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복 전 국정원장(가운데).
김대중 정부에서 강제퇴직을 당했던 국정원 직원들은 ‘국정원 강제퇴직자 진상규명을 위한 투쟁위원회(국강투)’를 구성하고 현재까지 국정원을 상대로 소송 중이다. 국강투는 김대중 정부가 특정지역 출신 국정원 직원들을 내쫓기 위해 불법적인 방법으로 강제퇴직을 종용했다고 주장했다. 2008년 대법원은 최종적으로 국정원의 손을 들어줬지만 새로운 증거와 증언들이 수집되면서 국강투는 2015년 다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냈다.
이와 관련한 재판 과정에서 김만복 전 국정원장은 법원에 김대중 정부 국정원이 불법적으로 직원들을 내쫓고 노무현 정부 국정원이 이와 관련한 소송에서 증거를 조작했다는 내용의 진술서를 제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일요신문>이 입수한 진술서에 따르면 DJ정권 초기인 1998년 3월부터 안기부(국정원 전신)는 특정지역 출신 직원을 강제 퇴직시키기 위해 ‘순화·협박조’를 동원해 직권면직과 명예퇴직 중 택일하도록 강권하는 등 갖가지 방법을 총동원해 퇴직을 종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과정에서 국정원 직원 500여 명이 강제퇴직을 당하게 된다.
2004년 4월 23일 ‘국강투’가 1심에서 승소하게 되자 당시 노무현 정부 고영구 국정원장이 “국정원이 패소 시 소요예산 과다 등 문제점이 많다”면서 “항소심에서 무조건 승소하도록 하라”는 지시를 함에 따라 승소를 위해 증거조작까지 했다는 진술도 나왔다.
김만복 전 원장은 진술서에서 “법원의 국정원 조직 확대개편 여부에 대한 석명 요청 시 정원이 수차례 증감하였음에도 2005년 9월 ‘정원조정 전무’로 회신하는 등 자료 변조와 허위 답변을 지속토록 하였다”면서 “2005년 11월 대통령의 명예퇴직 신청 재가 등 인사명령 경위를 허위로 작성, 제출토록 하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김 전 원장은 “고영구 원장은 항소심에서 승소하기 위해 인사 관련 담당 간부들로 하여금 강제퇴직 관련 서류를 위조해 법원에 제출하고,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하여 ‘순화 담당관’ 운영 및 명예퇴직 강압 사실을 부인하는 등 위증토록 한 사실도 있다”고 주장했다.
김 전 원장은 “국정원의 1998-1999년 강제퇴직 조치는 국가와 조직이 저지른 ‘범죄행위’로 위법한 것이기에 다시는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면서 “특히 피해 당사자인 원고들 대부분은 강제퇴직 당시 고교생과 대학생의 자녀를 둔 가장으로서 강제퇴직으로 인하여 가족의 불행과 경제적 타격이 매우 컸을 것”이라고 적었다.
김 전 원장은 위와 같은 진술서를 지난 2017년 7월 작성해 재판부에 제출했다. 김 전 원장이 왜 갑자기 자신에게도 불리한 위와 같은 진술을 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다. <일요신문>은 수차례 김 전 원장 측의 입장을 듣기 위해 통화를 시도했지만 연결이 되지 않았다. 다만 김 전 원장은 문자메시지로 “(진술서에 담긴 내용은) 사실입니다”라는 답변을 보내왔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
다음은 김만복 전 국정원장이 지난 2017년 7월 작성한 진술서 전문이다. 진술서 1. 국가정보원(국정원) 근무경력 관련 본인은 1974년 7월 4일 중앙정보부 입사하여 1993년부터 1996년간 주미대사관 정무참사관으로 근무하다 귀국한 뒤, 1998년부터 1999년간 해외차장실 산하부서에서 근무하였고, 2002년 세종연구소 파견근무를 거쳐 2003년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정보처리실장으로 재직한 뒤, 2004년 2월부터 2006년 4월간 국정원 기조실장을 거친 후, 2006년 11월부터 2008년 2월간 국정원 직원 출신으로 첫 국정원장이 되어 34년간 국정원에 재직하였습니다. 2. 1998-1999년 강제퇴직 관련 1997년 12월 DJ가 대통령이 당선된 후 1998년 2월초 영동 소재 라마다 르네상스호텔에 김○○ 전 민주당 의원 등 2명이 상근하면서 안기부 특정지역 출신 간부들과 함께 도태 대상자들을 선정을 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당시 안기부에서는 특정지역 출신 간부들을 도태시켜야 된다는 5종의 살생부가 유포되었고 그중 넷의 살생부에 본인도 도태 대상자로 포함된 사실이 있어 불안하였던 생각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러나 본인은 다행하게도 이종찬 전 안기부장이 해외파트 직원들의 강제퇴직을 유보시켰기 때문에 해외파트에 있던 본인은 살아남게 되었습니다. DJ정권 초기인 1998년 3월부터 4월간 안기부는 아무런 기준 없이 살생부에 거명된 특정지역 출신 간부들을 포함 580여 명을 재택근무 명령을 내어 놓고 이들을 강제 퇴직시키기 위해 ‘순화·협박조’를 통해 재택근무자들을 대상으로 직권면직과 명예퇴직 중 택일하도록 강권하는 등 갖가지 방법을 총동원 퇴직을 종용하였던 것은 사실입니다. 3. 강제 퇴직자들에 대한 국정원의 소송 대응 관련 본인이 2004년 4월 2일 국정원 기조실장으로 부임한 이후 2004년 4월 23일 강제퇴직자 모임체인 ‘국강투’가 1심에서 승소하게 되자 당시 고영구 원장이 “국정원이 패소 시 소요예산 과다 등 문제점이 많다”면서 “항소심에서 무조건 승소하도록 하라”는 지시를 함에 따라 승소를 위한 대책회의를 수차 개최한 바 있었습니다. 이에 따라 본인은 서울대 법대 동기생이면서 직권면직자인 이○○의 소송을 변론하여 승소한 양○○ 변호사를 변호사법에 위배됨에도 국정원 변호사로 새로 선임하는 한편 2005년 9월 모교인 서울대학교 법학과 박○○ 부교수에게 ‘면직처분 무효확인소송에 관한 자문의견’을 받아 법원에 제출토록 한 바 있었습니다. 또한 법원의 국정원 조직 확대개편 여부에 대한 석명 요청 시 정원이 수차례 증감하였음에도 2005년 9월 ‘정원조정 전무’로 회신하는 등 자료변조와 허위 답변을 지속토록 하였으며 2005년 11월 대통령의 명예퇴직 신청 재가 등 인사명령 경위를 허위로 작성, 제출토록 하여 상고심까지 인용하게 함으로써 국정원이 승소하는 데 유리하게 악용하는 결과가 되어 송구하게 생각합니다. 특히 고영구 원장은 2005년 8월 강제퇴직자들인 ‘국강투’의 항소심에서 승소하기 위해 인사 관련 담당 간부들로 하여금 강제퇴직 관련 서류를 위조하여 법원에 제출하고,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하여 ‘순화 담당관’ 운영 및 명예퇴직 강압사실을 부인하는 등 위증토록 한 사실도 있었습니다. 본인이 국정원장 재직 당시인 2007년 10월초 강제퇴직자들의 복직문제를 논의한 바 있었으나 기간이 너무 경과했고 보직문제 등 복잡한 문제가 있어 없었던 일로 처리한 바 있었습니다. 4. 기타 국정원의 1998년-1999년 강제퇴직 조치는 국가와 조직이 저지른 범죄행위로 위법한 것이기에 다시는 반복되어서는 절대로 아니될 것입니다. 특히 피해당사자인 원고들 대부분은 강제퇴직 당시 고교생과 대학생의 자녀를 둔 가장으로서 강제퇴직으로 인하여 가족의 불행과 경제적 타격이 매우 컸을 겁니다. 원고들은 강제퇴직으로 인한 스트레스로 지병을 얻어 9명이 사망했고, 현재 70 고령 전후인데다 건강이 좋지 않아 고통스럽게 살아가고 있다고 듣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국정원에서 약속한 명예회복과 피해보상 등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강제퇴직자들에 대하여 안타까운 마음 금할 길이 없습니다. 재판부에서 이들의 한에 맺힌 억울함을 꼭 풀 수 있도록 현명한 판결을 하여 주실 것을 탄원합니다. 2017년 7월 김만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