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주혁의 영정. 사진공동취재단
사고가 발생한 영동대로 코엑스사거리~경기고사거리 방면은 편도 차선만 7차로로 평일에도 교통량이 많은 곳이다. 특히 좌회전 차로를 지나 직진 차로로 넓게 들어가는 지점이 있어 차로를 변경하려는 차들이 많아 갑작스럽게 속력을 내기가 어렵다. 이런 이유로 김주혁의 차량이 급가속한 데에 ‘음주운전 또는 약물복용으로 인한 판단력 상실’, ‘심근경색이나 신경계 이상’ 등의 건강상의 문제와 ‘급발진’ 등 차량 결함의 의혹이 제기됐었다.
음주운전의 경우는 지난 14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최종 발표한 김주혁의 부검 결과 알코올이 전혀 발견되지 않아 그대로 사그라진 의혹이다. 다만 그의 체내에 ‘미량의 항히스타민제’가 발견되긴 했으나 이 역시 신체에 심각한 지장을 초래할 만한 양은 아니었다고도 밝힘으로써 약물 가능성도 사라졌다.
두 번째 심근경색 의혹에 대해서도 국과수는 “심장 동맥 손상이나 혈관 이상, 염증 등이 없어 심근경색이나 심장전도계의 이상은 확인할 수 없었다”고 일축했다.
다만 김주혁의 차량과 접촉사고가 났던 그랜저 차량의 운전자가 진술한 “사고 당시 김주혁이 두 손을 핸들 위에 올려놓고 가슴을 핸들에 기댄 채였다”는 것을 참고, 그가 운전 중 자구력을 잃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언급했다. 정황상 김주혁이 실제 사망에 이르게 된 두개골 골절 이전에 행동 제어가 어려울 정도로 신체 이상이 발생했을 수도 있다는 것.
이와 관련해 익명을 요구한 한 의료관계자는 “자구력을 잃을 정도로 의식이 없거나 그에 준하는 상황이 발생했다면 가속 페달을 정상 의식 상태와 동일한 힘으로 밟고 있는 것이 불가능했을 수 있다”며 사고 당시 김주혁이 정상적으로 의식을 유지하고 있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지적했다.
그는 “만일 사고 당시 김주혁이 행동 제어가 안 될 정도로 의식이 불안정했다는 전제 하에서 본다면 가속페달을 처음 밟은 순간까지는 스스로 행동이 가능할 만큼 의식이 있었고, 가속이 붙은 상태 이후 행동 제어력 또는 의식을 잃었다고도 볼 수 있다”라며 “그러나 그랬더라도 급가속 이후 가속 페달을 밟는 힘이 점점 줄어들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공개된 차량 블랙박스 영상에 따르면 김주혁의 차량은 2차로를 주행하던 중, 3차로에서 앞서가던 RV차량과 그랜저 차량의 사이로 끼어들기를 시도한다. 그러나 여기서 그랜저 차량과 1차 추돌이 발생했다. 김주혁의 차량이 끼어들 만큼 차간 간격이 넓지 않았고, 그랜저 차량의 주행 속도가 김주혁의 차량과 비슷했기 때문에 발생한 사고로 보인다.
이때 김주혁의 차량이 앞선 RV 차량과도 연속 추돌할 뻔했으나 김주혁은 브레이크를 밟아 사고를 면한다. 이 시점까지는 행동 제어가 정상적으로 이어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김주혁의 차량은 4차로로 천천히 이동하며 4차로~5차로 사이에서 거의 정차하다시피 느리게 주행했다. 추돌사고가 난 그랜저 차량은 여전히 3차로에서 주행하다가 천천히 김주혁의 차량이 있는 4차로로 이동해 김주혁의 차량을 가로막으려 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자 갑작스럽게 김주혁이 가속해 그랜저 차량을 2차 추돌한 뒤 인근 인도로 돌진, 아파트 벽면과 충돌했다. 급가속 시작부터 아파트 벽면에 충돌하기까지 김주혁의 차량은 전혀 속도가 떨어지지 않은 상태로 보인다. 가속 페달에 동일한 힘이 작용된 것이라는 가능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혹은 김주혁이 가속 페달을 밟지 않았음에도 차량 결함으로 인한 급발진의 의혹도 여전히 고려해볼 수 있는 사건의 변수다. 그러나 이에 대해 전문가는 “급발진으로 볼 수 없다”는 분석을 남겼다.
강성모 교통사고 감정공학연구소장은 “차량 급발진의 경우 차체에서 주변 사람들이 다 들을 수 있을 정도의 ‘굉음’이 들리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번 사건에서 김주혁의 차량에 가장 가까이에 있었던 그랜저 운전자조차도 이에 대해 명확히 언급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당시 그랜저 운전자는 2차 추돌 사고 후 김주혁의 차량이 주행 중이던 쪽으로 접근했다. 급발진의 굉음이 들렸다면 충분히 들을 수 있는 위치였다. 더욱이 그랜저 차량은 조수석의 창문을 내린 상태였기도 하다.
강 소장은 이어 “김주혁은 먼저 왼쪽으로 핸들을 꺾어 그랜저 차량의 조수석을 추돌해 2차 추돌 사고를 내고, 그 직후 오른쪽으로 다시 핸들을 꺾어 급가속으로 곡선 주행한 뒤 인도의 화단에 먼저 부딪치는 것을 볼 수 있다”라며 “그런데 이 일련의 사고가 모두 벌어지기까지 걸린 시간이 대략 4~5초나 된다. 급발진이었다면 이 거리를 이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더 단축됐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방호벽 뚫고 나가도 멀쩡한 차? 알고보니 충돌 등급도 안받아 김주혁의 차량 벤츠 G63 AMG, 이른바 ‘벤츠 G바겐’의 차량은 안정성을 지속 강조해오던 차량이기도 하다. ‘방호벽을 뚫고 나가도 멀쩡한 차’가 G바겐에 대해 소비자들이 가진 이미지였고, 실제로 메르세데스-벤츠사는 이와 같은 내용의 광고로 소비자들에게 어필해 왔다. 벤츠 G바겐의 모습. 사진=인터넷 커뮤니티 그러나 사고 현장에서 보인 김주혁의 차량은 차체 A필러가 형태도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으스러진 채였다. A필러는 차가 전복되거나 그에 준하는 심각한 외부 충격이 발생할 경우 차량 훼손을 최소화하고 운전자를 보호하기 위해 차량 전면부에 설치되는 차량의 기둥(Pillar)이다. 특히 김주혁의 직접적인 사망 원인이 두개골 골절이라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차체 안전성이 담보되지 않은 차량이었기 때문에 사망으로까지 이어진 게 아니냐는 비판도 일었다. 여기에 더해 G63 AMG 차량이 미국의 IIHS(미국고속도로안전보험협회), NHTSA(미국도로교통안전국), 유럽의 유로 NCAP(유럽신차평가프로그램) 등 국제기관에서 충돌 등급을 받지 않았다는 보도가 이어져 비판에 불을 지피기도 했다. 더욱이 이 차량은 홍보한 대로 “방호벽을 (정면에서) 뚫고 나가는 것”에는 강하지만, 측면 추돌이나 전복사고에는 약한 차체로 알려져 있다. 이 같은 차량의 약점이 김주혁의 사망 요인 가운데 하나로 점쳐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일요신문>은 벤츠 G63 AMG의 결함 가능성과 안전성 문제에 대해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에 질의했으나 회사 내부 방침 등을 이유로 끝내 답변을 받을 수 없었다. 이미 벤츠 코리아 측은 기존의 언론보도에서도 사고와 관련해 어떤 공식적인 언급도 없을 것이라고 밝혔던 바 있다. 다만 김주혁의 차량 G63 AMG는 최고 출력 571마력이나 되는 모델로, 가속이 붙은 상태에서 전면부 직접 충돌이 발생한다면 차체 안전성과는 별개로 운전자가 사망할 수밖에 없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한 분석을 위해서는 사고 당시 김주혁의 차량 속도가 어느 정도였는지에 대한 정확한 파악이 선행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