는 시점이 가장 중요하지만 관련 의혹들에 대해 지난해 롯데 수사팀 때부터 들여다 본 증거들이 워낙 많아서 오래 걸리지는 않을 수 있다. 만일 빠르게 수사가 진행되면 검찰에 소환될 때 이명박 전 대통령의 혐의가 늘어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서환한 기자 brigh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