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의사가 멕시코시티에서 어린이의 신종 플루 감염 여부를 검사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 ||
이번 신종 플루가 인위적으로 만들어져서 퍼졌다는 주장이 일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도 바이러스의 특이한 형태 때문이다. 바이러스를 분석해 보니 사람, 조류, 돼지 인플루엔자가 혼합된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전혀 새로운 잡종이었던 것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잡종이라는 형태적 특성만으로는 사실 문제될 것이 없다고 말한다. 인플루엔자는 끊임없이 변이를 일으키며, 따라서 변종 바이러스가 출현할 가능성도 언제든 있다는 것이다. 영국의 과학주간지 <뉴 사이언티스트>의 편집장은 “여러 인플루엔자가 혼합된 새로운 형태의 인플루엔자는 자연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 예전에도 발견된 적이 있다”고 했다.
때문에 보다 근본적인 의문점은 다른 데 있다. 바로‘지리적’인 문제다. 즉 바이러스의 유전자가 인간 인플루엔자, 북미산 조류 인플루엔자, 유럽산 돼지 인플루엔자, 아시아산 돼지 인플루엔자가 혼합된 형태라는 것이다.
지리상 이런 혼합이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만일 자연적으로 혼합됐다고 가정하고 다음의 가설을 따라가 보자. 조류 인플루엔자에 감염된 북미의 새가 유럽으로 날아가서 돼지들을 감염시킨다. 그리고 몸속에서 바이러스 변이를 일으킨 유럽의 돼지들에게 다시 감염된 새가 이번에는 아시아로 날아가서 그곳의 돼지들을 또 감염시킨다. 그리고 이미 유럽산 돼지 및 북미산 조류 인플루엔자를 포함하고 있는 이 아시아의 돼지가 일으킨 변종 바이러스, 다시 말해 신종 플루에 결국 인간까지 감염된다. 그것도 지리적으로 한참은 떨어져 있는 멕시코 사람들이 말이다. 자연적인 혼합을 의심하는 사람들은 과연 바이러스의 이런 지리적인 이동이 가능할까 의문을 제기한다.
만일 신종 플루가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이 아니라면 답은 하나다. 누군가가 일부러 만들어서 퍼뜨렸다는 것이다. 제약회사의 이익을 위해서, 인구를 조절하기 위해서 등 이유도 다양하다.
먼저 인도네시아의 씨티 파딜라 수파리 보건장관이 주장하는 제약회사 음모론은 다음과 같다. 수파리 장관은 “이번 신종 플루 사건의 배후에는 세계 최대 제약회사인 ‘백스터(Baxter)’와 세계보건기구(WHO)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미 지난해 2월 조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샘플 공유와 백신 개발을 둘러싼 음모론을 다룬 책 <세계가 바뀌어야 할 때: AI 뒤에 숨은 신의 손>을 출간했던 그녀는 책에서 “선진국들이 빈민국들에 백신을 팔기 위해 새로운 바이러스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주장해 파장을 일으켰다. 또한 그녀는 “이 음모론은 단지 이론이나 과장된 것이 아니다. 내 경험을 바탕으로 한 사실이다”라며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도 했다.
책에서 수파리 장관은 WHO가 서방국가의 제약회사들에게만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백신을 독점 개발한 회사들의 수익을 함께 공유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선진국들은 백신 판매로 점점 더 부자가 되고 있다. 이들만이 백신을 개발할 수 있고 또 이로 인해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라며 “WHO의 시스템은 매우 착취적이다. 비인간적인 욕망과 부의 축적과 세계를 지배하려는 탐욕으로 가득 차 있다”고 비난했다.
사실 전 세계 조류 인플루엔자 사망자 중 절반가량인 104명 정도가 사망한 인도네시아는 조류 인플루엔자의 ‘핫 스폿’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현재 인도네시아는 조류 인플루엔자 사망자 샘플을 공유하는 국가에서 제외되어 있다. 2007년 초부터 이미 조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샘플을 WHO와 공유하지 않고 있으며, 선진국 제약회사들이 생산하는 백신 연구에도 접근이 금지되어 있다.
여기에는 인도네시아 정부를 향한 보복도 숨어 있다고 수파리 장관은 주장한다. 2006년 수파리 장관은 호주 정부를 고소했다. 이유는 호주 정부가 인도네시아의 조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샘플을 훔쳐다가 백신을 만들었다는 것이었다. ABC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서 이와 같이 주장했던 수파리 장관은 “우리는 절대로 호주에 바이러스 표본을 보낼 것을 허가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일부 제약회사가 독점적인 백신 개발을 통해 부를 축적한다는 주장은 2005년 <포춘>의 보도를 보면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당시 <포춘>은 조류인플루엔자 공포가 한창인 가운데 백신을 생산하는 몇몇 회사들이 막대한 수익을 거두고 있다고 보도하면서 가장 대표적인 회사로 조류인플루엔자 치료약인 ‘타미플루’를 생산하는 스위스의 ‘로슈’사를 꼽았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타미플루’의 특허권을 갖고 있는 생명공학 회사인 ‘갈리아드 사이언스’에 있었다. 이 회사의 대주주가 바로 도널드 럼스펠드 전 국방장관이기 때문이었다.
조류 인플루엔자가 창궐하자 ‘타미플루’의 수요는 폭증했고, 럼스펠드는 돈벼락을 맞았다. 당시 주식가격이 30% 이상 폭등하자 앉아서 100만 달러(약 11억 원)를 벌었다는 소문도 있었다. 사정이 이러니 정경유착의 냄새가 난다고 주장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제약회사의 음모론을 주장하고 있는 사람들은 타미플루와 럼스펠드를 떠올리면서 이번 신종 플루도 비슷한 경우가 아닐까 우려하고 있다.
이와 관련 자연치유요법을 설파하는 일리노이주의 조셉 머콜라 박사는 “이번 사태로 누가 과연 가장 큰 돈을 벌겠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답은 바로 제약회사다”라고 잘라 말했다. 이미 많은 나라들이 아직 개발도 안된 백신을 구입하기 위해서 난리통이며 <파이낸셜 타임스>는 미국, 캐나다, 일본 등 15개국이 2억 명 분량의 백신을 미리 주문해놓은 상태라고 보도했다.
‘백스터’의 수상한 행동은 예전부터 있어 왔다. 지난해 12월, ‘백스터’의 오스트리아 지사로부터 일반적인 인간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를 받아 실험하던 체코의 연구실에서는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이 인플루엔자를 투여한 흰족제비가 모두 죽고 말았던 것이다. 보통 흰족제비는 인간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로 사망할 일이 없기 때문에 분명 이상한 일이었다.
확인 결과 이 바이러스 샘플에는 놀랍게도 살아있는 조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포함되어 있었다. 아마도 두 개의 인플루엔자가 실수로 혼합된 것처럼 보였으며, ‘백스터’사는 “실험실 내에서 감염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발표했고, “아마도 실수로 벌어진 일 같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과연 바이러스가 혼합된 게 실수일까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놀랍게도 그럴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고 주장한다. ‘백스터’사는 생물안전3등급인 밀폐연구시설을 자랑하는 최첨단 연구소이며, 따라서 절대로 실수 같은 건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경험이 풍부한 숙련된 과학자들이 그런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저지를 리 만무하기 때문에 아마도 일부러 조작됐을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이다.
만일 이 혼합된 바이러스가 외부에 유출됐다면 얼마나 심각한 결과를 초래했을까. 전문가들은 조류 인플루엔자는 사람 간에 전염되지는 않지만 인간 인플루엔자는 다르다고 말하면서 만일 인간과 조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혼합된 형태의 새로운 바이러스가 퍼질 경우, 2차 감염이 발생할 확률도 매우 높아진다고 경고하고 있다.
이밖에도 인도네시아의 수파리 장관은 자국이 미 국방성 연구실에 보냈던 바이러스 샘플이 백신 개발 외에도 다른 용도로도 사용되고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다름 아닌 생물학 무기를 개발하는 데 오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녀는 책에서 “미국과 WHO가 손을 잡고 생물학 무기를 개발하고 있다. 바이러스 샘플을 백신 혹은 생물학 무기를 개발하는 데 사용할지는 순전히 미국 정부의 필요에 달려 있다. 인류의 운명은 매우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이 생물학전에 사용하기 위해서 바이러스를 유전적으로 조작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오래 전부터 미군이 군사적인 생물학전에 사용할 목적으로 바이러스를 개발하고 있다는 논란은 끊이지 않아 왔다. 한 예로 지난 1977년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은 “반(反)카스트로 테러리스트들을 지지하는 미 중앙정보국 요원들이 아프리카 돼지 인플루엔자를 쿠바에 퍼뜨렸다는 의혹이 제기됐다”고 보도했다. 사실 1970년대 초 쿠바에서는 지금껏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형태의 인플루엔자가 유행했으며, 50만 마리의 돼지가 도살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한 미국의 정보 관계자는 “1971년 아무런 표식도 없는 컨테이너에 담겨 있던 바이러스를 미군기지에서 전달 받았다. 그리고 이 컨테이너를 테러리스트들에게 전달하도록 지시 받았다”고 폭로해 파문을 일으켰다.
수파리 장관의 주장에 대해 WHO 측은 황당하다는 입장이다. WHO의 한 관계자는 “우리는 절대로 연구를 통해 개인적인 이득을 취하지 않는다. 세계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일할 뿐이다”라고 해명하면서 “우리 시스템은 지극히 민주적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전 세계 연구실과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결코 특정 국가와만 정보를 공유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편 대표적인 음모론 사이트인 ‘프리즌플래닛(ww.prisonplanet.com)’은 ‘백스터’사가 실험실에서 인위적으로 바이러스를 만들었으며, ‘베타 테스트’를 위해서 일부러 멕시코에 퍼뜨렸다고 주장하고 있다. 인플루엔자가 얼마나 치명적이며, 얼마나 빨리 또 얼마나 멀리 퍼지는가를 실험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목적은? 다름 아닌 인구를 조절하기 위해서였다고 이 사이트는 주장한다.
폭발적인 인구 증가로 심각한 기후 변화에 봉착하자 각국의 정부들이 모여서 싱크탱크를 조직했으며, 가장 은밀하고 손쉬운 방법으로 바이러스 유포를 택했다는 것이다. 멕시코를 선택한 이유는 미국 국경에서 가까우며, 미국보다 상대적으로 검역체계가 허술하기 때문이라고도 주장했다.
하지만 현재 신종 플루는 전염 속도는 빠르지만 생각보다 치사율은 낮으며, 위험도도 일반 인플루엔자와 비슷한 수준인 것으로 판명되고 있다. 그렇다고 안심할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만일 이런 음모론들이 사실이라면 언젠가 ‘베타 테스트’에 이은 ‘실제 버전’이 은밀하게 시행될지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