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극단적인 여성 우월 성향의 커뮤니티 ‘워마드’에 올라온 호주 어린이 성폭행 글. 사진 속 소년이 피해 어린이로 알려졌으나 실제로는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사진=워마드 아카이브
이번 논란은 지난 19일 워마드 사이트에 올라온 하나의 글에서 시작됐다. ‘하용가젠신병자59’라는 닉네임의 글 작성자는 자신이 현재 호주에 거주하고 있다며 “호주에 살면서 서양 쇼린이(어린 소년을 뜻하는 일본어 ‘쇼타’와 어린이의 합성어) X나 꼴려서 언젠가 한 번 따먹어야지 하다가 요참에 시도해보기로 했다”고 범행 동기를 밝히는 것으로 글을 시작했다.
범행 대상으로는 자신이 일하는 휴양 시설에 가족과 놀러온 소년으로 정했다고도 말했다. 이 작성자는 오렌지 주스에 수면제를 가루로 빻아 넣는 장면을 촬영해 올리기도 했다. 이 주스를 소년에게 먹인 뒤, 가족들이 잠에 빠진 새벽 시간을 틈타 성폭행하겠다는 계획이었다. 이후 작성자는 소년을 성폭행했고 이를 사진과 영상으로 남겼다며 소년이 잠에 빠진 모습을 촬영한 사진과 성폭행을 하는 듯한 영상 캡처도 게시됐다.
보통 적게는 100건 미만, 많게는 최대 2000~3000건가량의 조회 수가 나오던 워마드에서 이 글은 만 이틀 만에 조회 수 12만 건을 넘어섰다. 댓글도 폭발했다. “성님, 줄 서 봅니다”라며 영상을 요구하는 댓글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이들의 이메일 주소는 모두 가짜로 확인됐다.
글 작성자는 호주 아동을 성폭행한 뒤 촬영한 영상의 캡처라고 밝혔다. 실제로는 누나가 남동생을 상대로 장난친 것을 촬영한 유튜브 영상의 캡처로 드러났다. 사진=워마드 아카이브
글이 폭발적인 조회 수와 반응을 기록하자 바로 다른 온라인 커뮤니티로 이 글이 퍼져나갔다. 논란이 증폭되면서 언론사 제보가 이어지면서 ‘워마드 호주 아동 성폭행 사건’은 피해 아동에 대한 2차 피해까지 우려되는 심각한 사건으로 보도됐다.
그러나 이 여성의 범행 착수 여부와는 별개로, 워마드에 올라온 범죄 글에 게시된 어린이의 사진은 ‘사건의 피해 어린이’가 아니었다. 이 어린이의 사진은 2011년 9월 영어권 국가의 한 10대 동성애자의 블로그에 게시되기도 했던 바 있다. 사진을 좌우 반전한 뒤 명도를 조절해 마치 밤에 찍은 사진처럼 조작한 것이다. 게다가 이 어린이는 일반인이 아니라 유명 아동 포르노 배우라는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
범죄의 피해자가 없다면 이 게시글 속 캡처된 성폭행 영상 속의 어린이는 누구일까? 글 작성자는 동영상 파일까지 공개하진 않았지만 자신의 컴퓨터에 저장돼 있는 동영상 목록은 공개했다. 동영상의 파일명은 ‘20171118’으로 마치 올해 11월 18일에 촬영한 영상처럼 보이지만 원본 영상은 유튜브에서 찾을 수 있다.
“Why you should not fall asleep before your sister(네가 왜 네 누나보다 먼저 잠이 들면 안 되는지)”라는 제목의 유튜브 영상에는 워마드 이용자가 ‘잠든 사이 성폭행을 시도했다고 주장한’ 피해 소년의 모습이 보인다. 그렇지만 원본 영상은 깊이 잠든 남동생의 입술을 잡아당기고 장난을 치는 누나가 촬영한 영상으로 올라온 날짜도 2009년 1월이다. 게다가 공개된 사진과 동영상 속 남자 어린이는 동일인물도 아니다.
워마드는 일베의 행태를 미러링(그대로 흉내냄)한다는 이유로 남성들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 허위 모의 글이나 후기 글을 종종 올려왔다. “상사가 마실 커피에 부동액을 타서 줬는데 왜 안 죽는지 모르겠다”는 이른바 ‘부동액 살인미수’ 관련 글이 올라왔을 때는 살인미수 혐의가 적용돼 검경이 직접 수사에 나서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재미삼아 쓴 허위 조작 글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수사 관계자와 신고자들도 허탈함을 감추지 못했다.
이후에도 “남자 상사 커피에 피임약 탔다” “아기가 남자라는데 낳기 싫어서 낙태했다” “남자 친구를 밀쳐서 물에 빠트렸는데 1년쯤 지나서 시체가 발견됐다” 등의 글이 올라와 네티즌들의 신고가 빗발쳤다. 그러나 대부분 경찰 수사 결과 허위로 밝혀지거나 아예 수사 대상조차 되지 못하는 조작 글로 종결됐다.
이렇다 보니 이번 호주 아동 성폭행 사건도 대부분의 워마드 이용자는 “조작이라고 생각해 어울려 줬을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더욱이 현재 문제의 글의 작성자라는 혐의를 받고 있는 호주 거주 여성 A 씨 역시 “내가 쓴 글이 아니고 누군가가 마치 내가 쓴 것처럼 조작한 글”이라고 호소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의 글 작성자로 지목된 워마드 유튜버이자 호주 거주 여성 A 씨는 해명 방송을 하던 중 호주 경찰에 체포됐다. 사진=유튜버 A 씨 계정
A 씨가 호주 경찰에 체포된 데에는 한국 남성의 기여가 컸다. 남성 커뮤니티 ‘에프엠코리아’에서 활동하고 있는 호주 거주 남성 B 씨는 이 사건이 보도되자마자 즉각 호주 경찰에 신고한 것. 또한 A 씨가 거주하는 곳, 근무처 등을 알아내 관리자에게도 이 같은 사실을 알렸다.
호주 경찰은 A 씨를 체포하는 한편 A 씨를 고용했던 업주 등을 상대로도 조사를 진행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에 붙잡히기 전 A 씨는 “워마드에서는 누구도 자기 신상을 상세하게 공개하지 않는다. 그런데 문제의 글을 보면 성폭행 영상 캡처 화면이 있는 폴더를 보여주면서 내 컴퓨터 바탕화면을 그대로 모방하고, 내가 방송을 통해 얘기했던 호주 거주 정보 등을 세세하게 언급했다”고 조작 가능성을 지적했다.
이어서 “나는 요즘 방송하느라 바빠서 워마드에 아예 글을 쓰지도 않는다. 그런데 그 글을 보면 내가 (호주에서) 수영장을 가고 아이들과 노는 일상적인 소스를 다 갖다 넣은 느낌이 나더라”라며 결백을 주장했다. 결국 누군가 자신을 겨냥해 허위로 글을 올렸다는 것. 워마드 내에서도 A 씨의 주장에 동조해 지원에 나설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한국 경찰들의 즉각적인 수사를 두고 비난이 불거지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극우 사이트인 일간베스트(일베)에서 ‘로린이(어린 여자애에 대한 성애를 가리키는 단어 ‘롤리타’와 어린이의 합성어) 따먹은 썰’ 등 소아 강간 후기나 모의 글이 올라왔을 때와는 다르게 이번엔 신속한 수사 착수가 이뤄졌다는 비아냥도 들려오고 있는 것.
21일 경찰청은 “A 씨가 실제 아동을 성추행했는지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라며 “사건이 호주에서 발생했기 때문에 A 씨의 국내 범죄가 파악되지 않는다면 A 씨에 대한 별도 송환은 아직까지 정해진 바 없으며, 호주 경찰의 A 씨 체포에 따라 국내 수사는 종결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A 씨에 대한 수사는 호주 내에서만 진행될 방침이다.
만일 A 씨가 문제의 게시글을 작성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진다면 그를 성폭행범으로 몰고 신상정보를 온라인에 공개한 네티즌들이 도리어 역으로 고소당할 수도 있다. 다만 A 씨는 평소 트위터 등 자신의 SNS에 얼굴이 가려지지 않은 호주 소년들의 사진을 희롱성 글과 함께 올려 논란을 빚었던 바 있다. 이 때문에 이번 사건과 맞물려 호주 현지 경찰이 추가 수사에 들어갈 경우 더 복잡한 상황에 처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A 씨는 경찰에 체포되기 전 워마드 운영자에게 문제의 게시글 작성자를 공개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대한 워마드 운영자의 답변은 아직까지 전달되지 않은 상태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