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조용해요. 이렇게 조용한 FA는 처음인 것 같아요.”(에이전트 A 씨)
“나도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다들 왜 발표를 안 하는 건지.”(프로야구팀 단장 B 씨)
“거액의 FA 계약은 선수와 구단한테도 부담이 크기 때문에 더 고민하고 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 같아요.”(프로야구팀 단장 C 씨)
“올해는 FA 선수에게 오버페이를 할 만큼 모기업의 자원이 넉넉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FA 시장이 조용한 게 아닐까요?”(프로야구 구단 관계자 D 씨)
기자의 전화를 받은 야구 관계자들도 올 시즌 유독 FA 시장이 조용한 이유를 궁금해 했고, 각자의 해석을 내놓았다.
올 시즌 FA 시장, 개장 첫날에 계약 내용을 발표한 이는 롯데 자이언츠 내야수 문규현(34)이었다. FA 자격을 갖춘 22명의 선수 중 18명의 선수가 FA를 신청했고, 황재균(kt와 계약), 김현수 등 해외파 선수들의 국내 복귀가 점쳐지는 상황에서 나온 문규현의 FA 계약 발표는 시선을 주목시킬 수밖에 없었다. 2002년 2차 신인드래프트 10라운드에 롯데 지명을 받은 후 오랜 시간 무명 시절을 보냈던 문규현은 롯데와 총액 10억 원에 잔류 계약을 체결했다. FA 선수들이 대부분 4년 계약을 맺는 데 반해 문규현의 계약 기간은 2+1년이었다.
문규현. 사진=롯데 자이언츠 홈페이지
이후 두 번째 FA 계약의 주인공은 kt 위즈 유니폼을 입게 된 황재균이었다. 리더십을 갖춘 스타플레이어가 필요했던 kt로선 황재균이 절대적으로 필요했고, 황재균은 지속적으로 관심을 표현한 kt의 진심에 결심을 굳힐 수 있었다. 황재균은 4년에 88억 원의 계약을 체결했다. 세 번째 FA 계약은 삼성 라이온즈의 권오준이었다. 삼성은 17일, 입단 19년 만에 첫 FA 권리를 행사한 권오준과 총액 6억 원(계약금 2억 원, 연봉 1억 5000만 원, 옵션 최대 1억 원)에 계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37세 권오준의 FA 계약 기간은 2년이었다.
11월 17일 현재 3명의 FA 계약 선수가 발표된 상황에서 15명이 넘는 나머지 FA 선수들은 어떤 결과물을 받게 될까. 수도권 야구팀의 한 구단 관계자는 “요즘 기업들 사정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한 선수에게 몇 십억에서 100억 원 이상을 투자하는 게 쉽지 않다”면서 “지난해 롯데가 이대호에게 150억 원을 안긴 이후 구단 관계자들 사이에서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 것도 사실이다. 올 시즌 FA 시장에 나온 선수들은 이전처럼 ‘FA=대박’이란 수식어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걸 절감하게 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부 대기업을 제외하고선 한 선수에게 100억 원 넘는 거액을 주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더욱이 지난해보다 올 시즌은 FA 시장이 더 얼어붙었다. 황재균에게 88억 원을 준 kt와 선수가 비난을 받는 부분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불과 일 년밖에 안됐는데 최형우 100억 원, 이대호 150억 원의 몸값이 형성된 지난 시즌과는 온도 차가 크다. 구단은 선수들의 FA 몸값이 과열되는 상황을 꺼리고 있고, 가급적이면 팬들이 납득할 수 있는 계약을 맺으려 하는 편이다.”
김현수. AP/연합뉴스
유명 선수의 에이전트인 A 씨도 “FA 시장이 너무 조용하다”면서 조심스럽게 그 이유를 설명했다.
“솔직히 말해서 황재균 계약이 발표되고 나면 다른 FA 계약들이 잇달아 터질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완전히 예상을 빗겨 나갔다. 구단 관계자들과 미팅할 때마다 구단 사정이 어려워서 큰 계약은 꿈도 꾸지 못한다는 얘기를 듣는다. 다들 어렵다, 힘들다고 하소연한다. 올 시즌 FA 시장은 변수가 많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A 씨는 김현수를 비롯해 손아섭, 강민호, 민병헌 등 대어급에 속하는 선수들의 진로가 하루빨리 결정돼야 다른 선수들의 FA 계약이 진척될 수 있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구단 입장에선 일단 몸값 높은 선수들을 정리해야 다른 선수들과도 협상 테이블을 가질 수 있게 된다. 팀 구성원과 FA 선수들의 포지션을 고려해서 선수 영입을 시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손아섭. 사진=롯데 자이언츠 홈페이지
“그렇지 않아도 우리 팀 감독과 식사하면서 FA 시장이 너무 조용해서 이상하다는 내용의 대화를 나눴었다. 발표를 안 하는 건지, 다른 팀 눈치를 보는 건지 몰라도 이전 FA 시장에 비해 이상한 조짐을 보이는 건 사실이다. 구단들은 FA 시장이 과열되는 걸 꺼려한다. 그 부담이 고스란히 부메랑이 돼 돌아오기 때문이다. FA 시장이 느리게 진행된다면 구단들은 선수에 대해 더욱 꼼꼼히 체크해서 세밀한 평가를 할 수밖에 없다. 이런 부분들이 FA 시장에 어느 정도의 영향을 미치는지 잘 모르겠지만 구단이 좀 더 전문적이고 체계적으로 FA 시장에 대비하고 있다는 건 사실이다.”
또 다른 단장인 C 씨는 기자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을 전했다.
“FA 선수의 몸값으로 100억 원이 투자된다면 KBO리그 시장이 불안정하게 돌아가고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데 공감한다. FA 제도 수정의 불가피성에도 의견이 모아지고 있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건 구단의 이익보다 선수와 구단, 그리고 리그가 정상적인 구조 속에서 발전하길 바란다는 점이다. 해마다 거품 논란이 불거지는 FA 계약은 점점 쉽지 않을 것이다. 이 부분이 다른 계약에 적잖은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C 단장의 메시지를 정리하면, 최근 몸집이 커진 FA 계약에 각 구단들이 난색을 표하고 있고, 이런 부분이 몸집이 작은 준척급 이하 선수들의 계약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설명이었다. KBO리그의 FA는 원 소속 구단이 아닌 다른 팀과 계약을 맺을 경우 FA 선수를 데려간 팀이 원 소속팀에 직전 연봉의 200%와 보상선수 1명 또는 직전 연봉의 300%를 지급해야 한다. 대어급의 선수가 아니라면 이런 제도 하에 준척급들의 FA 이동이 쉽지만은 않다. 이종욱, 최준석, 정근우, 이대형, 채태인 등 35세 안팎의 선수들은 FA 제도의 맹점으로 인해 속병을 앓고 있다.
1982년생인 롯데 이우민은 이대호, 최준석, 박종윤 등과 동기이다. 그는 잦은 부상과 저조한 성적으로 인해 FA 계약 성사 자체가 불투명하지만 자신한테 찾아온 마지막 FA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 FA 신청을 했다. 원소속팀인 롯데는 이우민과의 계약에 난색을 표했다. 이우민의 에이전트는 그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이우민이 롯데와 4년 계약을 한다면 39세, 마흔 살이 된다. 구단이 이우민에게 FA 계약을 제시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걸 알면서도 선수는 FA 신청을 했다. 구단 관계자들은 나이 많은 선수들에게 2+1년 계약을 제시한다. 그러나 선수들은 돈을 적게 받더라도 장기 계약을 선호한다. 서로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셈이다. 더욱이 보상선수 규정 때문에 베테랑 선수들에 대한 경쟁력이 떨어지는 편이라 이우민의 FA 신청은 좋은 결실을 맺기 어렵다. FA는 선수의 이익만, 구단의 이익만 추구해선 성사되기 어렵다. 서로 손해를 보면서도 보듬고 이해하는 문화가 형성돼야 계약에 다다를 수 있다.”
KBO리그 출신 18명의 FA 선수들 중 한국 나이로 35세 이상(1983년생)은 12명이나 된다. 그중 계약을 맺은 선수는 문규현과 권오준밖에 없다. 4년 계약을 성사시킨 이는 한 명도 없다.
한편 또 다른 구단 관계자는 기자에게 재미있는 얘기를 들려줬다. KBO리그에 선수 출신 단장이 늘어나면서 거액의 FA 선수 영입보다는 외국인 선수를 향한 투자와 젊은 선수들을 육성하는 방침으로 조금씩 변화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
황재균 FA 계약 뒷 얘기…kt “한국복귀 소식 나온 뒤 그에게만 올인” 황재균이 4년 총액 88억 원에 kt 위즈와 FA 계약을 체결했지만 다수 야구팬들과 일부 언론에서는 황재균의 계약에 ‘거품’이 끼었다고 비난을 가하고 있다. 공수주 3박자를 갖춘 3루수지만 통산 타율이 2할대, 최다 홈런개수가 30개에 불과한 그가 88억 원의 몸값을 올린 부분이 타당한지에 대한 내용이다. 1년 동안 미국에서 활약했다는 게 플러스 요인이 됐겠지만 실패하고 돌아온 선수에게 kt가 너무 많은 금액을 안겨줬다는 얘기도 힘을 얻고 있다. 그러나 김진욱 kt 감독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kt에는 마땅한 주전 3루수가 없었다”면서 “든든한 주전 3루수가 있는 팀이라면 황재균을 향해 30억~40억을 쓰는 게 과한 지출이겠지만 황재균 만한 3루수를 찾기 힘든 상황에선 가격 경쟁이 붙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kt와 4년간 88억 원에 FA 계약을 체결한 황재균. kt 구단 관계자는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황재균 계약 후 비난 여론이 높은 상황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우린 지난해부터 황재균에 대해 높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황재균이 한국으로 돌아온다는 소식이 알려진 후 다른 FA보단 황재균에게 모든 걸 집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황재균은 감독님의 의사가 상당히 많이 반영됐다. 3루수가 절실했던 팀 상황에서 황재균만한 선수를 찾기란 힘들었다. 그래서 더욱 간절했는지도 모른다. 황재균과의 계약 후 과한 계약이라고 비난 여론이 높아지면서 선수도, 구단도 난처해진 게 사실이다. 올해 FA 시장이 활성화되지 않고 있어 황재균이 더욱 주목을 받긴 했는데 구단의 필요에 의해 붙잡은 선수이니 그 비난이 황재균에게 쏠리는 건 타당치 않다고 생각한다.” kt 관계자는 황재균과 88억 원이 아닌 100억 원 이상의 계약을 맺었다는 의혹에 대해서 절대 사실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모기업에서 한 선수에게 100억 원을 쏟아 부을 정도로 여유가 있지 않다. kt는 수도권에 위치해 있다는 걸 제외하면 선수들에게 호감을 주는 팀은 아니다. FA 선수들은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할 수 있는 팀, 팬이 많은 팀을 선호한다. 그걸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황재균 영입에 공을 들일 수밖에 없었고 그의 마음을 사려고 구단 차원에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일부에선 황재균과 이미 계약을 맺고 나중에 발표했다는 얘기도 하던데 그 또한 사실이 아니다. 계약에 합의를 한 이후 바로 발표했던 게 11월 13일이었다.” [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